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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부지런히 혈액형을 묻던 때가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통해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인 경우엔 더했다. "어머, 너 A형이야? 어쩐지 나랑 잘 맞더라" 하고 한바탕 호들갑을 떨고 나면 상대가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혹은 반대로 나와 영 맞지 않아 자주 삐걱거리는 사람의 속내가 궁금할 때도 나는 상대에게 은근슬쩍 혈액형을 묻곤 했다.

"근데, OO씨는 혈액형이 뭐예요?"

기껏해야 몇 가지 되지도 않는 혈액형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천차만별, 가지각색인 사람의 속을 그깟 혈액형 하나로 단번에 진단 내릴 수 있다면 세상에 어려운 인간관계란 하나도 없을 것이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나뉜다는 말을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하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상대에게 혈액형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스스로 '옛날 사람' 임을 자백하는 시대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대신 요즘에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묻는다. 서먹서먹한 자리를 순식간에 화기애애하게 만들고, 냉랭한 분위기에 대번에 훈훈한 봄바람을 불어넣는 그 마법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네 MBTI는 대체 뭔데?"

질문은 시시했으나, 결과를 기다리는 즐거움
 
 요즘 한창 유행인 '성격 유형' 진단 법 MBTI
 요즘 한창 유행인 "성격 유형" 진단 법 MBTI
ⓒ 16personalities.com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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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요즘 한창 유행인 '성격 유형' 진단 법이다. 모녀 심리학자인 캐서린 브리그스와 이사벨 마이어스가 1900년부터 1975년에 걸쳐 개발한 것으로, 융(Jung)의 성격 유형 이론을 근거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MBTI 검사지는 모두 95문항으로 구성되어 있고 결과는 E(외향)-I(내향), S(감각)-N(직관), T(사고)-F(감정), J(판단)-P(인식) 중 개인이 선호하는 네 가지 지표를 알파벳으로 표시한다. 이 MBTI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 유형은 총 열여섯 가지로 나누어진다(네이버 지식 백과 참고).
 
주변에서 하도 신기하다고 야단이기에 나도 호기심이 동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MBTI'를 치자 관련된 정보가 우수수 쏟아졌다. 무료로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여러 군데였다. '오호, 재밌겠는데?' 하는 생각에 얼른 설문지를 내려받았다.
 
 검사 결과 나는 'INFJ' 즉, 이름부터 거창한 '선의의 옹호자' 타입 인간이라고 한다.
 검사 결과 나는 "INFJ" 즉, 이름부터 거창한 "선의의 옹호자" 타입 인간이라고 한다.
ⓒ 16personalities.com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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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시시했다. 사람의 성격을 꿰뚫어 보겠다니, 뭔가 심오한 것을 물을 줄 알았는데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무엇을 택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이 유독 많았다. 예를 들면 '이메일 함이 꽉 채워져 있는 것을 정리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편인가? 혹은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편인가?'처럼 말이다.
 
그래서 별다른 고민할 것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쉽게 답안을 체크해 나갈 수 있었다. 검사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문득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인터넷에 묻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또 한편 황당하기도 해서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검사 결과 나는 INFJ, 즉 이름부터 거창한 '선의의 옹호자' 타입 인간이라고 한다. 구조작업이나 자선 활동에 힘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1%밖에 되지 않는 독특한 성격인 모양이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서 검사 결과를 천천히 정독하기 시작했다.
 
나의 성격과 꽤 잘 들어맞는 듯한 구절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서 신기하고 또 놀라웠다. 반대로 과연 내 얘기가 맞나 싶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대목도 있었다. '내면에 깊은 도덕적 관념이 자리 잡고 있으며 단호함과 결단력이 있다'니, 내가 이렇게나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왜 여태 알지 못했던 것일까?
 
게다가 압권은 나와 같은 성격을 지닌 유명인의 목록이었다. 나는 흑인 인권 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평생을 희생과 봉사로 헌신한 수녀 마더 테레사와 성격이 같았다. 세상에나 제가요? 정말요?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절로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웃음이 빵 터졌다.

당신을 알고 싶어요, 라는 말 대신
 
 우리는 어딘가에 나를 틀림없이 잘 알아줄 만한, 나와 분명 잘 어울릴법한 누군가가 존재할 거라 믿는다.
 우리는 어딘가에 나를 틀림없이 잘 알아줄 만한, 나와 분명 잘 어울릴법한 누군가가 존재할 거라 믿는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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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BTI가 진짜 사람의 성격을 꿰뚫어 증명하는 과학적인 검사방법인지, 또 그 정확성은 얼마나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알 길도 없다. 누군들 안 그러겠나.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설문지를 작성하고, 결과를 들여다보며 킬킬대는 동안에 시간이 훌쩍 잘도 간 것을 보면 틀림없다. MBTI는 나처럼 혼자 즐기기에도 재미있는 놀이지만, 누군가 함께 하면 더 재미있을 듯해서 이용 방법을 살짝 귀띔하자면 다음과 같다.
 
요즘 은근히 관심 가는 사람이 있다면 떠보듯 슬쩍 물어보는 것이다. 당신의 MBTI는 무엇이냐고. 아마 반색을 하며 흔쾌히 대화에 임해올 것이다. 물론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게 뭔데요? 물어올 수도 있다. 그럴 땐 더 좋다. 옆에 앉아 조곤조곤 설문지 작성 요령을 알려주고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검사 결과를 함께 기다리면 되니까. 옆자리의 그 사람이 내 MBTI 유형에 찰떡궁합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상대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고 조금씩 가까워지며, 깊게 사귀던 옛날과 달리 요즘 사람들의 '사귐'은 신속하다. 급속도로 친해졌다가 쉽게 멀어지기도 하는 초 스피드 인간관계가 성행이다.

인스타니 페이스북이니, 넘쳐나는 '친구' 사이에서 마음까지 터놓을 영혼의 단짝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인 시대다. 그래도 우리는 어딘가에 나를 틀림없이 잘 알아줄 만한, 나와 분명 잘 어울릴법한 누군가가 존재할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내가 당신에 대해 알고 싶다' 혹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궁금하다'라는 말 대신에 우리는 쑥스러움을 숨기고 농담처럼 가볍게 그렇게 묻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네 MBTI는 대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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