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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32년간의 교단생활에서 물러났다. 정년이 남았지만, 이제 '떠날 때'가 됐다는 걸 깨닫고 주저 없이 학교를 떠났다. 물론 그건 남은 동료들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4년, 생계를 위한 노동과 그것이 규정하는 일과에서 벗어나 나는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완벽한 자유인'이 되었다, 고 생각했지만 내가 얻은 것은 자유라기보다는 '일상'과 '생활'이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휴식하는 공간이었을 뿐인 집이 비로소 내 삶의 가장 주요한 공간이 되었다. 퇴직 후 내가 한 일은 내 일상과 생활을 복원하는 일이었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나는 늘 일해 가용(家用)을 벌어왔고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그것은 아무런 합의 없이도 명확하게 역할을 분담해 주는 존재 조건이었다. 내가 당연히 돈을 벌어오는 것처럼, 아내도 당연히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고 우리는 믿었을 것이다. 

일터에서 돌아와 씻고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쉬다가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이면 다시 일터로 나가는 생활을 수십 년이나 되풀이해 왔다. 내가 수십 년간 거든 가사노동 시간은 죄 합쳐도 열흘이 채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가사노동, 단순 반복 노동의 집적
 
가사노동은 일상의 예사롭지 않은 단순 반복 노동의 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사노동은 일상의 예사롭지 않은 단순 반복 노동의 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 Lov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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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더는 출근 준비로 부산하지 않아도 되었을 때, 느끼는 포만감은 은퇴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나 일상이 반복되면서 그 감동은 시나브로 희미해지고 달려드는 것은 자신이 온전히 갈무리해야 하는 시간이다. 아내가 전담해 온 반복적 가사노동을 나도 얼마간 나누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든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은퇴자는 아내의 일상이 예사롭지 않은 단순 반복 노동의 집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깨달게 될 것이다. 거기서 '한 식구의 안식'이 왜 '여자가 받쳐 든'(고정희 '우리 동네 구자명 씨') 것인지를 이해한다면 그 노동의 일부라도 내가 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난 4년간 나는 기특하게도 내게 지워진 가사노동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 일이 몸에 붙으면서 일상이 선사하는 기쁨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집을 쓸고 닦으며,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고, 빨래하여 널고 걷는 일상의 복원이 나를 온전한 생활인으로 세워주었다. 

퇴직한 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집을 건사하는 일에 마음이 내켰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칩거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지만, 아내는 그간 언제나 교회 일로 바빴다. 조반 후, 딸애가 출근하고 난 뒤에 아내는 서둘러 단장을 하고 집을 나서 오후 늦게야 돌아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우리 집의 쓰레기 배출도 거의 내 손으로 해내고 있다. 양이 많든 적든 나는 가정용 수레를 이용한다.
 우리 집의 쓰레기 배출도 거의 내 손으로 해내고 있다. 양이 많든 적든 나는 가정용 수레를 이용한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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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면서 아내가 굳이 청소해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다. "점심은 좀 챙겨 드시우" 하는 정도가 고작인데, 아내가 비운, 어질러진 집을 둘러보다가 지저분하다고 청소기를 든 게 시작이었다. 남성호르몬의 기습(?)을 받은 아내는 예전과 달리 지저분해진 환경에 무심하고 대범해졌으나, 반면 나는 어느 날부터 그 흐트러진 실내가 마뜩잖아졌기 때문이다. 

퇴직 무렵에 십 년 넘게 써 망가진 물건 대신 새로 산 유선 진공청소기를 끌고 다니면서 나는 집 안 청소에 입문했다. 청소는 매일같이 실내를 쓸고,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꼴로 걸레질을 하는 정도인데, 집기를 가지런히 정리하는 따위의 일은 귀가한 아내의 몫이었다. 

웬일인지 아내는 굳이 힘으로 미는 봉 걸레만 쓰고, 나는 퇴직 한 해 전에 아내에게 쓰라고 사준 전동 물걸레 청소기를 썼다. 분당 1천 회 이상 직선 왕복 운동으로 청소해 준다는 자동 물걸레 청소기는 이제 내 가사노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구가 되었다. 걸레질 다음에 떼어낸 극세사 물걸레를 비누로 깨끗이 빨아서 건조대에 널면 청소는 끝난다. 

일상의 복원, 진공청소기 교체

필요는 개선을 낳는다. 일 년 넘게 유선 청소기를 쓰다가 무선 진공청소기로 눈을 돌린 것은 청소할 때마다 전원 코드를 옮겨가며 꽂아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섭렵하다가 이른바 '차OO'에 꽂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십몇 만  원짜리 그 물건을 샀다. 가볍고 흡입력도 그리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다OO'보다 10분의 1 가격에 살 수 있는 '차OO'을 나는 일 년 남짓 썼다. 처음엔 감탄해 마지않았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쉬운 점만 유독 눈에 들어왔다.

힘 한번 줬더니 부품이 망가지는 등 슬슬 '값싼' 물건의 문제가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제품 개발과 피드백'에 적극적이어서 세계적 기업의 제품 디자인도 바꾸어낸다는 이른바 '한국 아줌마의 힘'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살림 9단의 노련한 주부처럼 소비자원의 제품 비교 등을 꼼꼼히 살핀 뒤, 고가의 국산 무선 청소기를 할부로 샀다. 나는 이 결정에 아내의 '허락' 대신 이러저러하여 이걸 사려고 한다고 통보했다.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것은 청소 당사자로서 내가 제시한 구매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동의였다.

청소를 마치고 나면 빨래를 돌린다. 세탁기 사용법은 너무 간단해서 그걸 왜 진작 배우지 않았는가 후회될 정도였다. 단추 몇 번 누르는 거로 자동세탁기는 탈수까지 끝낸 세탁물을 토해낸다. 빨래를 베란다에서 널다가 한참씩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나는 내가 반쯤은 주부가 된 듯한 묘한 성취감을 즐기기도 한다.

나는 따로 돌려야 하는 빨랫감을 구분하는 일도 해내고, 건조대에 걸쳐서 말릴지 옷걸이에 걸어서 말릴지도 나름 판단한다. 빨랫감을 세탁기 앞 플라스틱 광주리에다 넣으면서 빨랫감의 수량을 살펴서 언제쯤 세탁기를 돌려야 할지를 가늠하기도 한다. 

집안일을 하면서 그게 힘들다거나 귀찮다고 여긴 적은 없다. 하긴 내 일이란 건 고작 '아내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에 숟가락 하나 걸친 것일 뿐이니 말이다. 요즘에는 아내가 집에 있어도 빨래를 돌리고 너는 일을 내가 대신하기도 한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 때마다 세탁기가 가사노동에 얼마만 한 이바지를 했는지 새삼 확인하곤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철이 나는 법이다. 그래도 젊은 시절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집안일을 지금 무심히 해내고 있으니 가히 경천동지할 일이다.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침구조차 제대로 개지 않았던 마초 가장으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다. 아내는 무심한 듯 당신, 제법 주부 노릇을 해주네요, 하고 배시시 웃었다.

가사를, 집을 건사하는 일에 신경을 쓰고 청소를 몸에 붙이면서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분한 것도 눈에 띄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 현관의 어질러진 신발들, 미처 끄지 않은 전원 따위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냥 치우면 될 것을, 입에 올리기라도 할라치면 아내는 단박에 '잔소리 영감'이라는 타박을 날리곤 한다. 

'아내의 시간' 시작은 신의 안배

나는 밤에 자다가 여러 차례 물을 마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온 오래된 습관인데, 자기 전에 마치 무슨 의식처럼 물 한 그릇을 머리맡에 준비하곤 했다. 퇴직 전까지 잠자리에 드는 남편을 위해서 이 '자리끼'를 마련해 주는 일은 아내가 도맡았었다.

그리고 그 세월이 무려 서른몇 해, 아내 말마따나 남편 시중들면서 그는 시나브로 늙어버렸다. 아내가 이 일에서 해방된 것은 내 퇴직 이후였을 것이다. 먼저 자리에 든 아내더러 '물은?' 하고 물었을 게고 아내는 '당신이 떠 오구려' 정도로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럴까' 하고 나가서 자리끼를 챙긴 어느 날 밤부터였을 것이다.

자리끼 챙기기가 내 일이 된 지 어느새 몇 해가 지났다. 이제 아내는 '자리끼' 따위엔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다. 나는 늘 물 한 그릇을 떠서 머리맡에 두고 자리에 드는데 아내는 무심하기만 하다. 한번은 내가 "당신은 이제 자리끼 떠 주던 건 생각도 안 나지?" 했더니 "그럼, 평생을 당신에게 봉사했으니 이제 됐잖아?" 하고 심드렁하게 받았다.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말마디에 든 어떤 결기가 느껴져 등이 서늘해졌었다.

그렇다. 평생을 내게 봉사했다는 아내의 말은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으며 나는 여기에 어떤 유감도 없다. 더는 기력이 없어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오기까진 난 자리끼를 떠나를 것이다. 만약 아내에게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감당해야 할 부담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진실로 아내가 건강을 잃는 일은 없기를 나는 빌고 또 빈다.

퇴직 후 가사노동을 몸에 붙이는 시간은 내 개인사에서 꿈 같은 반전의 시간이었다. 무심한 마초 가부장이 아내의 가사노동을 소 닭 보듯 했던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해 준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게 우리 내외가 각각 지고 온 이 나라 가시버시의 역할과 지위를 결코 뒤집지는 못한다는 걸.

그래도 여자는 남자처럼, 남자는 여자처럼 변하는 노년의 호르몬 분비 감소 현상은 '신의 한 수' 같다. 그것은 한평생 누려왔던 남편의 전성시대가 스러지고 아내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조물주의 안배가 아니던가 말이다. 

이 글을 쓰느라 아침 청소가 좀 늦어졌다. 나는 충전해 둔 무선 진공청소기를 거치대에서 빼내어 손잡이를 최대한으로 늘이면서 거실로 나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 개인 블로그(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태그:#가사노동, #퇴직 후 일상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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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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