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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권대응 네트워크는 코로나19를 인권의 관점에서 살펴보고,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대안을 제시하는 '코로나19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문제의식을 담아 글을 기고합니다.[편집자말]
3월 3일 오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 곳곳에 '도심내 집회 금지'(2월 21일부터)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집회와 예배가 매주 개최되어왔다.
▲ 광화문 광장 곳곳 "도심내 집회 금지" 안내문 3월 3일 오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서울 광화문광장 곳곳에 "도심내 집회 금지"(2월 21일부터) 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광화문광장 주변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대규모집회와 예배가 매주 개최되어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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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1일 서울시장은 긴급 브리핑에서 "대규모 집회가 시민 건강을 위협해 집회 금지를 통보"한다며 "위반 시 벌금 300만 원의 불이익이 있으니 시민들이 따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6일 뒤인 27일 서울시는 서울역 광장에서 서울광장, 청계광장, 광화문광장, 효자동삼거리로 이어지는 광장 도로 및 주변 인도와 종로1가 등 주요 장소에 집회 금지 고시를 하며 "집회 금지가 감염병 확산을 막고 시민 생명과 건강, 안전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날 종로구청은 오전 7시 30분부터 공무원 100명과 용역 인력 200여 명, 경찰 12개 중대 등을 동원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인근에 설치된 고 문중원 기수 대책위 농성장을 강제철거했다. 고 문중원 기수 사망 91일째 날이었다.

광장이 닫히고 목소리가 사라진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의거 광화문광장 등 도심집회를 금지한 가운데 2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대표 전광훈 목사) 주최 대규모 집회가 강행되었다. 사진은 광화문광장 곳곳에 설치된 집회금지 안내문.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에 의거 광화문광장 등 도심집회를 금지한 가운데 2월 22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대표 전광훈 목사) 주최 대규모 집회가 강행되었다. 사진은 광화문광장 곳곳에 설치된 집회금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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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엔 사람들이 줄었고 조심스럽게 외출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쓴 채 텅 빈 광장 주변을 지나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집회를 금지한다는 방송을 반복하는 차량이 광장과 사람들 사이로 돌고 있다.

마치 집회가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기라도 한다는 공포가 거리를 채우고 있다. 삶의 위기를, 삶의 권리를 말하려는 목소리가 사람들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취급을 당한다.

집회 금지 구역이 하나둘씩 늘어나 목소리를 밀어내고 공간들이 비워졌다. 구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을 행정대집행으로 쫓아내 버리고 집회 금지 고시를 한 동작구청, 용역 폭력을 항의하는 철거민에게는 집회를 금지하면서 수백 명 용역을 동원해 터전을 빼앗는 강남구청, 집회가 자주 열린 국회와 산업은행에서 집회를 금지한 영등포구청을 비롯해 대구시, 인천시, 광주시, 안산시, 성남시 등 전국으로 집회 금지 지역이 늘어났다.

"코로나 위기에 집회라니" 거리에 선 사람들은 위축됐다. 방역과 함께 집회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절박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들은 목적한 곳에 채 닿기도 전에 치워졌다.

사라진 공간만큼 안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광화문 집회 전면금지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대표 전광훈)는 2월 22일 낮 12시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광화문 집회 전면금지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대표 전광훈)는 2월 22일 낮 12시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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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보건을 위해 집회의 권리도 제한될 수는 있다. 그러나 각 지자체에서 하듯이 기간의 정함도 없이, 규모와 방식, 방역 조치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문제다.

코로나19가 세상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집회 자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것이 제일 중요한 권리이기 때문이 아니다.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자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단결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안전과 생명에 대한 권리, 인권침해로부터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정치와 공무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등 우리 삶과 연관된 여러 권리를 요구하고 보장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코로나19가 삶을 위협할 때, 인간의 존엄을 해칠 때, 사람들을 고립시킬 때면, 모두가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으로 회복하기 위해 집회가 필요하다. 집회를 한다는 것은 나의 삶을 만드는 동시에 우리의 삶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시공간을 여는 것이다. 위기를 넘어 다른 세상의 가능성을 여는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우리가 마주할 공간이 사라져 버리면 우리는 홀로의 존재를 넘어 동료 시민들과 함께 행동하는 공간을 잃게 될 것이다.

안전한 삶을 위해 거리에 나선 사람들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발생한 1월 20일 이후 매일 진행되는 질병관리본부 브리핑에는 수어 통역사가 함께한다. 이제는 자연스러운 뉴스 장면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농인 당사자들이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난 다음에 이뤄진 변화였다. 이들은 수어 통역 부재는 단지 농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외계층에 대한 대책이 부족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안전한 상태는 정부와 전문가의 의견과 결정의 보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과 활동으로 더 탄탄해진다. 이런 개입과 활동을 통해 하나의 문제는 다른 문제들과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계의 문제로 확장된다.

다른 장면으로 눈을 돌려보자. 금호 아시아나 본사 앞에는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을까 싶은 1인용 텐트들이 있다. '코로나 19 해고 1호 사업장'이라는 원치 않는 이름을 얻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는 곳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워졌다며 회사(아시아나 케이오)는 아시아나 항공기 청소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고, 무기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강요된 무기한 무급휴직을 거부했다가 해고당한 청소노동자들이 회사에 항의하기 위한 농성장은 벌써 세 번 철거당했다. 회사 앞 천막 농성장을 종로구청은 3일 만에 철거했다. 노동자들은 또다시 농성장을 설치했고 종로구청은 이 농성장을 비롯한 종로 일대에 집회 금지 고시를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해고당하고, 코로나19 때문에 해고에 대한 항의도 금지당했다.

코로나19의 방역 조치 중 하나는 아프면 쉬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파도 쉴 수 없는 노동자들, 감염병에 취약한 노동환경이 불안하지만 출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 경제 위기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들의 불안한 삶과 노동을 운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존엄한 삶의 권리로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금지된다. 모이고 말하고 행동했다는 이유로 수사까지 받아야 한다면 이들에게 안전한 삶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해고된 청소노동자 8명의 목소리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에 들릴 수 있는 목소리는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 이 세계를 어떻게 안전하게 구축해갈 수 있을까? 안전한 삶은 그저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로 채워야 하는 것임을 거리에 나선 사람들로부터 확인한다.

누구의 광장인가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가 11일 오전부터 서울시청앞에서 운영되어 시민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오후들어 시민들이 수백명으로 늘어나면서 서울광장을 한바퀴 돌아 시청옆 골목까지 밀려서 1시간 가량 기다려 조문을 하기도 했다.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가 11일 오전부터 서울시청앞에서 운영되어 시민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오후들어 시민들이 수백명으로 늘어나면서 서울광장을 한바퀴 돌아 시청옆 골목까지 밀려서 1시간 가량 기다려 조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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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가 11일 오전부터 서울시청앞에서 운영되어 시민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오후들어 시민들이 수백명으로 늘어나면서 서울광장을 한바퀴 돌아 시청옆 골목까지 밀려서 1시간 가량 기다려 조문을 하기도 했다.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분향소가 11일 오전부터 서울시청앞에서 운영되어 시민 조문을 받기 시작했다. 오후들어 시민들이 수백명으로 늘어나면서 서울광장을 한바퀴 돌아 시청옆 골목까지 밀려서 1시간 가량 기다려 조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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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다시 열렸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특별시장(葬)을 치르기 위해서였다. 이 시간 동안 광장과 거리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금지당한 자신들의 애도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8일 전, 이들은 서울시청에 집회 금지 조치에 대한 개선을 요청했다. 집회 금지 조치로 누구의 목소리가 사라지는지 이야기했고, 방역해야 하는 지자체의 입장도 이해하니 함께 방법을 찾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금지조치를 변경할 생각이 없으며 개별 집회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고 방역에 효율적이지 않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방식을 바꿀 생각도 없다고 했다. 이후에 좀 더 의논을 해보자는 제안도 거절했다.

굳게 닫힌 광장이 다시 열리는 것을 보며 공적 또는 공공공간으로서의 광장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권력을 향한 목소리를 소거시킨 그 자리에 들어선 목소리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폭력에 저항하는 존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존재는 누구인가? 애도를 위해 광장으로 진입 가능한 죽음이란 어떤 죽음인가? 결국 광장은 누구의, 무엇을 위한 공간인가?

한국마사회의 승부 조작 등의 비리와 기수와 말 관리사들의 노동실태를 고발한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90일이 넘는 외침이 됐지만, 정부는 무참히 외침의 공간을 치워버렸다. 장애인 자립 생활을 위한 투쟁을 벌여왔던 고 박기연 활동가와 그의 죽음으로 도입된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시범사업이 정부에 의해 14시간으로 줄어 사망에 이른 고 권오진 활동가의 추모제는 광장으로의 진입이 금지되었다.

광장이 열린 순간 쫓겨난 사람들을, 쫓겨난 죽음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은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닫혔던 공간이 예외적으로 열린 것, 그 자체만이 아니다. 서울시청 광장을 열고 그 공간을 채운 행위가 죽음 이후의 시간을 무엇으로 만들려고 했는가의 문제이다.

광장과 거리를 권력에 저항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그곳에서 죽음을 끌어안고 삶의 투쟁을 벌였다. 광장과 거리에서의 애도는 그 죽음을 둘러싼 폭력을 고발하고 권력을 드러내는 투쟁이었다. 그 공적 애도는 존재의 상실 이후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시작이었다. 우리가 상실한 존재가 남긴 것은 큰 업적이 아니라 죽음으로 균열시킨 세계의 틈이었고, 광장과 거리에서 연대의 힘으로 그 틈을 벌려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분투를 벌였다.

광장은 단지 방역을 이유로만 닫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광장에 입장하는 존재를 선별하거나 광장 자체를 개폐(開閉)하는 권력이 있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피해자의 곁에 서는 연대도 목격했다. 다시 닫힌 광장과 거리는 권력에 맞서 물러서지 않는 이들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더 모이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최근 프랑스에서 나온 판결을 집회 금지만이 방역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지자체가 살펴보길 바란다.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은 지난 6월 13일 코로나19로 인한 방역 문제와 감염 우려가 더 이상 대중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에서 "모든 시위는 보건위생 수칙을 지키고 사전에 당국에 집회 사실을 신고하고 공공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허용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법원은 "집회 시위에 대한 금지는 보건위기 상황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집회와 시위 권리는 국민의 "기본적인 자유"라고 선언했다.

방역 조치의 준수만이 아니라 이 '기본적인 자유'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 한다. 서로를 고립된 개인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모이고 말하고 행동한다.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과 만나 우리 삶이 존엄할 수 있도록 행동을 요청한다. 그런 행동들이 코로나19를 겪은 현재와 그 이후 모든 사람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길 위에 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들의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책 <길 위의 인생>에서 이렇게 말했다.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간단한 방법 중 하나도,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듣는 만큼 말하게 하고, 힘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말하는 만큼 듣게 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코로나19 위기에서 인권을 돌아보고 인권으로 대응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대의 인권 실천, 그 길을 비추며 함께 하겠습니다. '코로나19와 인권 -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자료집은 다음 링크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www.sarangbang.or.kr/writing/73350


태그:#코로나 19, #집회의 권리, #민주주의,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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