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11라운드 상주 상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장면. 인천 지언학 선수의 모습.

11일 인천축구전용구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11라운드 상주 상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장면. 인천 지언학 선수의 모습. ⓒ 한국프로축구연맹

 
이대로 머뭇거리다가는 구단 역사상 최악의 시즌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는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벼랑끝에서 지푸라기를 움켜쥐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상대는 군 팀 역대 최고의 성적을 노리고 있는 강팀 상주 상무(3위)였기에 더 놀랍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일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후반전 초반 먼저 골을 내준 뒤 곧바로 두 명의 핵심 선수가 퇴장 명령을 받은 일이었다. 필드 플레이어 1명이 적어도 감당하기 힘든 축구 게임에서 상대 팀보다 무려 2명이나 적은 숫자로 남은 시간 30분을 버티면서 더 골을 내주지 않은 것도 놀랍지만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에 기적의 동점골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꼴찌가 만든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중용 감독 대행이 이끌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가 11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 원 11라운드 상주 상무와의 홈 게임에서 후반전 추가 시간도 다 끝난 시점에 터진 지언학의 동점골에 힘입어 1-1로 비겼다. FA(축구협회)컵 승부차기 패배 기록을 빼고도 리그에서만 8게임 연속 패배라는 지독한 부진 끝, 무려 55일 만에 얻어낸 귀중한 승점 1점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후반전, 두 선수의 퇴장

코로나19 시즌 27라운드의 짧은 일정도 거의 반환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꼴찌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아직도 1승 기록조차 없이 승점 2점에 머물고 있었다. 바로 위 순위 팀 성남 FC와는 무려 승점 차이가 7점이나 났다. 그 팀이 멍하니 넋놓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인천 유나이티드는 두 게임 연속 승리를 거둬야 겨우 승점 1점 차로 바짝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즈 파랑검정은 구단 사무국을 통해 선수단을 각성시키는 손 글씨 플래카드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 자격 없다"를 숭의 아레나 관중석에 하나 더 걸었고, 선수들의 이동 경로 잘 보이는 곳에 서포터즈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 쓴 편지도 붙여놓았다. 이 마음들이 통한 듯 강팀 상주 상무를 상대로 전반전을 실점 없이 잘 버텼다. 오히려 날카로운 역습을 만들더니 다시 중원의 지휘자로 돌아온 아길라르가 21분에 지언학의 전진 패스를 받아 왼발 대각선 슛으로 상주 상무 골키퍼 이창근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겨야 한다는 의욕이 지나쳤는지 후반전 초반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48분에 코너킥 세트 피스 수비에 임하며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어이없는 골을 내준 것이다. 상주 상무의 활력소 강상우가 차 올린 오른쪽 코너킥을 간판 골잡이 오세훈이 달려와 머리로 방향을 살짝 바꿔 돌려넣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이 가볍게 잡아낼 수 있는 궤적이었지만 동료들과의 빠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대 팀 가장 위험한 선수를 끝까지 따라붙는 수비수도 없었다. 

인천 유나이티드로서는 이러한 실점 순간이 처음이 아니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장면이 됐다. 지난달 17일 광주 FC에게 1-2로 패할 때 펠리페에게 내준 코너킥 세트 피스 첫 골(29분)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똑같이 오른쪽 코너킥 세트 피스였고 키커는 이으뜸, 헤더 골은 펠리페였다. 그 순간 인천 유나이티드의 체격 조건 가장 좋은 두 선수(이재성, 무고사)가 바로 그 자리에 솟구쳤지만 펠리페 하나를 밀어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게임 상주 상무의 위협적인 골잡이 오세훈의 헤더 골 순간은 골키퍼 정산 말고는 그를 방해하는 수비수가 아무도 없었다. 코너킥 크로스가 골문 가까운 쪽으로 날아들 때 뒤에서 박용우와 자리를 슬쩍 바꾸는 속임 전술이 주효했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수비수들은 그저 토요일 밤 하늘만 쳐다보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천 유나이티드는 실점 직후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전반 종료 직전에 부상당한 수비형 미드필더 문지환 대신 들어온 이제호가 50분에 위험 지역도 아닌 곳에서 무리한 태클로 공을 빼앗으려다가 퇴장당했고, 그로부터 12분 뒤에 믿었던 날개 공격수 송시우마저 상주 상무 풀백 배재우를 향해 역시 무리한 태클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는 김종혁 주심으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았다. 지난해까지 상주 상무 군 복무를 마치면서 35게임 4득점 4도움의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돌아온 송시우가 다시 인천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11번째 게임에 나섰지만 공격 포인트 하나도 없이 퇴장 기록을 먼저 남겼다는 것은 매우 아픈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후반전 추가 시간 130초, 기적의 동점골

이제호와 송시우가 쫓겨난 인천 유나이티드의 그라운드는 휑하니 빈 곳이 더 크게 보였다. 필드 플레이어 숫자로 상대 팀보다 2명이나 적다는 것은 정말 이를 악물고 쓰러질 때까지 뛰어다녀도 좀처럼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은 웬만한 축구팬들도 잘 안다. 그런데 남아있는 인천 선수들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말았다. 상대 팀 상주 상무가 군 팀 역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을 정도로 절정의 퍼포먼스를 자랑하는 멤버들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적의 승점을 따내고 말았다.

0-1로 패색이 짙은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후반전 추가 시간 2분은 야속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간판 골잡이 무고사가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발목 상태가 안 좋은 그를 무리하게 들여보내 남은 일정을 더 그르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으로 임중용 감독 대행은 무고사를 들여보내지 않고 이준석(66분), 최범경(81분)을 차례로 들여보내 더 이상 실점 없이 게임을 끝내자는 현실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로서는 이렇게 허망하게 9게임 연속 패배라는 불명예 기록을 받아들여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인천 선수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서포터즈의 격문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기적의 순간이 눈앞에 나타났다. 상주 상무의 마지막 코너킥 세트 피스가 짧게 이어지면서 김종혁 주심의 종료 휘슬 소리가 먼 곳에서 들리는 듯 보였다. 추가 시간 2분도 거의 다 흘러 13초밖에 남지 않은 순간, 무고사 대신 인천 유나이티드 원 톱 공격수 임무를 무겁게 지고 뛰던 지언학이 상주 상무의 패스를 가로챘다. 미드필더 박용우가 후반전 교체 선수 문선민에게 찔러주는 흐름을 읽어낸 것이다. 

지언학이 문선민 바로 앞에서 공을 가로챈 그 자리가 인천 유나이티드 페널티 구역 모서리하고도 약 3미터 안쪽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적의 동점골 주인공 지언학이 거기부터 반대쪽 상주 상무 골문 바로 앞 5미터 지점까지 달려간 거리는 어림잡아 100미터는 된다. 지언학의 동선만 표시하며 영상을 편집해도 축구를 한창 배우는 어린 선수들에게 매우 귀중한 교육 자료가 되고도 남는다. 후반전 추가 시간까지 빠른 속도로 뛸 수 있는 체력, 좁은 지역에서 정확한 패스로 상대 압박을 벗어나는 방법, 오프 더 볼 움직임의 중요성, 어설픈 롱 킥으로 성공 확률 떨어뜨리는 역습 전술 말고 더 나은 공간을 찾아내면서 정확하고 빠른 타이밍의 패스로 풀어나가는 조직력을 갖추는 것이 더 요긴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까지 약 23초간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후반전 추가 시간 1분 47초, 인천 유나이티드 전 동료 선수 문선민을 겨냥했던 상주 상무 미드필더 박용우의 패스를 가로챈 지언학은 먼저 김도혁과 2:1 패스를 주고받으며 옆줄 바로 앞 1차 탈압박을 성공했고 왼쪽 풀백 강윤구와 공을 주고받으며 2차 탈압박을 성공한 다음, 뒤도 안 돌아보고 상대 골문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강윤구는 패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오른쪽 풀백 정동윤이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하며 달려나가는 것을 본 것이다.

이 순간 1차 탈압박에 가담했던 김도혁은 왼쪽 옆줄을 따라 빠르게 달려나가며 왼팔을 치켜들었다. 정동윤에게 크로스 오픈 패스를 주문한 것이다. 이 순간 소름 돋는 축구장의 기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로 잰 듯한 정동윤의 크로스 오픈 패스는 김도혁이 달려나가는 앞 공간으로 정확하게 날아들었고 김도혁은 이 공이 잔디 위에 떨어지기도 전에 왼발 인사이드 발리 패스를 보내주었다. 김도혁의 그림같은 얼리 크로스는 교체 선수로 들어온 최범경 앞을 지나쳐 골문 정면을 노리고 돌아들어온 지언학의 오른발 인사이드 슛까지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 최범경은 볼 터치를 하지는 못했지만 상대 수비수 김진혁의 시선을 자신에게 쏠릴 수 있도록 하여 지언학이 마크맨 없이 극장 동점골을 터뜨리는데 결정적인 보조 역할을 해냈다.

후반전 추가 시간 2분 10초에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그라운드에 누워 승점 1점의 기적을 실감했고 곧바로 주심의 종료 휘슬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벤치를 지휘하던 임중용 감독 대행은 검정 마스크 위로 눈물을 찍어냈다.

2020 K리그 원 11라운드 결과(11일 오후 7시,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인천 유나이티드 FC 1-1 상주 상무 [득점 : 지언학(90+2분,도움-김도혁) / 오세훈(48분,도움-강상우)]

인천 유나이티드 FC 선수들
FW : 지언학
AMF : 김준범(81분↔최범경), 아길라르(66분↔이준석), 송시우
DMF : 김도혁, 문지환(44분↔이제호)
DF : 강윤구, 양준아, 이재성, 정동윤
GK : 정산
- 경고 : 송시우(41분), 양준아(57분), 송시우(62분)
- 퇴장 : 이제호(50분), 송시우(62분)

상주 상무 선수들
FW : 오세훈
AMF : 강상우, 한석종, 박세진(46분↔문선민), 김보섭(57분↔문창진)
DMF : 박용우
DF : 안태현, 권경원(77분↔고명석), 김진혁, 배재우
GK : 이창근
- 경고 : 김보섭(42분), 문선민(66분)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K리그 지언학 인천 유나이티드 FC 임중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