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의 영웅들에게도 초보 감독의 길은 가혹하기만 하다. 올시즌 나란히 사령탑 도전에 나선 김남일 성남FC 감독과 설기현 경남 FC 감독이 나란히 혹독한 초보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김남일 감독이 이끄는 성남은 지난 5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10라운드 홈 경기에서 0-4로 참패했다. 최근 리그 6경기 연속 무승(1무 5패)이다.

김 감독의 시작은 화려했다. 시즌 개막 이후 2승 2무로 약체로 거론되던 성남을 일약 3위에까지 올려놨다. 감독 데뷔 시즌 첫 달만에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5월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보기 드문 업적도 이뤘다. 김남일 감독 특유의 남자답고 카리스마넘치는 이미지, 검은 정장과 마스크로 대표되는 스타일리시한 올블랙 패션으로 화제를 모으며 '누아르 축구' '빠따볼'이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초반의 버블효과가 오히려 독이 된 것일까. 성남은 6월 이후로 거짓말처럼 역주행을 시작했다. 대구(1-2)를 시작으로 울산(0-1), 수원(0-2), 상주(0-1)에 내리 4연패를 당했다. 9라운드에서 선수 2명이 잇달아 퇴장당하는 악재속에 승격팀 부산(1-1)을 상대로 간신히 무승부로 오랜만에 승점 1점을 추가했지만, 다음 상대인 포항에는 믿었던 수비마저 이창용과 최지묵의 공백으로 인한 전력누수를 극복하지 못하고 올시즌 최다실점-최다점수차 완패로 고개를 숙였다. 성남은 올시즌 원정에서만 2승을 거뒀을뿐 홈에서는 아직까지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더구나 성남이 6월 이후 공식전에서 승리한 것은 지난 1일 충남 아산과의 2020 하나은행 FA컵 3라운드(1-0) 뿐이다. 아산 무궁화 경찰축구단을 계승한 충남 아산은 올해 창단한 신생팀인데다 K리그2에서도 올시즌 단 1승에 그치며 10개구단 중 8위를 기록중인 약체팀이었다. 성남도 충남아산전에서 주전보다 그동안 경기에 나서지않은 선수들을 대거 내보냈다. 하지만 정작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나선 포항전에서 오히려 대패를 당하며 김남일 감독의 고민이 더 깊어졌다.

리그로 국한하면 지난 5월 31일 FC서울(1-0)전 승리 이후 36일째 승리를 맛보지 못하고 있다. 리그 순위는 어느새 11위까지 떨어졌다. 이제 K리그1에서 성남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팀은 올시즌 최악의 부진으로 리그 무승에 허덕이고 있는 인천(2무 8패) 하나 뿐이다.

성남의 최대 고민은 극도로 빈약한 공격력이다. 수비진의 퇴장 공백이 있었던 포항전 4실점을 제외하면 나머지 9경기에서 8실점만 허용한 수비는 대체로 안정적인 편이다. 하지만 10경기에서 단 6골을 뽑아내는데 그친 공격력은 인천(4골) 다음으로 리그에서 최악이다.

FA컵 충남아산전에서 토미의 결승골을 제외하면 리그에서는 6연속 무승 기간동안 필드골이 아예 전무하다. 연패의 시작이 된 5라운드 대구전 득점은 PK였고, 9라운드 부산전 선제골은 상대 자책골이었다. 만 34세의 노장 공격수인 양동현(3골)을 제외하고는 득점루트가 전무하다.

성남은 최근 국가대표 공격수 나상호를 FC도쿄에서 긴급 임대 영입했다. 김남일 감독은 나상호를 포항전에서 K리그 복귀 이후 첫 선발로 출전시켰으나 아직은 실전감각과 동료들과의 호흡 문제에서 부족함을 드러내며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설상가상 성남의 다음 상대는 리그 4연패에 도전하는 강호 전북 현대다. 선수층이 얇은 성남으로서는 김남일 감독이 전술적으로 변화를 줄 수 있는 카드도 마땅치 않다는 게 고민이다.

설기현 감독 이끄는 경남 행보, 순탄치 않아

설기현 감독이 이끄는 경남의 행보도 순탄치 않다. 지난 시즌까지 K리그1에서 활동하다가 강등된 경남은 K리그2에서는 상위권의 전력으로 꼽혔으나, 팀당 첫 라운드를 마친 현재 2승 5무 2패, 승점 11로 7위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치고 있다. 경남은 지난 5일 9라운드에서 충남아산전에서 1-2로 패하며 최근 3경기 연속 무승(2무1패)에 빠졌다. 이 경기는 무승에 허덕이던 충남아산의 올시즌 K리그2 첫 승이기도 했다.

해외무대에서 프로 경력의 대부분을 보낸 '유럽파 1세대'로 꼽히는 설기현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경남에 유럽축구의 선진적인 전술과 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며 초보 감독답지 않게 자신의 축구색깔을 하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전술적으로는 유럽식의 빌드업과 짧은 패스에 기반한 점유율 축구에, K리그 스타일 특유의 활동량을 가미했다.

초반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무승부가 많기는 했지만 쉽게 지지도 않았다. 비효율적인 롱패스를 지양하고 어떤 상대와도 맞불을 놓는 화끈한 공격축구가 돋보였다. 문제는 수비력이었다. 설기현의 경남은 9경기에서 13득점을 넣을 동안 14실점을 내줬다. 최하위 안양(16실점)-8위 충남아산(15실점)에 이어 리그에서 세 번째로 많은 실점이다. 설기현 감독이 첫 승을 거둔 안양전(3-2)을 비롯하여 이기거나 비긴 경기에서도 선제 실점을 내주고 따라가는데 급급한 경기가 많았다.

초보 감독답게 상대팀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맞춤형 축구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남일의 성남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1부리그에서 상대적인 약체이고 선수층도 얇은 성남과는 달리, 2부리그에서의 경남은 강팀에 가깝다.

충남아산전에서 설기현 감독도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듯이, 준비했던 전술이 먹히지 않을 때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플랜 B나 C가 아쉽다. 팀별로 한라운드를 거치며 경남의 전술이나 경기운영이 슬슬 분석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빌드업이라는 자신의 색깔만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두 감독에게 거는 축구팬들의 기대는 높다. 선수 시절에도 시작부터 스타는 아니었듯이, 감독으로서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김남일과 설기현 감독이 현재의 성장통을 어떻게 극복하고 감독으로서 한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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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설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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