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고, '우승 전력'에 거리가 멀어보였던 학교들이 새로이 사람들의 관심 속에 섰다. 이번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는 강팀으로 분류되었던 학교들이 대거 탈락하는 큰 이변 속에 새로운 학교, 새로운 영건들의 등장해 야구 팬들에게 신선함과 반가움을 안겼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김해고와 강릉고, 그리고 8강에서 발걸음을 멈춰야 했지만 기량만큼은 충분히 좋았던 '다크호스' 경기상업고와 율곡고의 대표 투수를 한 명씩 뽑아 살펴보았다. 어쩌면 이 선수들이 내년, 내후년 KBO 리그를 이끌 새로운 유망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에이스의 자격 톡톡히 보여줬다, 강릉고 김진욱
 
 황금사자기 대회 내내 강릉고등학교의 대들보가 되었던 김진욱 선수.

황금사자기 대회 내내 강릉고등학교의 대들보가 되었던 김진욱 선수. ⓒ 박장식

 
이번 황금사자기 강릉고의 결승전에서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7.1이닝 동안 11번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괴물투수였던 김진욱은 이번 황금사자기 기간 내내 미디어와 스카우터들의 관심을 몰고 다녔다. 지명이 유력한 롯데 자이언츠의 성민규 단장, 이석환 대표이사가 함께 김진욱이 등판하는 경기를 지켜봤을 정도였다.

김진욱은 그에 걸맞는 성적의 호투를 펼쳤다. 광주제일고와의 첫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 7K로 올해 첫 쇼케이스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서울컨벤션고와의 경기를 쉬었던 김진욱은 경기상고와의 8강전에서 4이닝 동안 12타자를 10K로 돌려세우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워 보는 이들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김해고와의 결승전에서도 2회부터 9회까지 등판해, 제한 투구인 105구까지 가는 투혼을 펼쳤던 김진욱은 아쉬운 패전을 안았지만 투구 내용이나 경기 운영 면에서 호평을 받았다. 탈고교급 실력을 마음껏 발산했던 김진욱은 앞으로의 대회, 주말리그 등에서 보여줄 모습이 더욱 주목되는 선수이다.

강릉고 최재호 감독은 "김진욱은 프로 무대에 가면 잘하리라고 본다. 정말 열심히 하는 선수고, 공도 잘 던진다"라면서도, "프로 무대에서 통하려면 변화구 등을 갈고 닦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진욱 선수는 "안되는 부분을 많이 수정하고, 타이밍을 뺏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변화구 제구와 위기관리 능력이 좋은 류현진 선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밟는 걸음마다 새로운 길', 김유성이 앞장섰다
 
 황금사자기에서 에이스로 떠오른 김해고등학교 김유성 선수.

황금사자기에서 에이스로 떠오른 김해고등학교 김유성 선수. ⓒ 박장식

 
2003년 이후 17년 동안 김해고등학교 야구부는 전국대회에서의 실적과 큰 인연이 없었다. 그랬던 김해고가 올해 새로운 역사를 썼다. 첫 전국대회 4강과 우승을 한 번에 기록한 것이었다. 그런 김해고의 우승 행진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선수 중 한 명이 이번 대회 깜짝 스타였던 김유성이었다.

김유성은 청주고와의 경기에서 첫 등판을 가졌다. 김유성은 4회부터 등판해 상대 타선을 상대로 단 한 개의 안타, 한 점의 실점만을 허용했다. 경기 끝까지 9개의 탈삼진을 뺏어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김해고 투수 김유성의 이름을 스카우트와 야구 팬들에게 각인시킨 순간이었다.

광주진흥고와의 준결승전에서도 등판한 김유성은 2.1이닝 동안 퍼펙트 피칭을 선보이며 광주진흥고의 타선을 묶었다. 이날에만 5개의 삼진을 기록했다. 결승전에서는 그간 아낀 투구를 모두 썼다. 2회부터 등판해 6이닝동안 7탈삼진을 기록하며 강릉고를 상대로 호투를 펼쳐, 이번 대회 우수투수상을 받는 영예를 입었다.

박무승 감독은 "덕아웃에 앉아 있을 때에는 평범한 고3이다. 하지만 마운드 위에서는 전투사가 된다. 그래서 감독으로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은 선수"라며, "그래서 김유성 선수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있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금 더 대범하게 플레이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유성 선수는 부쩍 늘어난 관심에 "아직 프로에서 던지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쑥쓰러워했다. "상대 투수를 신경쓰지 않고 내 공을 던지려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는 그는, 롤 모델을 묻는 질문에는 "따로 없지만, NC 구창모 선배의 영상을 많이 보고 배웠다"고 말했다.

율곡고 8강 행진에 기여했다, 2학년 이준혁
 
 율곡고등학교의 이준혁 선수.

율곡고등학교의 이준혁 선수. ⓒ 박장식

 
율곡고등학교 역시 이번 대회 돌풍을 일으켰다. 그 중심에는 어린 패기로 중무장하고 나온 2학년의 이준혁 선수가 있었다. 첫 등장부터 부산고의 막강한 선수들을 침묵시키며 주목받았던 이준혁은 앞으로 많이 남은 올해의 대회와 내년 전반기 대회에서 더욱 나은 기량을 선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고와의 경기에서 이준혁은 4이닝 1실점, 6K라는 좋은 성적으로 부산고 타선을 꽁꽁 묶었다. 이어 오른 3학년 도재현에게 마운드를 넘길 때까지 강력한 투구를 선보인 이준혁은 스카우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준혁은 광주진흥고와의 8강전에서도 투수로서 보기 힘든 허슬 플레이를 선보였다. 선발로 7이닝을 등판해 7개의 삼진을 올리며, 3개의 실점에 그쳤다. 8회 초 이준혁이 다시 강판될 때에는 투수가 아닌 1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팀의 마무리 역할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서준호가 제구 난조를 보이며 예상보다 빨리 마운드에 내려가자 이준혁이 올랐다. 주자가 쌓여있는 상황, 단 2개의 공으로 실점을 막은 이준혁은 위기관리 능력을 내보이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두 번째 등판이 부담이 되었는지, 아쉬운 마무리로 팀의 우승에 기여하지는 못했다.

팀의 궃은 일까지 아낌없이 해내는 모습에 스카우트와 관계자는 물론 상대팀 감독까지 이준혁을 다시 보게 되었다. 8강전에서 맞붙었던 광주진흥고 오철희 감독은 "이준혁 선수의 결정구도, 슬라이더도 좋다"면서, "내년에 엄청나게 발전할 선수가 될 것 같다"고 칭찬했다. 

'재창단 2년차' 경기상고 8강 등극의 주역 전영준
 
 경기상업고의 황금사자기 8강 진출을 이끈 전영준 선수.

경기상업고의 황금사자기 8강 진출을 이끈 전영준 선수. ⓒ 박장식

 
여러 프로 선수들을 배출한 학교이지만, 여러 번의 창단과 해체, 재창단을 거듭해 올해로 재창단 2년차를 맞이한 경기상업고등학교가 이번 황금사자기에서 높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다. 경남고등학교 등 강력한 학교들을 꺾으며 전진한 경기상고의 전력의 중심에는 전영준이 있었다. 

전영준은 대회 내내 치러진 경기에 모두 등판해 뒷문을 막아냈다. 인천고, 경남고, 심지어 강릉고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상대들과도 밀리지 않는 수싸움을 펼쳤다. 12이닝 무실점에 11번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강릉고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도 등판해 막판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애쓰기도 했다.

구속은 이번 대회 138km/h 정도가 최고 구속으로 찍힐 정도로 그리 빠르지 않지만, 제구와 구위, 그리고 위력적인 변화구로 타이밍을 뺏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그 중에서도 슬라이더는 고교야구 최고의 슬라이더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최덕현 감독도 "구위와 슬라이더가 참 좋다"며 전영준을 칭찬했다.

전영준 선수는 "한 타자, 한 타자씩 잡는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다"라며, "등판할 때마다 내 뒤에는 누구도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등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고교대회 통산 방어율을 0점으로 만들고 싶어, 슬라이더를 중심으로 다듬고 있다"고 포부도 밝혔다.

닮고 싶은 선수는 있을까. 전영준 선수는 오승환(삼성)을 닮고 싶다며, "마운드에서 포커 페이스하는 게 대단해 보인다"며 "시합 내내 떨렸는데 오승환 선배님은 표정변화 없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막아내는 것이 멋있으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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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황금사자기 김진욱 김유성 유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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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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