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국여성노동자회는 회원 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페미워커클럽>은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함께 감상하고, 성평등 노동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비평한 문화의 이야기를 '페미워커의 모두까기'라는 제목으로 비정기 연재한다.[편집자말]
지난 10일, 한국여성노동자회 내 소모임인 '페미워커클럽'은 온라인 모임을 진행했다. 넷플릭스 파티라는 단체 채팅 방식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영화는 <김복동>을 골랐다. 요즘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위안부 운동을 우리가 어떻게 고민해야 할지 함께 나누기 위해 고른 영화였다. 오프라인으로 모였던 모든 사람이 울었다. 영화가 끝난 후 한 분이 말했다. "지금 정말 봐야 할 영화인데, 지금 보기 너무 힘든 영화"라고 말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수요집회를 갔던 이유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444회 정기 수요시위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444회 정기 수요시위에서
ⓒ 정의기억연대

관련사진보기

 
나는 영화를 보면서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생각났다. 우연히 한 청소년 잡지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알게 된 지 별로 안 됐을 때였다. 왜 내가 이런 심각한 문제를 이제야 알게 됐는지 답답했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때 내가 한 선택은 처음으로 서울까지 혼자 가서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집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오로지 할머니를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서울까지 갔다. 내가 알게 된 이 문제가 정말 현실에 있는 사실인지, 그 목격자이자 증인인 할머니를 보고 싶었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내가 느낀 충격과 다짐을 할머니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집회는 굉장히 소규모였다. 할머니 두 분(지금 생각하니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였다)이 와서 함께 앉아있었지만, 정말로 소규모였다. 우리를 둘러싼 경찰과 엇비슷하거나 혹은 더 적은 인원이 모인 집회가 끝난 후, 나는 어렵지 않게 김복동 할머니와 대화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할머니의 손을 잡고 엉엉 울며 이제야 알게 돼서 죄송하다고,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 약속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토닥여주며 이제라도 알아줘서 고맙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이 문제를 많이 알려달라고 그런 부탁을 했다. 

내 인생의 첫 집회 참여는 그렇게 사건이 아닌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대학에 가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속하게 된 진영 내에서 보는 위안부 운동은 사람이 아닌 사건이었다. 우리는 위안부 운동 내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위안부 운동이 민족주의 운동이냐, 아니냐를 논했고, 위안부 운동이 성공한 운동인지, 실패한 운동인지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의 위안부 운동은 일본을 적대시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라고 평하고 실패한 운동으로 규정지었다. 

그래서 나는 수요집회를 더 가지 않았다. 그날 내가 만났던 할머니들은 잊혔다. 그 할머니들의 고통도, 말들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피해 서사, '소비'만 하는 건 아닐까?
 
 영화 <김복동> 스틸 사진
 영화 <김복동> 스틸 사진
ⓒ 뉴스타파

관련사진보기

 
영화 <김복동>은 영화 제목 그대로, 사람 김복동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책이나 영상 속에 나오는 위안부 피해자의 상상물이 아닌 정말로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 김복동. 그 김복동은 본인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그리고 본인이 없을 미래 또한 바꾸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는 '인권활동가'다. 

온몸이 아파도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매주 수요집회를 참석하고, 위안부 운동의 영역을 한국과 일본의 대결 구도 이상으로 확장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렇게 활동하기 위해 김복동 활동가가 보여줘야 하는 모습과 말은 오로지 피해자 김복동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김복동 활동가는 여러 자리에서 본인을 소개하는데, 그 소개는 항상 '서울에서 온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이다. 김복동이 자신을 그렇게만 소개해야 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증언을 들었을 때야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인식은 대개 적극적인 공감과 연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김복동이라는 사람에게 일어난 비극과 상처가 함께 이해되는 대신, 김복동의 피해 서사는 역사 교과서 속 '위안부 피해'라는 사건의 한 요소가 되어 소비됐다. 

사람들은 위안부 피해라는 사건을 인식하면 분노하지만, 그 분노의 책임을 우리가 함께 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이야기해야지만 드러나는 부정의도 문제지만, 그 부정의가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우리는 그 문제들에서 우리의 책임을 지우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를 문제의 당사자로 놓는 대신 피해자들의 고통과 슬픔을 착취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착취'다. 우리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착취해 우리가 생각하는 피해자상에 그들을 가둬놨다. 불쌍한 사람, 그렇기 때문에 한일전의 표상이 되는 존재, 혹은 그렇게 호명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존재. 그 호명들 속에서 정작 위안부 피해자의 주체성은 사라지고 우리가 상상하는 형상만 남는다. 

나는 그 가장 단적인 예가 소녀상에 대한 논쟁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였던 시간'은 말 그대로 위안부 피해자들이 빼앗긴 상실이자 피해다. 그 상실을 재현해내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의미 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응시하는 목격자로서의 피해자 재현은 상실과 피해의 시간을 뒤집어 피해자를 문제의 해결사로 호명한다. 동시에 동상의 존재는 그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또한 부정의의 목격자이자 책임자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소녀상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소녀상을 순결의 상징으로 해석하고, 그 상징성이 가지는 배제를 지적하곤 한다. 그러한 해석은 정작 한국 사회 내에서 어떻게 위안부 운동이 여러 편견과 경합하면서 성장해왔는지,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남아있는지를 배제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어떤 상상물이 아닌 실제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나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소녀상의 존재가 어떤 의미일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사건이 아닌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건 그런 의미다. 피해자를 타자화하고 어떤 추상화된 존재로 규정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비극과 상처를 이해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연대하는 힘은 그곳에서부터 나온다.

전시 성폭력-일본군 위안부, 부정의를 목격했다면
 
 영화 <김복동> 스틸 사진
 영화 <김복동> 스틸 사진
ⓒ 뉴스타파

관련사진보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존재를 지우고 부정하는 방식의 폭력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한일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어서 위안부 운동은 실패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전부 그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에 대해 조금의 관심과 애정도 없는 사람들이 폭력을 일삼으며 그 운동에 관여된 사람들을 끌어내리려고 애쓴다. 이용수 활동가도, 고 손영미 소장님도, 윤미향 의원도, 정의기억연대도 모두 상대의 진영에서 적대의 표적이 되었다. 매주 수요일 같은 장소에서 이뤄지던 수요시위는 조만간 보수단체에 의해 그 자리를 뺏길 위기다. 

이제 겨우 가시화되고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부정의'로 인식되기 시작한 군 위안부 문제가 진영논리에 휩쓸리고 있다. 부정의를 목격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이 폭력에 가담하는 대신, 침묵하되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에 인상비평을 얹으며 폭력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은 지금 사건과 사람 중 어떤 것을 보고 있냐고.

* 함께 듣는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귀 시즌5-27 | 소녀와 할머니의 이미지를 넘어서 : '위안부' 대중서사의 쟁점들1]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지영님은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멤버 입니다. <페미워커클럽>은 매달 1-2회 온/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영화/전시/공연 감상, 북세미나 등 함께 즐기고 비평합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메일(kwwa@daum.net)로 문의해주세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