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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상담업무를 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 전문 콜센터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상담원들 외에도 보건·의료 등 전문인력 19명이 상주하고 있다.
 2월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질병관리본부 1339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상담업무를 보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감염병 전문 콜센터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상담원들 외에도 보건·의료 등 전문인력 19명이 상주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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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

내 옆자리에서 하루에 200통 가까이 콜을 받던 누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회사를 떠났다. 붉게 물든 눈 아래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 순간, 1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났다. 다시 콜을 받으려 자리에 앉아 어제까지의 영업 실적표를 꺼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팀장이 나눠주는 영업 실적표에는 전국 카드사 하청업체 중 나와 같은 업무를 하는 250명 정도의 직원 이름과 등급이 나와 있다.

누나는 나와 같이 'C'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S 등급부터 A+, A, A-, ... D-, F까지 있는 종잇조각에서도 우리 둘은 자리를 다투고 있었다. 팀원들은 누나가 잘린 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구조조정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실적이 안 좋으면 일자리를 잃는 게 당연한 세상, 그곳이 내가 본 '대한민국'이었다. 4살 아들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던 누나의 자리는 '희망퇴직'과 함께 사라졌다.

그날 마음먹었다.

'한 학기 등록금까지만 벌고 나가자. 어서 이곳을 탈출해서 열심히 공부해 안정적인 직장을 갖자.'

기울어진 운동장을 뛰는 마라토너

우리나라 노동 시장은 극단적으로 기울어졌다. 한국노동연구원(김복순, 2019)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67%이지만, 조직 규모가 300인 이상이고 고용 형태가 '직접·지속 고용'이며 노동조합이 있는 일자리는 7%에 불과하다. 각종 스펙과 시험을 통해 들어가는 7%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하려고 대부분 청년이 몇 년간 고시원에서 컵밥을 먹으며 마라톤 경쟁을 하는 것이다.

"감히 우리에게 기생하는 것들이 상생을 떠들어?" - 드라마 <미생> 중

지금의 2030 청년들에게 무한 경쟁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한 시스템이다. '기생'으로 치부되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시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 '취업 양성소'로 변질된 대학에서 어떻게 해서든 'SKY'를 졸업해야 7% '괜찮은' 일자리를 기대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잡대(지방의 잡스러운 대학)' 나와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이 인천국제공항 같은 '신의 직장'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건 '꽤 괜찮은 선택'이다. 거기서 만족해야지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을 바라면 '도둑놈 심보'라고 본다. 대통령 잘 만나 경력을 인정받아 정규직 전환되는 것은 '로또'라고 질타한다. 그런 억울한 소리를 안 들으려 기울어진 운동장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0년 가까이 쉼 없이 뛰는 게 오늘날 청년들의 모습이다.

하이에나 언론에 딱 걸린 청년의 분노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경찰공무원 입시학원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안에 국민의 안전과 치안, 복지를 위해 서비스하는 공무원 일자리를 추가 충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경찰공무원 입시학원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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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 전혀 접점도 없고 상관없는 직종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정당하게 어떤 것들을 포기하면서 피나는 노력을 해서 그 자리를 획득한 사람들은 바보인가... 하는 생각이 같이 들면서요" - 경북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 중인 박아무개(30)씨, 임용 준비 3년 

"비정규직 처우 당연히 개선해야죠. 그런데 하나 들어주면 또 다른 걸 계속 요구하지 않을까요?" - 경남 공립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 김아무개(28)씨, 임용 준비 3년 

"제 문제가 아니라서요. 크게 생각은 안 해봤지만 상시로 계속해야 하는 일이면 정규직으로 두는 게 기업이나 취준생에게도 좋은 것 아닌가요?" - 최아무개(29)씨, 임용 준비 5년 

"세상에 목소리를 낸다고 바뀌는 거 없잖아요. 나부터도 지금 취업이 힘든데 누굴 걱정하나요?" - 이아무개(28)씨, 취업 준비 3년


위 발언은 오랜 기간 취업을 준비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들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논란을 보는 시선들이다.

다수 언론은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에 분노하는 청년들을 집중 조명한다. 그러나 아무리 돌아봐도 그 분노의 방향에 설득력이 없다. 비판의 칼날은 문재인 정부에 상처를 입히려 휘두르는 것으로 보이고, 얻는 것은 높은 클릭 수에서 오는 수익인 것 같다.

이들 언론은 인천국제공항이 90% 가까운 필수인력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던 것 자체가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는다. 하루에 14시간 넘게 일하고 항공운송의 안전을 책임지는 보안검색요원들이 최저임금에 가까운 보수를 받으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인천공항 보안검색요원의 정규직 전환은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업무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고용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을 지키는 과정이라는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SNS나 포털 사이트 댓글에서 퍼지는 '아르바이트로 들어왔는데 운 좋게 연봉 5천만 원 받게 됐다'는 허위 정보를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대서특필하기 바빴다. (관련 기사: 인천공항 정규직 '연봉 5000 소리 질러 카톡'의 실상 http://omn.kr/1o1cc)

<"SKY 나와 토익 960... 내가 잘못 살았나요">(서울신문, 2020.06.26), <인천공항 정규직 된 직원 "졸지에 서울대급 됐네ㅋ 소리질러">(중앙일보, 2020.6.23) 등의 기사로 '을들의 전쟁'을 부추겼다.

기사를 접하는 대다수 청년은 온갖 불공정한 노동 구조와 경제적 불평등은 외면한 채로 '기회의 공정'만 외친다. 실제로 기회가 공정해지려면 부모의 소득, 태어난 지역, 성별, 신체적 장애 유무 등 모든 변수가 통제된 채로 시험이라는 '독립 변수'만 작용해야 하는데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다. 연봉 1억 가까이 받는 7% 정규직과 최저임금에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30% 비정규직 일자리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게 원치 않는 마라톤을 그만두는 방법임에도 이를 외면한다.

능력주의? 공정?... '손해'에 민감할 뿐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이 6월 25일 오후 서울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비정규직 보안검색 요원들의 정규직 전환 관련 입장을 발표하며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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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태운 청년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다. 국가 경제 규모로 일컫는 국내총생산(GDP) 순위에서 한국은 10위에 올랐고,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가운데 K-방역은 한국의 위상을 강화시켰다.

하지만 청년들은 행복하지 않다. 여전히 청년 자살률은 세계 1위이며 행복 지수는 세계 꼴찌다. '88만 원 세대'라는 말이 생긴 지 20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절망은 그대로다. 먹고살 만한 일자리나 집을 구하는 게 '하늘에서 별 따기'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1990년대생은 '공정'에 민감하고 '능력주의'에 길들여졌다고 분석한다.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다. 100년 전 일제의 식민지 횡포에 맞선 청년들, 50년 전 군부 독재에 맞선 청년들보다 우리가 '공정'에 민감한가? 그렇게 '공정'을 부르짖는 청년들이 재벌들의 승계 구도에 눈 감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죽음에 귀 닫나? 자본에 길들여지고 계층화를 당연시하며 무작정 자신의 성공만 바라면서 고작 '공채시험의 공정'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어떤 사회를 대물림할 것인가

'아니꼬우면 정규직 하라'고 몰아붙이는 사회는 지속할 수 없다. 노동자 자신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차별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로봇에 밀리고 자본에 허덕이면서도 '을끼리의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역차별의 우려 앞에 약자를 향한 각종 차별과 혐오는 정당화할 것이고, 1%가 독식하는 사회는 '기회는 공정했다'는 착각과 함께 타당성이 부여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로 나 혼자 무사하다고 삶이 안정될 수 없는 '사회적 연결 고리'를 경험했다. 삶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노동구조도 마찬가지다. 차별과 소외를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넘쳐나는 사회에서는 정규직 노동자의 삶도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두가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각각의 점이라는 것을, 하나라도 끊어지면 선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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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번 정규직 전환 결정이 완전무결하다고 할 수 없다. 시기나 절차상의 문제는 되짚어 봐야 하며 사회적 합의도 충분히 끌어내야 한다. 과정상의 문제를 비판하더라도 '비정규직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정부의 정책 방향까지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정권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사회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인권도 무시한 채 선택적으로 청년의 분노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청년으로서 대항해야 한다.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의 청년 전태일은 지금으로 치면 정규직 상위권 노동자에 속했던 재단사였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약자였던 어린 여공들이 하루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굶주린 모습을 외면하지 않았고 자신의 버스비를 아껴 풀빵을 사주곤 했다. 그러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수킬로미터 떨어진 집까지 뛰어가곤 했다. 그런 생활을 3년 넘게 이어가다가 그는 결국 자신의 임금이 아닌, 미싱사와 시다를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산화했다. 그의 육체는 50년 전, 잠들었지만 그가 남긴 '연대의 정신'은 영원히 세상에 머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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