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시즌 초반 K리그의 두드러진 이변 중 하나는 '수도권 팀들의 동반부진'이다. 25일 현재 K리그1 순위표에서 하위 5팀중 4팀이 모두 수도권 팀들이다. K리그1 수도권 팀중 가장 높은 순위에 올라있는 수원 삼성이 고작 8위이고 성남FC가 9위(이상 2승2무4패)에 그치고 있다. 심지어 FC 서울(2승 6패)과 인천 유나이티드(2무 6패)는 나란히 11위와 12위로 강등권에 위치해있다.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상위 스플릿에 수도권 팀들이 단 하나도 없었던 경우는 전무하다.

서울, 수원, 성남은 나란히 K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경험이 있는 전통의 명가이고, 인천도 승강제가 도입된 이후 변함없이 1부리그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수도권 팀들간의 라이벌전은 마계대전(수원-성남), 슈퍼매치(서울-수원), 경인더비(서울-인천) 등으로 불리며 K리그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옛날의 영광이 무색하듯, 수도권 팀들은 올시즌에는 단 한 팀도 상위스플릿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초라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대로라면 올시즌 수도권 팀 중에서 강등팀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FC서울 최용수 감독이 경기를 보고 있다. 2020.5.31

5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FC서울 최용수 감독이 경기를 보고 있다. 2020.5.31 ⓒ 연합뉴스

 
올시즌 수도권 팀들의 맞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처절하고 슬픈 라이벌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는 27일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서울과 인천이 올 시즌 첫 '경인더비'를 치른다. 서울은 지난 시즌 최종전에서 리그 3위에 오르며 ACL 티켓을 따냈고, 인천은 유상철 전 감독의 투병 투혼을 앞세워 리그 잔류를 확정지으며 나란히 최종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바 있다.

하지만 올시즌에는 나란히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최용수 감독의 서울은 최근 5연패의 수렁에 빠져있다. 안양 LG 시절인 1997~1998년 기록한 7연패에 이어 구단 역사상 최다연패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최 감독 부임 이후로는 처음 겪는 굴욕이다. 특히 6라운드에서는 대구 FC(0-6)에 구단 역대 최다 점수 차 패배(1987년, 1997년 1-7패) 타이 기록인 6골차의 참패를 당하기도 했다. 한때 우승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던 팀이었던 '양강' 전북과 울산에게도 잇달아 완패했다.

임완섭 감독 체제의 인천은 올시즌 8연속 무승으로, K리그1 12개 구단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승리를 맛보지 못했다. 첫 2경기에서만 무승부를 기록했을뿐 이후로 내리 6연패다. 하위권 탈출을 위하여 중요한 분수령이었던 17일 광주FC 원정(1-2), 21일 부산 아이파크 홈경기(0-1)에서 승격팀들을 상대로도 연패를 끊지 못한 게 치명타였다. 인천은 그동안 '생존왕'이라는 별명을 얻을만큼 1부리그에서 여러 차례 강등 위기를 극복하고 잔류했지만 올시즌에는 정말로 강등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분위기다.

두 팀 모두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나마 서울이 다소 낫다는 평가다. 서울은 경인더비 역대 전적에서 21승 17무 11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 내용상으로는 팽팽한 접전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서울은 최근 울산으로부터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윤영선을 임대 영입했다. 서울은 오스마르-황현수 등 주전 수비수들의 줄부상으로 고전하며 5연패 기간 동안 무려 14실점을 허용할만큼 수비진이 무너진 상태였다. 윤영선은 호화멤버가 즐비한 울산에선 충분히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카잔의 기적'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자 K리그 통산 235경기 출전에 빛나는 윤영선의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대인마크 능력은, 최근 스리백에서 포백 전술로 전환한 서울 수비에 안정감을 더해줄 전망이다. 박주영, 아드리아노, 고요한 등 부진한 전방 공격수들의 결정력 부활이 관건이다.

인천은 가뜩이나 부족한 전력에 줄부상까지 겹치고 있다. 최전방 공격수 케힌데가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아웃된데 이어, 또 다른 외국인 공격수 무고사마저 21일 부산전에 발목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지만 서울전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앙수비수 고르단 부노자마저 복귀전에서 또다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9일 오후 4시 30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1 첫 라운드 대구 FC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모습. 인천 임완섭 감독.

9일 오후 4시 30분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20 K리그1 첫 라운드 대구 FC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모습. 인천 임완섭 감독. ⓒ 한구프로축구연맹


인천은 올시즌 8경기에서 고작 3골(김호남 2골, 무고사 1골)에 그치며 서울(5골)을 제치고 리그 최악의 공격력을 기록중이다. 마땅한 공격 자원이 없는 탓에 임완섭 감독이 장신 수비수 김정호를 여러 차례 교체 공격수로 투입해야했을 정도다. 전력보강이 가장 시급한데 정작 윤영선을 영입한 서울이나, 나상호를 보강한 성남 등에 비하여 진전이 느리다. 인천은 지난해도 최하위권에서 허덕이다가 여름 이적시장에서 케힌데, 마하지, 김호남 등 무려 8명의 선수들을 폭풍 영입한 이후 후반기 극적인 반등에 성공한 바 있다.

서울과 인천 모두 경인더비가 위기이자 기회다. 각각 최악의 상황에 놓여있는 서로를 상대로 모처럼 승수를 챙길 수 있다면 분위기 반전의 기회가 되겠지만, 자칫 또 패한다면 심리적 타격은 배가 된다. 더구나 두 팀 모두 경인더비 이후의 일정이 더 험난하다. 인천은 이후 울산 현대(7월 4일), 상주 상무(11일), 전북(19일) 등 상위권 팀들을 줄줄이 만난다. 서울은 바로 다음달 4일에 수원과의 '슈퍼매치'가 기다리고 있다.

서울과 수원의 대결은 한때 K리그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통했다. 수많은 국가대표급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이 활약하며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슈퍼매치라는 이름이 부끄러울만큼 무게감이 떨어졌다. K리그 우승을 다투는 강호는 이제 서울이나 수원이 아니고, 전북과 울산이다.

전성기가 지난 박주영(서울)과 염기훈(수원)이 아직까지 양팀의 최고스타로 꼽힐만큼 세대교체나 전력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양팀의 초라한 팀순위와 맞물려 더 이상 슈퍼매치가 아니라 '슬퍼매치' '실패매치'라는 자조섞인 농담도 나온다.

스포츠 세계에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지만, K리그 흥행과 역사를 대표하는 수도권 팀들의 동반 부진과 위상 하락은 팬들에게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과거의 명성은 말그대로 과거일뿐, 지속적인 투자나 야망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수도권 더비가 우승 트로피를 건 다툼보다는 사실상 '강등권 탈출'을 위한 한판 승부가 되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라이벌전이 되어버린 올해의 수도권 더비를 바라보는 팬들의 감정이 미묘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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