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지난 2일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천주교 시설인 세인트 존 폴(성 요한 바오로) 2세 국립성지 방문 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
▲ "흑인사망" 시위사태 속 이틀째 종교시설 찾은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은 지난 2일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천주교 시설인 세인트 존 폴(성 요한 바오로) 2세 국립성지 방문 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는 모습.
ⓒ 워싱턴 AP=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최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용 문제로 2020년 9월까지 주독 미군 3만5000명의 27%에 달하는 9500명을 철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독일 정계는 표면적으로 일제히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어느 정도 진심을 반영하고 있는 걸까.

사실 1955년 아데나워 정권 시절 창군된 독일 연방군(Bundeswehr)의 병력은 2019년 기준 약 18만 명에 그치고 국방예산은 493억 달러로 GDP의 1.3%에 불과하다. 유럽 최저 수준이다. 미국 측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으로 늘릴 것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독일도 코로나19로 경제 문제가 심각해 받아들일 수 없어 버티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전체 군에서 대장이 1명밖에 없는 독일의 군대 편제상 유럽에서 전시에 준하는 위기가 발생할 경우 독일은 미국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군은 어떻게 독일에 들어가게 됐나

미군의 독일 주둔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과 함께 전승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영국·소련 등 4강이 독일을 분할 통치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초기에는 30만 대군이 주둔했으나 냉전 이후 급격히 그 규모가 축소됐고 2020년 현재의 3만5000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유럽 전체에 배치된 3만8000명 가운데 92%가 독일에 주둔하고 있으니 여전히 독일의 전략적 중요성은 강조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적국이었던 독일과 미국이 서유럽 방위에서 협력을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공산주의 국가였던 소련 때문이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아데나워는 소련의 팽창주의를 미국의 힘을 빌려 막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그렇기에 국내 민족주의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군의 독일 주둔과 NATO를 통한 독일군의 통제를 받아들였다.

분단의 상황에서 겪은 베를린 위기와 냉전의 과정에서 소련의 가공할 군사력에 대처하는 독일에 미군 이외 다른 대안이 없었다. 또한 미국도 소련이 유럽에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저지하는 마지노선을 독일로 삼았기에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1990년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로 미군의 공산주의의 팽창주의 억제라는 명분은 힘을 잃었다.

그럼에도 독일은 여전히 유럽에서 미군의 최대 주둔기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이 군사적으로 독자 노선을 걷는 것은 유럽의 모든 국가는 물론 미국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의 기억은 여전히 유럽 대륙과 미국에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독일 또한 경제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군비 확충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사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의 정치가들의 반응은 특별한 것이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독일 외무장관 마스(Heiko Maas)는 독일의 한 신문과의 회견에서 '미국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미국 국내 상황이 혼란한 가운데 나온 트럼프의 미군 철수 발언이 독일과 미국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집권 여당의 외교위원회 하르트(Jürgen Hardt) 의원은 트럼프의 철군 의시 표명의 직접적 원인을 국방비 증가와 더불어 독일의 메르켈 수상의 G7 회담 불참 선언에서 찾으면서 독일과 미국의 안보 이익을 소홀히 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독일 연방의회 외교상임위 의장인 기민당의 뢰트겐(Norbert Röttgen)도 트럼프의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사민당 원내대표인 뮤체니히(Rolf Mützenich) 의원은 미군 철수가 미군기지 운영에 미칠 영향에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철군이 이뤄진다면 독일의 안보 정책을 재정립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독일 진보 야당인 녹색당의 군사 전문가인 누리푸르(Omid Nouripour) 의원도 트럼프의 발언이 미군의 동구 재배치와 마찬가지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임을 지적했다. 이에 비해 독일 좌파당의 원내대표인 바르취(Dietmar Bartsch) 의원은 미군과 더불어 독일에 배치된 핵무기를 철수한다면 독일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니 고마워 할 일이라고 한 것이다.

주독미군 철수? 독일 반응이 미적지근한 이유

독일의 반응이 전체적으로 이리 뜨뜻미지근한 이유는 독일이 미국의 의도를 제대로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미군 철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안보보좌관 오브라이언(Richard O'brian)과 전 주독 대사 그레넬(Richard Grenell)과 논의해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외교 주무 부서인 미국무부는 철저히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에 독일 정부는 이것이 미국 측이 일종의 '쇼'를 하는 것으로 파악해 일단 관망하기로 했다고 한다. 쓸데없이 말싸움을 벌이는 것은 미국 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정부는 전 주독 대사 그레넬의 개인적 성향이 이런 미군철수라는 '쇼'를 벌이게 된 근본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레넬은 2018년 5월 8일 주독 미국대사로 부임하면서부터 매우 껄끄러운 행보를 보였다. 그는 주독 대사로 부임한지 한 달도 안 돼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극우언론인 '브라이트바트'(Breitbart)와 대담에서 "좌파의 정책이 실패했기에 보수 정책이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장 독일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측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그레넬의 문제 발언은 지속됐고 심지어 독일의 내정 간섭적인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2018년 11월에 미국의 우파 매체인 폭스 뉴스(Fox News)의 프로그램인 '터커 칼슨 쇼'(Tucker Calson Tonight)에 출연한 그는 독일의 관대한 난민 정책을 비난했다.

그는 "독일은 아무런 계획이 없기에 정책이 와해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독일에서 벌어지는 난민 관련 논의는 '베를린의 엘리트들'이 통제하고 있어서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누구나 독일 언론에서 '과격 극우' 세력으로 낙인찍는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런 행보로 그는 결국 베를린 외교가에서 기피인물이 됐고 이임할 때까지 독일과 매우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차분한 대응

한국도 미국과의 방위비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기에 독일 주둔 미군 철수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의 지난 4월 20일 기사에 따르면 미국 측이 주한 미군 가운데 6500명에 이르는 기갑여단의 순환배치를 중단하는 것도 선택지에 놓고 있다고 했다. 한국 측이 제시한 한미 방위 분담금 13% 인상 안이 맘에 안 들은 미국 측이 흘린 정보로 보인다.

<동아일보>도 주한 미군 철수는 미국의 협상 카드일 뿐이라는 논조를 펼치고 있다. 미국은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후 사실 세계 제1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의 'US뉴스'와 <월드 리포트>가 2020년 1월 15일 공개한 세계 강국 순위에서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한 소련과 중국도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미국과 상대가 안 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분단을 경험했거나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독일과 한국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에 있었다고 해서 독일의 대처 방안을 한국이 무조건 모방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과 한국은 미군 주둔의 역사적 원인 자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독일에서 배울 것은 일단 '차분한 대응'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외교가 누구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면서 말이다.

태그:#미군철수, #독일, #한국, #미국 외교, #리차드 그레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