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첫 방송돼 2년 넘게 SBS의 간판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죽어가는 골목상권과 거리 살리기를 표방하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방송 1년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상권보다는 각 식당들의 사정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가끔 식당마다 분량 차이가 나면서 형평성에 대한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골목상권과 거리 살리기는 이제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 핵심으로 다루는 주제가 아니다.

JTBC 간판 주말 예능 <아는 형님>도 초창기에는 시청자들의 질문을 멤버들의 콩트와 실험을 통해 해결방법을 찾아주는 포맷으로 진행됐다. 그러던 2016년 3월 26일 17회 방송에서 학교를 배경으로 한 '형님학교' 콘셉트가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아는 형님>은 4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형님학교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예능에서는 방영초기 잦은 유지 및 보수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통하는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JTBC는 토요일 저녁 시간에 새 예능 프로그램 <장르만x코미디>를 편성했다. 코미디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다양한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코미디의 확장성을 추구하는 퓨전 예능 프로그램이다. 2013년 한국 PD 대상을 수상했던 서수민 PD가 연출하고 김준호, 유세윤, 김준현, 안영미 등 검증된 예능인들이 대거 출연한다. 하지만 <장르만x코미디>는 방송시기가 다소 공교롭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관객도 없이 3%의 시청률로 초라하게 막을 내린 <개그콘서트>
 
 21년 역사의 <개콘>은 한 명의 관객도 없이 '그들만의 잔치'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1년 역사의 <개콘>은 한 명의 관객도 없이 '그들만의 잔치'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 KBS 화면 캡처

 
지난 6월 26일 종영한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는 21년이라는 역사가 말해주 듯 한국 코미디 역사에 엄청난 획을 그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다. MBC의 대표적인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개그계의 전설들을 대거 배출했던 <웃으면 복이 와요>조차 16년(1969~1985년)만에 폐지됐던 점을 고려하면 <개콘>의 생명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21세기에 대중들을 웃기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사람 중에서 <개콘>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

하지만 오랜 기간 대중들의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콘>의 마무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2012년 마지막 중흥기를 끝으로 조금씩 시청률이 떨어지며 쇠퇴의 기미를 보인 <개콘>은 2016년부터 평균 한 자리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종영할 때까지 한 번도 연평균 두 자리 시청률을 회복하지 못했다. 부활을 위한 제작진과 개그맨들의 노력도 이미 <개콘>을 외면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개콘>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단 한 명의 관객도 모시지 못한 채 26일 '그들만의 잔치'를 끝으로 21년의 찬란했던 역사를 뒤로 하고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개콘>은 마지막회를 맞아 김원효, 윤형빈, 강유미 ,박휘순, 이재훈, 김시덕, 이수지, 정명훈, 김영희, 오나미, 허경환 등 <개콘>의 화려한 시대를 이끌었던 주역들이 대거 등장했다(심지어 <웃찾사> 출신의 개그맨 윤택까지 깜짝 출연했다).

하지만 20년 넘게 시청자들을 웃겼던 <개콘>은 마지막회에서 웃음보다 눈물을 보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개콘>의 장례식으로 진행된 '마지막 새코너'에서 박준형이 마지막으로 무를 갈 때 신봉선, 박소영, 안소미 등 여성 개그맨들이 대거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봉숭아학당'이 끝나고 이태선 밴드가 마지막으로 연주를 했을 때는 일부 남자 개그맨들도 울음을 참지 못하며 무대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고 말았다.

<개콘>은 방송 초기부터 대학로의 소극장 개그 무대를 방송국으로 옮긴 공개코미디를 표방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관객이 없는 <개콘>은 아무리 레전드들이 대거 출연해 열연을 펼친 마지막회라 할 지라도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없었다. 결국 <개콘>은 <삼시세끼 어촌편> 등 동시간대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밀려 3%라는 초라한 시청률로 21년의 긴 역사를 마무리했다.

<개콘>출신 개그맨들 대거 출연하는 <장르만x코미디>
 
 <사랑의 불시착>에서 완벽한 악역연기를 선보였던 오만석은 <장르만x코미디>에서 콩트연기에 도전한다.

<사랑의 불시착>에서 완벽한 악역연기를 선보였던 오만석은 <장르만x코미디>에서 콩트연기에 도전한다. ⓒ tvN 화면캡처

 
흔히 남녀 사이에서 사귀다 헤어질 때는 한 쪽에서 새로운 사람이 생긴 경우가 아니라면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기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않는 게 예의라고 한다. 하지만 매주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는 방송국에서 그런 배려(?)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개콘>이 끝난 지 1주일 만에 기다렸다는 듯 jtbc에서 새로운 코미디 프로그램 <장르만x코미디>가 편성됐기 때문이다.

<장르만x코미디>를 연출하는 서수민 PD는 1995년 KBS에 입사해 1999년 <개콘>의 조연출부터 연출, 책임 연출까지 맡았던 인물이다. <용감한 녀석들> 등 인기 코너에서 출연진에게 자주 언급되며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됐다. 2013년 PD 대상 역시 <개콘>의 책임프로듀서 자격으로 받은 것이다. <개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서수민 PD가 <장르만x코미디>에서 <개콘>과는 다른 재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르만x코미디>의 주요 출연자인 김준호, 유세윤, 안영미, 김준현, 허경환은 모두 <개콘>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후 예능으로 진출해 성공을 거둔 개그맨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예능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들은 <장르만x코미디>를 통해 오랜만에 시청자들에게 콩트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 밖에 서태훈, 이상훈 등 <개콘>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개그맨들도 <장르만x코미디>로 자리를 옮겨 콩트연기를 이어간다.

지난 2월 21.7%의 케이블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사랑의 불시착>에서 메인빌런 조철강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배우 오만석도 <장르만x코미디>에서 코미디에 도전한다. 오만석은 수 많은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현장토크쇼 택시>를 진행했을 정도로 예능감도 풍부한 편이다. 오만석이 코미디 연기를 통해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지켜 보는 것도 <장르만x코미디>의 주요 관전포인트다.

<개콘>의 폐지로 지상파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진 현 시점에서 종합편성채널 JTBC의 코미디 프로그램 런칭을 반갑게 생각하는 시청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 코미디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레전드 프로그램 <개콘>에 대한 JTBC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결국 결론은 <장르만x코미디>의 재미와 시청률이 말해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의 가장 큰 미덕은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르만x코미디>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개콘> 종영 8일 만에 첫 방송된다.

<장르만x코미디>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고 <개콘> 종영 8일 만에 첫 방송된다. ⓒ <장르만x코미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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