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큐 K리그1 2020 10라운드 서울과 수원의 경기에서 서울 조영욱이 두 번째 골을 터뜨린 후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며 뛰어나오고 있다.

서울과 수원의 경기 ⓒ 한국프로축구연맹


궁서설묘(窮鼠囓猫,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올시즌 첫 라이벌전을 앞두고 프로축구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상황이 딱 그랬다. 비록 누가 쥐이고 누가 고양이인지는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똑같이 궁지에 몰려있던 동병상련의 두 팀은 그야말로 경기내내 악착같이 서로를 물어뜯기 위하여 달려들었다. 비록 승자는 가리지 못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오히려 기대이상의 명승부가 나왔다.

지난 4일 오후 8시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10라운드 수원-서울전에서 양팀은 3-3 무승부를 기록했다. 수원과 서울은 한때 '슈퍼매치'로 불릴만큼 K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통했다. 굳이 과거형으로 언급한 이유는, 두 팀 모두 예전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그 위상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기 직전 K리그1 12개구단중 서울이 9위, 수원은 10위에 그치고 있었다. 한때 두 팀의 맞대결이 K리그 최고의 빅매치이자 사실상의 우승 결정전으로까지 불리던 시절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었다. 이제는 슈퍼매치가 아니라 '슬퍼매치'가 됐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경기내용은 의외로 치열했다. 두 팀 모두 개막 이후 극심한 빈공에 허덕였던 팀들이 맞나싶게 무려 6골을 주고받는 난타전이 나왔다. 수원이 전반에만 3골을 터뜨리며 3-1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뒷심을 발휘한 서울이 두 골을 만회하며 기어코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경기종반에는 수원 고승범과 서울 한승규에게 각각 결정적인 찬스가 한 차례씩 돌아왔으나 골대를 맞고 아깝게 무산되기도 했다.

자칫 초라하고 맥빠진 승부가 될 것을 우려했던 슬퍼매치가 의외의 꿀잼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게 때로는 정상을 향한 열망보다도, 생존에 대한 간절함이 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장면이라고 할수 있다. 승강제가 있는 프로축구에서 우승권팀들의 경쟁보다 종종 강등을 피하기 위한 하위권팀들의 경기가 더 불꽃을 튀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럴때는 잔뜩 악에 받힌 하위권팀이 상위권 팀들을 잡아내는 이변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과거의 슈퍼매치는 그야말로 K리그 정상을 다투는 우승권 팀간의 자존심 경쟁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슬퍼매치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이날 경기에서 패하는 쪽은 자칫 최하위권인 11위까지도 추락을 걱정해야할 위기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거듭되는 졸전으로 분위기가 좋지않은 상황에서 심지어 라이벌전에서까지 패배한다면 타격이 두배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양팀 모두 싫든좋든 독기가 바짝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 간절함은 곧 경기내용으로 나타났다. 경기 자체는 명승부였지만 두 팀의 처지를 고려하면 웬지 안스러운 장면이기도 했다. 정작 결과는 무승부에 그치며 두 팀중 누구도 웃지 못했다.

치열하고 짜릿했던 슬퍼매치가 끝나고 난후, 두 팀에게 남겨진 현실은 여전히 냉혹하다. 이임생 감독의 수원은 또다시 다잡은 승리를 날리며 뒷심 부족이라는 고질적인 숙제를 반복했다.

수원이 올시즌 한 경기에서 3골을 터뜨린 것은 처음이다. 부진하던 타가트가 오랜만에 멀티골을 터뜨렸고, 지도자 수업으로 이날 경기출전이 불투명해보였던 염기훈까지 외출 허가를 받아 후반 교체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끝내 이기지 못했다. 수원은 2015년 4월 18일 서울전에서 마지막 승리한 이후 무려 5년간 17경기 연속(8무9패)무승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순위는 여전히 10위에 머물렀다.

서울은 그나마 두 골차까지 뒤지고있던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다는 점에서 수원보다는 낫지만, 경기력은 여전히 엉망이었다. 불안한 수비에 허덕이는 서울은 이날도 3실점을 허용하며 K리그 12개구단중 최다 실점(21골)이자 유일하게 20실점 고지를 먼저 돌파했다. 서울이 올시즌 한 경기에서 3실점을 허용한 것은 1라운드 강원(1-3), 5라운드 전북(1-4), 6라운드 대구(0-6)전에 이어 벌써 4번째다.

특히 이날 경기전까지 9경기 8골의 빈공에 허덕이던 수원에게 최다득점 경기를 허용하며 전반에만 세 골을 내주고 끌려간 것은 서울로서는 부끄러워해야할 경기력이었다. 부진하던 공격진에서 박주영과 조영욱이 오랜만에 골맛을 본 것이 반갑지만, 수비 보강을 위하여 영입한 센터백 윤영선은 서울 유니폼을 입고 벌써 2경기 연속 PK를 내주며 불안감을 노출했다. 서울은 아직 한 경기를 덜 치른 광주를 제치고 8위로 한 계단 반등했다.

양팀 선수들은 비록 소속팀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는 별개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투지와 집중력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라이벌전다운 묘미를 선사했다. 하지만 두 팀이 왜 지금 하위권에서 고전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지 냉정한 현실을 또한번 확인한 경기이기도 했다. 다음 대결에서 재회할 때는 두 팀 모두 어딘가 애처로운 하위권 팀간의 슬퍼매치가 아닌, 본연의 슈퍼매치다운 위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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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매치 수원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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