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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세차게 내리는 비 때문에 안부차 친정에 전화를 했다.   

"엄마, 뭐하노?
"그냥 있다."
"영춘이는? 잘하고 있나?"
"하이고, 하기는 뭐를 해. 비 온다고 안 왔지."
"비 오면 출근 안 하나?"
"촌에 비 오면 할 일 뭐 있노 쉬야제."
"우와, 멋지다. 비 오면 쉬는 직업이라니, 내 동생 성공했네."


나는 너스레를 떨며 엄마의 목소리를 살폈다. 다행히 엄마도 이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내가 이렇게 엄마 눈치를 살피며 동생에 관한 얘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동생의 귀농 선언, 그 후

내 동생은 두 달 전, 20년 가까이 일한 직장을 관두고 귀농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엄마 아빠와 함께 농사를 짓겠다고 한 것이다. 돈 들어갈 일만 한참 남은 마흔 나이에 농사 지어먹고 살겠다는 동생의 선전포고로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기어이 엄마는 병이 났다. 그에 관한 이야긴 지난 기사로 발행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 80년생 남동생의 귀농... 엄마가 병이 났다).

엄마는 매일 시골집으로 출근하는 동생을 마주하며 화도 냈다가 안타까워도 했다가 짜증도 냈다가 몇 번이고 변덕을 부려댔다. 밥도 안 넘어간다 하고 사람도 만나기 싫다는 엄마 때문에 걱정이 돼 네 시간 거리를 달려 엄마를 보고 오기도 했다.  

다행히 한 달이 좀 더 지나서야 엄마는 회사원이 아닌 농사꾼으로서의 동생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시시해서 난 실소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엄마, 그래도 아들이 일 도와주니까 좋제?"
"좋긴 뭐가 좋노."
"에이~ 좋으면서."
"뭐.... 그래도 니 동생 손이 야물딱 지긴 하드라. 이거 함 봐봐라 얼마나 촘촘 하이 잘 짰노. 동네 사람들이 보고 서로 맹그러 달라고 난리가 났다 아이가."

 
엄마 마음을 풀어놓은 평상, 엄마는 이 평상을 만지작 만지작 하며 아들의 밝은 미래를 예상했다.
▲ 동생이 직접 만든 평상  엄마 마음을 풀어놓은 평상, 엄마는 이 평상을 만지작 만지작 하며 아들의 밝은 미래를 예상했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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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을 풀어준 것은 다름 아닌 평상이었다. '농사가 어데 쉬운 줄 아나?' 하며 펙! 하던 엄마는 어디 가고 나무판때기로 반나절도 안돼 이렇게 매끈하고 참한 평상을 만들었다며 은근 아들부심을 드러냈다. 엄마의 불안한 마음까지 잘 앉혀준 고마운 평상이라 나도 연신 추임새를 넣었다.

"이야~ 평상 팔아도 되겠다. 농사할라카믄 손재주가 있어야 안되나. 농부 체질이다 체질."

그러자 연이어 자랑거리가 하나씩 터져 나왔다.

"벌통에 여왕벌도 많이 불려났대이. 남들은 그래 못한다."

툴툴대는 듯했지만 그 말속엔 아들에 대한 믿음이 샘솟고 있단 걸, 난 알 수 있었다. '얼굴 폈다'는 말을 요즘 가장 많이 듣는다는 동생은 옆에서 우리 얘길 듣다가 또 한 번 꽃처럼 활짝 웃어 보였다. 벌에 쏘여서 벌침 두드러기가 나고 말똥을 치우고 트랙터를 서툴게 몰면서도 활짝 핀 그 웃음은 시들지 않았다.   

엄마 말마따나 초보 농사꾼치곤 '남들은 못 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여왕벌을 만들어서 벌집을 불리는 것부터 화분과 아카시아 꿀, 로열 제리까지 채취했다. 다니던 회사 직원들의 주문으로 품절 사태까지 맞게 되자 엄마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들고 있었다.

그래도 몸 쓰는 일이 많은 농사일에 "할 만하나?"라고 물었더니 "회사 다닐 때보다 훨씬 낫다"라고 동생은 답했다. 내심 걱정하는 나를 위해 수시로 보내오는 사진을 보면 그 말이 사실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 딸과 벌통을 색칠하고, 말을 씻기고, 파이프를 잘라 토끼집을 만든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적성 제대로 찾았구만'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제2의 신혼생활까지 맞은 동생
 
두 아이들과 나름의 행복을 찾아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나로서 흐뭇하고 안심이 된다.
▲ 벌통에 색칠놀이하는 동생의 아들 딸, 직접 만든 파이프 토끼집  두 아이들과 나름의 행복을 찾아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나로서 흐뭇하고 안심이 된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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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일이라고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부모님 말에 동생은 매일 새벽 대여섯 시면 엄마 아빠 집으로 출근을 한다. 출근하자마자 말먹이를 주고, 씻기고, 달걀을 거두고, 사과밭에 씨추러(적당히 속아내러) 가고... 온종일 여름 햇볕과 맞싸우며 일을 해나간다. 그리고 산등성에 해가 걸쳐질 때쯤이면 퇴근을 한다. 비가 오면 당연히 월차다. 장마가 되면 강제 휴가를 써야 한다. 대신 남들이 휴가를 갈 때 동생은 과실 수확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한다.

농업의 농(農)은 별 진(辰)과 가락 곡(曲) 자를 합친 단어라고 한다. 농업 자체가 '별의 노래'라는 뜻이다. 착실하게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생을 보고 있자면 마치 별의 노래를 흥얼대며 자신의 꿈 고랑을 매고 있는 것 같다. 아무쪼록 그 고랑에서 수확하는 열매가 풍요롭고 달기를 누나로서 빌어줄 뿐이다.  

와이프 생각은 다르지 않겠냐고? 내가 볼 땐 올케가 그 삶을 더 즐기는 듯하다. 회사 다닐 때 동생에 대한 불만이 열 개였다면 지금은 세 개 정도로 줄어든 것 같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회사일에 시달리고 회식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던 남편이 이젠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를 가고, 같이 벌통집을 꾸미는 모습을 보며 동생을 바라보는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림에 보탬이 된다며 마켓에 나가 물건을 판매하는 올케를 동생은 고맙다고 하고, 올케는 애들을 잘 봐줘서 동생에게 또 고맙다고 하고. 서로서로 고마운 이 커플은 제2의 신혼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내 눈엔).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양봉일과 잘 맞는 듯하다. 처음인데도 실패없이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 동생이 직접 채취한 아카시아꿀과 로열 제리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양봉일과 잘 맞는 듯하다. 처음인데도 실패없이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 조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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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자적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내 동생. 자신이 원하는 삶을 결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동생의 여유와 확신이야말로 요샛 말로 '스웩' 넘친다고 생각한다.

문득 옛날 일화가 떠오른다. 동생이 열 살 남짓 했을 때 산에서 참새를 잡아온 적이 있다. 그때 신나는 눈빛으로 "누나 누나~ 이거 한 번 봐봐, 완전 귀엽제?" 했던 그 표정. 요즘 동생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 그때의 표정이 보인다.

그때의 나는 벌벌 떨면서 "무서워 가까이 오지 마아!!!" 하며 소리를 질렀더랬지. 우리 남매의 시골 쥐, 도시 쥐 인생은 이때부터 갈렸던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태그:#귀농 , #시골살이 , #농사, #초보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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