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오랜 시간 구타와 학대, 성폭력에 시달리다 남편을 살해했다. 법원은 그녀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정당방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당시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가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권력의 불충분한 개입과 사회적 무관심이 낳은 결과다." 2012년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만약 그녀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어떤 판결이 나왔을까?
 
가해 남성을 살해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한국 사례는 0건. 돌아온 연극 <두 줄 생존사-침해의 현재>는 이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다. 지난 16일 김은미 연출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연극 <두 줄 생존사-침해의 현재>은 3년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지난 두 해 동안 여성 폭력의 피해자로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두 줄 생존사 : 침해의 현재> 김은미 연출

<두 줄 생존사 : 침해의 현재> 김은미 연출 ⓒ 우민정

   
생존 여성들의 이야기
 
극 중 상미는 25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가정폭력 피해자다. 언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상미는 살기 위해 남편을 죽인다. 전작 <두 줄>의 이야기이다. <두 줄 생존사-침해의 현재>는 그 이후 교도소에 가게 된 상미의 이야기이다. '부잣집 사모님'이었던 상미는 이제 교도소에 살지만, 차라리 편하다고 말한다. "때리는 사람도 없고 도망 다닐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피해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살해하게 되는 게 아니에요. 무수히도 많은 살해 위협을 당하고, 살아보려고 경찰에 신고도 해도 결국 훈방 조치로 끝이 나고, 보복으로 더 심한 폭력을 당하죠. 실제로 이런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죽은 여성들도 많아요. 오랜 폭력에 시달린 아내들은 아는 거죠. 자기가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는 걸요."
 
살해 위협을 느껴 한 행동임에도 상미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침해의 현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판사는 남편이 상미를 때리는 순간 방어를 했어야만 정당방어가 인정이 된다고 말한다. 사실 남편이 때리는 순간이라 할지도 정당방위가 인정될 리 없다. 그녀는 살아있는데 반해, 남편은 죽었기 때문이다. 당한 폭력만큼만 되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건 '과잉 방어'이다. 법은 "때린 손만 공격하라"고 말한다.
 
"가해자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경제적, 정서적 등 다양한 방식을 피해자를 통제하잖아요. 모든 게 가해남성의 손에 달린 상황이니까 그 속에서 피해자는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거죠. 그런데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는 그런 가정폭력의 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요. 딱 한 순간만 잘라놓고 물리적 폭력이 있었냐만으로 '침해의 현재'를 따지는 거예요."
 
 포스터

포스터 ⓒ 우민정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이유
 

연극 <두 줄 생존사-침해의 현재>에 상미의 이야기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상미와 함께 가정폭력 피해를 경험한 상미의 딸 희고, '데이트 폭력' 피해를 경험한 10대 여성 은별, 치매 이후 자위를 시작한 70대 여성 순이도 등장한다.

이렇게 세대를 넘어 다양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건 세대를 넘어 여성폭력이 이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한다. 극의 제목 '침해의 현재'는 법적 용어이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의 상황을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김은미 연출은 이번 작품을 통해 누구도 타자화하지 않는 여성폭력 이야기를 생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작을 할 때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집중해 극을 구성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관객들이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식으로 타자화하고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한 사람의 처절한 이야기에 빠져들기보다는 이게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이야기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스토리의 몰입감을 채우기보다는 다양한 서사를 배치했어요. 관객들이 좀 더 거리를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극을 만들고 싶었어요."
 
무대 위에 전혀 달라 보이는 상미와 혜원의 집을 함께 배치한 것도 그 이유다. 혜원은 '가정을 지키지 않고' 매를 못 이겨 남편을 죽였다는 이유로 상미를 힐난하지만, 자신의 딸이 데이트 폭력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이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연극 <두 줄 생존사-침해의 현재>는 무대 위에 드러낸다.
 
김은미 연출이 연극을 본 후 관객들이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살아있는 모두의 무대가 열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꺼내지 않으면 죽은 현실이 되고, 폭력과 저항의 기록은 영영 침묵 속에 갇힌다. 2020년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온 <두 줄 생존사-침해의 현재>는 여성들이 겪는 침해의 현재진행형 기록이기도 하고, 침묵을 깨기 시작한 여성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연극 두줄은 7월 3일부터 7월 12일까지 서울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상연된다.
 
 좌측 뒤부터 김지은 협력연출, 김은미 연출, 정희영 배우, 김보경 배우, 방선혜 배우, 박경은 배우, 박재승 배우

좌측 뒤부터 김지은 협력연출, 김은미 연출, 정희영 배우, 김보경 배우, 방선혜 배우, 박경은 배우, 박재승 배우 ⓒ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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