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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10. 24. 이시영 부통령이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만세 삼창을 선창하고 있다(왼쪽 프란체스카 이승만 대통령 부인).
 1950. 10. 24. 이시영 부통령이 ‘유엔의 날’ 기념식에서 만세 삼창을 선창하고 있다(왼쪽 프란체스카 이승만 대통령 부인).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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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양반가 자제들의 성장ㆍ교육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시영 형제들도 그랬다. 그가 한학을 수학하던 7세 때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고, 15세 때에 갑신정변이 일어났으나, 본인은 물론 가족사에 아직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유소년기는 유복한 가정에서 평탄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덕성이 남다르고 아량과 재지(才智)가 비범하였다. 7세부터는 한학(漢學)을 학습하기 시작하였는데, 15세까지 가정에서 부형을 돈독히 받드는 한편으로 문학(文學)을 독실히 공부하니, 사우간(師友間)에 그의 숙성조달(夙成早達) 함을 보고 다투어 칭송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인인군자(仁人君子)의 혈통과 대인(大人)의 풍모는 소년시절부터 이미 남의 이목을 가리우기 어려웠던 것이다. (주석 2)

이시영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었으나, 시국은 점차 폭풍우를 가득 실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태어나기 한 해 전(1868년)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이루고, 출생하던 해 2월에는 일본 왕을 황제로 칭하는 '천황 명의'로 조선에 국서를 보내자, 조정은 이를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강화도조약, 그리고 국서사건은 장차 한일 사이에 태풍 또는 쓰나미의 예고편이었다. 이들 사건은 이시영과 그 가족 나아가서 조선 사회에 돌이키기 어려운 재난과 국난으로 이어지게 되지만, 그가 성장할 때까지는 아직 미풍에 머물고 있었다.

한학을 위주로 15세까지 공부하던 그는 17세가 되는 1885년에 문과인 식년감시(式年監試)에 급제하여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 해 봄 식년감시 초시(初試)에 급제하여 생원이 되었고, 7월에는 은방진사(恩榜進士)로 소과(小科)에 올랐으며, 그 다음해인 병술년에는 남행가주서(南行假注書)가 되어 근정전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이어 19세 때인 1887년 정해년에는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20세가 되던 1888년에는 세자가 거처하는 계방(桂坊)에 특별히 선발되어 동궁의 서연(書筵)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며 좌우익찬(左右翊贊), 좌우익위(左右翊衛)로 4년 동안 동궁의 강연(講演)으로 근무하였다. (주석 3)


바탕이 영민한 데다 좋은 가문 출신이어서 17세에 3년마다 한 번씩 치루는 과거행사인 식년감시에 합격하면서 관직에 출사하고, 20세에는 동궁(나중의 순종)의 강연을 맡게 되었다. 요즘 말로 하면 왕세자의 가정교사인 셈이다.

그러던 중 23세 되는 신묘년 여름에는 중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세자에게 강의하는 춘방(春坊)에서 서연으로 4년간을 근무하였다. 그리하여 동궁과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를 한 햇수는 8년이나 되는데, 이처럼 오래도록 장차 국왕이 될 인물을 오랫동안 가르치고 함께 생활을 했다고 하는 것은 다만 학문적인 면에서의 뛰어날 뿐만이 아니라 인격적 수양면에서도 남다른 데가 있었기 때문에 발탁된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그는 제왕의 학문이 다른 필부와는 다르다 하여 수시로 치국안민(治國安民)의 근본과 대법(大法)을 진언하는 등 자신의 책무에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다고 하니, 당시 어린 나이의 성재지만 자신의 직책이나 국사의 중대함 등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명찰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주석 4)

이시영이 출세의 가도를 달리고 있을 즈음 나라 안팎에서는 세찬 파고가 일고 있었다. 임오군란(1882년), 갑신정변(1884년), 영국군 거문도점령과 청ㆍ일 톈진조약, 아펜젤러 최초의 감리교회인 정동교회 설립(1888년) 등이다.


주석
2> 앞의 책, 23쪽.
3> 이은우, 『임시정부와 이시영』, 26쪽 범우사, 1997.
4> 앞의 책, 27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성재 이시영선생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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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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