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옆에 있는 쇼핑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색종이로 만든 목걸이였다.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옆에 있는 쇼핑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색종이로 만든 목걸이였다.
ⓒ 유정열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에 서울에 사는 아들 집에 갔다. 지난달에 있었던 내 생일에 시간이 안 돼 가족이 함께하지 못해서 이번에 어렵게 마련된 자리였다. 아들 부부만 생활했던 집이 오랜만에 대가족이 모여서 북적북적했다. 아버지, 장인, 큰누나, 아들 부부, 딸, 우리 부부 등 모두 여덟 명이 자리를 함께해서 그동안 못한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놓았다.

곧 내 생일을 축하하는 순서가 왔다. 며느리가 미리 준비한 케이크를 내놓았다. 나로서는 두 번째 케이크인 셈이다. 생일 때에 아내가 이미 케이크를 사줬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나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딸은 모자와 편지를 주고, 아버지와 장인 그리고 아들은 필요한 것을 사서 쓰라고 돈을 주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서 벌어진 입이 귀에 닿았을 때다.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옆에 있는 쇼핑백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색종이로 만든 목걸이였다. 그 목걸이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어 내 목에 걸어주는 것이었다.

그 순간 주위는 웃음바다가 됐다. 엉겁결에 그것을 목에 걸고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는 내 표정이 그들에게 웃음을 선물한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것을 선물한 아내의 얼굴이 가장 행복해 보였다.

생일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를 때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아내는 그 색종이 목걸이를 빼지 말고 걸고 있으라고 했다. 전날 직장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정성껏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의 그 마음에, 말할 수 없이 고마웠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봤다. 틀림없이 내가 앞으로도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의 그 바람대로 살고 있는가. 쉽게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가 금방 그렇다고 끄덕여지지 않았다.

함께 잠 못 이루던 그날 밤의 일
 
어느 날 밤이었다. 눕지도 않고 우두커니 잠자리에 앉아 있다가 불쑥 "에이,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눕지도 않고 우두커니 잠자리에 앉아 있다가 불쑥 "에이,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10여 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큰 잘못 때문이다. 세월이 약이라지만 아내도 아마 그것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뜻하지 않은 불행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아내도 그것을 알고 그 아픔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조심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눕지도 않고 우두커니 잠자리에 앉아 있다가 불쑥 "에이, 죽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 당시가 아마도 가장 힘들었던 때였으리라. 그 말을 했을 때 아내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나중에 자리에 누웠을 때도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렸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나올 때, 아내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내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 요즘 힘든 거 저도 알고 있어요. 그래도 어젯밤 저 너무 무서웠어요. 너무 불안했어요. 당신이 죽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몸이 계속 떨렸어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우리 가족, 지금까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어도 잘 이겨냈잖아요. 당신이 잘해주신 덕분이에요. 우리 이번에도 이겨내도록 해요. 당신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나는 알았다. '죽고 싶다'고 하는 그 말이 아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았다. 아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어젯밤에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을 때,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아내 얼굴을 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아내에게 나는 "알았다"고만 했다. "힘들지만 이겨내도록 하겠다"고만 말했다. 정작 그 말을 한 것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이후에 두고두고 나를 따라다녔다. 아내는 그 뒤에 몇 번 그 사건에 대해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죽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은 크게 잘못한 거라고 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거라고 인정했다.

그 뒤로 그 말은 나에게 절대로 가족에게 해서는 안 되는 금기어가 됐다. 그날 밤 나도 잠을 못 이뤘지만, 아내는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두려움과 불안에 떨며 내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 세상에 이보다 더한 짓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힘들수록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하는데, 나는 정반대로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런 극단적인 말을 꺼내 아내를 불안에 떨게 했다.

집에 왔다. 쇼핑백에서 가족에게 받은 이런저런 선물을 꺼냈다. 그 선물 하나하나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건강하게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늘이 부를 때까지 가족과 따뜻한 사랑 나누며 행복하게 지내야 한다고.

그 가운데 아내의 색종이 목걸이는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소곤거렸다. 우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부부의 정 나누며 웃는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옛날처럼 그런 말을 해서 내 마음 불안하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런 일이 있으면 털어놓고 얘기해서 같이 조금씩 풀어나가자고.

태그:#색종이목걸이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