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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선언으로 설치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2020년 6월 16일 오후 2시 50분에 북측에 의해 폭파되었다. 국내 언론은 이를 두고 "김정은, 판문점 선언을 폭파했다"라고 전했다. 남북연락사무소가 폭파된 것은 사실이지만 판문점선언이 폭파된 것은 아니다. 4.27판문점선언의 시대정신은 폭파될 수도, 폭파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사흘 전인 6월 13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에 의해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고됐다. 그리고 폭파된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한이 지난 6월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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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새로운 길 선언... 한국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북은 이미 2019년 12월 31일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상황을 정리했다. 미국의 분단 유지 정책과 적대정책이 불변임을 확인하고 이를 정면 돌파하겠다고 결론지었다. 4.27판문점선언을 출발점으로 6.12싱가포르 북미회담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①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적대청산), ②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③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완전한 비핵화 약속, ④ 미군 유해 송환 등의 약속 등을 물거품으로 만든 2.28하노이 2차 북미회담 이후 북한은 미국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완전히 접은 것이다.

북이 이처럼 극한적인 선택을 했다면,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우리도 우리 나름의 새로운 길을 심각히 고려했어야 했다. 북이 처한 객관적 상황과 한국 정부가 처한 객관적 상황에 전혀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19평양선언과 9.25한미정상회담 후 위기의식을 느낀 네오콘의 발 빠른 대응으로 이미 한국 정부는 한미워킹그룹 가동(2018.11.20)이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상태였다. 때문에 남북관계의 위기를 직감한 정부 나름으로 북이 정면 돌파를 기치로 내건 '새로운 길'에 전략적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그 깊은 블랙홀에서 한 걸음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을 맞이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도 더는 숨 쉬기 어려운 상황

북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북 나름으로 더 이상 '숨 쉴 수 없다'는 외침으로도 볼 수 있다. 사실은 북도 남도 미국 앞에서는 똑같이 '숨 쉴 수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화의 목을 조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미국의 국가이익이고, 이를 철저하게 대변하면서 옥죄고 있는 게 한미동맹 프레임이라고 필자는 본다.

미국에서 터진 '숨 쉴 수 없다'는 외침은 미국사회 민낯을 보여준다. 그 외침은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체포할 때 가혹행위를 해도 공무집행으로 면책될 수 있는 불평등한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흑인들은 조지 플로이드가 죽어가며 외친 "I can't breathe!"에 분노하고, 흑인 목숨도 중요하다는 "Black Lives Matter"를 외치면서 "과연 미국 어디에 민주주의가 있는가"란 팻말을 들고 격렬한 시위를 수 주 동안 이어가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경찰개혁안을 담은 행정명령에 서명했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숨 쉬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국가이익과 세계전략을 대변하는 비핵화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 프레임은 대북제재를 통해 군사적 압박 이상의 경제적 압박을 통해 북한을 생존의 절벽으로 몰아갔다. 마치 백인 경찰이 흑인 용의자를 체포하기 위해 비인도적 가혹행위를 해도 면책되는 것처럼 비핵화 프레임과 대북제재 프레임을 면책권 삼아 대북제재를 강화해 온 것이다. 그 프레임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북은 핵 개발을 지속했고,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다.

판문점선언은 일촉즉발 전쟁 위기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살려내 북미회담의 문을 열고, 북미관계개선 대화테이블을 마련했다.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 그 첫 걸음을 뗀 것이다. 그러나 톱다운 형식의 트럼프-김정은 싱가포르 회동은, 볼턴의 회고록 주장이 사실이라면, 애초부터 단순한 '홍보행사'에 불과했다. 트럼프에게 북미회담은 비즈니스용 홍보행사였을 뿐,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은 애초부터 없었던 셈이다. 이런 트럼프에게 비핵화·대북제재 프레임을 개고 북미관계를 개선하리라고 기대했던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도 있던 것이다.

미국 내 흑인 생명이 중요하듯, 한반도 한국인들 생명도 존중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른 것처럼 한반도도 남북전쟁을 치렀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미국 민주주의를 탄생시켰지만, 한반도 남북전쟁은 민주주의 목을 조였다. 미국이 남북전쟁을 치렀음에도 흑인 불평등 구조가 엄연한 것처럼, 한반도 남북전쟁은 여전히 이념적 대결 구조를 존속시켜왔다. 한반도는 미국의 국가이익에 종속돼, 스스로의 힘으로는 한미관계의 옥죄임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판문점선언은 한반도 내에서 남과 북이 이념적 대결 구조를 청산하고 평화의 길을 함께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70년에 걸친 전쟁상태 종식을 위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평화의 새 시대를 열겠다고 마음과 뜻을 모은 것이다. 다만 분단 당사자인 미국이 분단 구조 해소에 동의하고, 북미관계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의 문을 열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이 평화의 문을 열어 따뜻이 맞이해 준다면, 남이 평화프로세스를 통해 북을 돕고, 북은 안보위협 해소를 통해 비핵화의 길을 열어 남북 모두의 새로운 생명존중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손을 잡고 건너고 있다.
▲ 손 잡고 군사분계선 넘는 남-북 정상 2018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4월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손을 잡고 건너는 모습.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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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진정 인본주의를 앞세운 민주주의 국가라면, 당연히 이를 뒷받침해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 여정을 위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오히려 미국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소식 뒤 대북 군사적 압박 움직임에 바쁘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의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군사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올 여름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와 "핵능력 폭격기와 항공모함, 핵 잠수함 등 전략자산" 전개 필요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대북 경제제재 행정명령의 효력을 연장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재차 강조했다. 이제 비즈니스용 홍보행사는 끝났고, 미국의 국익을 위한 본연의 자세로 돌아간다는 선언이다. 과연 미국은 '한국인들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사실을 생각이나 하는 것일까.

자칭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 기억해야 할 문서, '평화의 도전'

미국은 자칭 기독교 국가이다. 미국대통령은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선서를 한다. 기독교 정신에 따라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I can't breathe> 시위가 백악관 앞까지 진출하자 6월 1일 시위대를 물리치고 예고 없이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를 방문해 성서를 손에 들고 사진 찍는 퍼포먼스를 단행했다. 다음 날에는 가톨릭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당을 방문했다. 교회와 성당 관계자들은 "성경은 소품이 아니다", "교회는 사진 촬영 명소가 아니"라고 일갈했다. 진정한 평화와는 반대되는 행위라는 것이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1983년 5월에 「The Challenge of Peace: God's Promise and Our Response(평화의 도전: 하느님의 약속과 우리의 응답)」이란 제목의 사목 서한을 발표한 바 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미국 가톨릭의 입장을 담은 문서이다. 비록 시기적으로는 미·소간 동서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나온 목소리지만, 오늘날 미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예를 들면 문서는, 동서냉전 시대에 동서 블록 내 일반 주권국가들의 시스템이 두 초강대국의 핵 능력에 의해 완전히 부정당하고 있음을 비판했다. 그런데 구 소련 붕괴 뒤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에 의해 비슷한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거나 더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패권시대 속 인류사회의 평화는 희망이 있는 것일까? 그런 모습의 한 단면이 한반도 평화임을 미국이 부정할 수 있을까.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1983년 5월 발표한 ?The Challenge of Peace: God's Promise and Our Response(평화의 도전: 하느님의 약속과 우리의 응답)? 사목 서한(표지사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미국 가톨릭의 입장을 담은 문서로, 오늘날 미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가 1983년 5월 발표한 "The Challenge of Peace: God"s Promise and Our Response(평화의 도전: 하느님의 약속과 우리의 응답)" 사목 서한(표지사진). 전쟁과 평화에 대한 미국 가톨릭의 입장을 담은 문서로, 오늘날 미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많다.
ⓒ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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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미국이 자국중심의 국가이익 추구를 인류사회를 위한 "이상에 부응하는 척 가장하는" 위선을 경계하고, 우선 "우리(미국)의 결점을 인정하고 난 뒤에 현실에 대항하는 것이 맞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대내외 정책에서 민주적 가치와 인권을 앞세우지만, 먼저 "우리의 헌신을 엄밀히 검증"해 상대방의 민주적 가치와 인권을 말살할 수 있음을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를 회피하고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하려는 위선적인 시도"는 윤리적으로 비난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문서에서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베트남에 가져 온 절망과 우리 사회에 끼친 피해의 수위가 너무 높아졌기에 전쟁을 지속할 정당성이 없었다고 최종적으로 결론지었음"을 밝히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전쟁 이후 분단 심화로 인한 한반도의 절망과 피해의 수위를 생각한다면, 오늘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한반도에 대해서도 똑같은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특히 미국 가톨릭 주교회의는 선제공격의 비윤리성에 근거해 미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했는데, 이 기본정신에 비추어 본다면, 오늘 미국의 대 한반도 군사압박정책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북한과 미국에 상관 없이... 한국은 '평화의 길'을 뚜벅뚜벅 가자 

설사 북의 위협이 계속 고조된다 하더라도, 한국은 흔들림 없이 평화의 발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볼턴이 주장하듯 판문점선언이 한국 정부의 창의적 소산물이었다면, 그리고 그 노력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장정이었다면, 미국 간섭이나 북한 실망이 잠시 걸림돌이 되더라도 흔들림 없이 평화의 길을 열어 가야 한다. '판문점선언의 시대정신 구현'이란 오체투지를 멈출 수 없다. 뚜벅뚜벅 '진인사대천명' 외로운 길을 가야만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한반도 평화를 향한 국민적 의지 결집을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그간 남북 정상 간에 이루어진 6·15, 10·4, 4·27, 9·19 등 4대 남북 합의에 대한 국회의 비준이다. 전쟁의 참혹함 앞에서 여와 야, 진보와 보수, 친북 혹은 친미, 반북과 반미를 따질 것인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민 의지가 확고함을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모습이 국회 비준이다.

둘째, 오늘 이 엄중한 상황에 대한 깊은 현실 인식과 성찰이 필요하다. 북은 왜 '숨 쉴 수 없다'는 외침을 그토록 거친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지, 남쪽이 느낀 외침은 왜 침묵 속에 버려져 왔었는지. 평화를 위한 안보인지 아니면 안보를 위한 거짓 평화인지, 도대체 한반도 평화의 주인은 누구이며 미래세대에서 물려줄 평화는 무엇인지.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셋째, 한반도 평화를 향한 행동이 필요하다. 국민 대표인 국회가 한반도 평화 디자인 법제화를 위해 4대 합의 비준을 한다면, 국민들도 역사적 대의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미국이나 북한이 뭐라 하든 자국민들의 깊은 현실 인식과 성찰 결과를 행동으로 보일 필요가 있다. 그 첫 걸음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우리의 외침이며 행동과 실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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