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대한민국 야구 역사에서도 개인 기록 400세이브를 보유한 투수가 등장하게 됐다. 지난 해까지 KBO리그와 일본프로야구(NPB) 그리고 메이저리그를 두루 거치며 399세이브를 기록했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 올 시즌 첫 세이브를 성공하며 통산 400세이브 기록을 채우게 됐다.

오승환은 지난 해 후반기에 삼성과 계약한 이후 시즌 절반에 해당하는 72경기 징계 중 42경기를 소화했다. 올 시즌 나머지 30경기의 징계를 소화하느라 시즌을 늦게 시작했던 오승환은 복귀 후 3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2홀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승환은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 후 처음으로 9회에 등판했다. 세이브 상황이 아니더라도 9회의 경기 감각을 다시 익힐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코칭 스태프와 상의 하에 9회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극적으로 만들어진 삼성의 세이브 상황

사실 16일 경기만 해도 삼성은 디펜딩 챔피언 두산을 상대로 0-3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두산의 외국인 선발투수 라울 알칸타라를 상대로 5회까지 한 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6회초 삼성의 타선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김상수의 2루타와 구자욱의 진루타 그리고 타일러 살라디노의 몸 맞는 공으로 2사 1,3루 득점권 찬스를 만든 삼성은 이학주의 적시타로 1점을 추격했다(1-3). 그리고 이성규의 볼넷으로 2사 만루 기회가 이어졌다.

여기서 삼성의 허삼영 감독은 대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박승규 타석에 대타로 들어선 선수는 신인 선수 김지찬이었다. 전력 분석팀에서 일한 경험이 많았던 허 감독은 만루 상황에서 98구를 던졌던 알칸타라의 공이 변화구보다는 빠른 공의 승부가 들어올 것을 예측하고 짧은 스윙으로 빠른 공 대처에 유리했던 김지찬을 기용한 것이다.

김지찬은 초구 빠른 공 스트라이크, 2구 빠른 공 바깥쪽 볼을 지켜봤다. 6회에만 28구를 던졌던 알칸타라는 이 날 경기의 101구 째 공으로 또 시속 151km 짜리 빠른 공을 던졌다. 빠른 공을 계속해서 지켜봤던 김지찬은 알칸타라의 실투를 침착하게 밀어 쳤고, 유격수가 공을 잡지 못하며 2타점 동점 적시타가 됐다(3-3).

1루에 있던 이성규가 추가 진루를 시도하다 걸려 아웃이 되는 바람에 삼성의 1차 반격은 동점에서 멈췄다. 그러나 삼성은 8회초 이원석의 2루타와 두산 투수 김강률의 폭투 그리고 이학주의 몸 맞는 공을 묶어 1사 1,3루 찬스를 다시 만들었고 이성규의 중견수 희생 플라이 타구를 노려 역전에 성공했다(4-3).

오승환이 복귀한 뒤 지난 주에는 8회에만 3경기 등판했고, 9회는 오승환이 돌아오기 전까지 임시 마무리투수를 맡고 있었던 우규민이 계속 맡고 있었다. 그러나 16일 경기에서는 코치들의 의견에 따라 허 감독이 등판 순서 변경을 결정, 우규민이 8회에 마운드에 올라 올 시즌 첫 홀드를 기록하게 됐다.

1년 10개월 만에 세이브, 400세이브 달성한 오승환

우규민이 공을 던지는 동안 불펜에서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한 오승환은 이날 예정대로 9회 말 수비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가장 익숙한 이닝인 9회에 등판한 오승환은 첫 타자 정수빈을 상대로 3구 삼진, 두 번째 타자 최주환을 상대로 초구 우익수 뜬공을 유도했다.

순식간에 2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았지만, 400세이브를 앞둔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남기고 오승환은 위기를 맞이했다. 오승환은 두산의 외국인 타자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를 상대로 무려 6번의 파울 커트를 포함하여 11구 풀 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내 줬다. 다음 타자 김재호를 상대로도 풀 카운트 승부 끝에 연속 볼넷을 허용하며 실점권 위기에 몰렸다.

여기서 삼성의 베테랑 포수 강민호가 마운드를 방문하여 두산의 공격 흐름을 적절하게 끊어줬다. 오승환은 다음 타자 이유찬을 상대로도 초구 볼 이후 4구 연속 파울 커트가 나오며 힘든 승부를 이어갔다. 그러나 오승환이 6구째 던진 공은 이유찬의 배트를 부러뜨렸고, 3루수 파울 플라이가 되며 오승환의 개인 통산 400세이브가 채워졌다.

오승환은 2013년까지 KBO리그에서 444경기 28승 13패 11홀드 277세이브를 기록한 뒤 해외 리그에 도전했다. KBO리그에서 기록했던 277번째 세이브는 2013년 9월 24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가 마지막이었고, 메이저리그까지 합하면 2018년 8월 5일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 밀워키 브루어스 원정 경기 세이브가 마지막이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필승조를 잠깐 맡다가 트레버 로젠탈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마무리투수 자리를 차지했던 오승환은 이후 FA 자격을 얻어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로키스에서는 중간계투와 마무리를 오가다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소견이 나오면서 방출됐다.

8월에 방출되어 삼성과 계약하고 수술을 받았고, 3년 반 동안 유예되고 있던 72경기 징계도 소화해야 했다. 이로 인해 오승환은 682일 만에 개인 세이브를 추가하게 된 것이다. 팀 구원투수 평균 자책점 4.24로 리그 2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은 오승환이 마무리투수로 복귀하게 되면서 순위 경쟁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이게 됐다.

아시아 최다 기록까지 -7세이브, 오승환의 새로운 도전

임창용(은퇴, 386세이브)을 넘어 한국인 최초로 400세이브(KBO 278 + NPB 80 + MLB 42) 고지에 오른 오승환은 이제 아시아 최다 세이브 기록을 향해 도전한다. 일본인 투수들 중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는 이와세 히토키(은퇴, 407세이브)로, 20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이승엽(은퇴)에게 결승 홈런을 허용했던 그 투수다.

오승환이 본격적으로 삼성의 마무리투수로 복귀했기 때문에 이와세가 세웠던 407세이브 기록은 빠르면 6월 말이나 7월 초에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 투수들 중에서는 이와세(407세이브)와 사사키 가즈히로(381세이브) 그리고 다카쓰 신고(313세이브)가 최다 세이브 3인의 기록이다.

이 점을 감안하면 오승환이 현역으로 몇 년 더 공을 던질 경우 아시아 최다 세이브 투수 기록을 오랫동안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메이저리그에서 42세이브를 기록한 적도 있는 오승환으로서는 아시아 최초로 500세이브에 도전할 수도 있다.

1982년생인 오승환이 바라볼 수 있는 기록은 아시아 투수 최초 500세이브까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야구 역사에서 500세이브를 넘긴 마무리투수는 트레버 호프먼(601세이브)과 마리아노 리베라(652세이브) 둘 뿐이다. 2006년 호프먼이 기록을 넘기 전까지는 리 스미스(478세이브)의 기록이 가장 많은 세이브 기록이었다.

다만 오승환이 현실적으로 기록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우선 소속 팀 삼성이 세이브 상황을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 다행히 불펜이 리그 2위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리드하는 경기에서 역전을 당하는 일은 적은 가운데, 타선의 득점 지원이 있어야 세이브 상황을 많이 만들 수 있다.

또한 오승환의 현재 경기 내용들을 보면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르다. 묵직한 빠른 공과 슬라이더만으로 KBO리그를 압도했지만, 해외 리그에 도전한 이후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구종을 추가하면서 투구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오승환은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자체 청백전에서 경기에 등판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개막 후 남은 징계를 소화했고 퓨처스리그 실전 회복 등판 없이 바로 1군에 합류한 점을 감안하면 구위 회복에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3년과 2020년 KBO리그의 타자들은 그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다. 강백호(kt 위즈)와의 첫 맞대결에서도 오승환이 적시타를 허용했을 정도로 젊은 타자들 중에서도 데이터가 많이 쌓여있는 오승환을 공략하는 타자들이 꽤 있는 편이다.

아직 4경기에 등판했을 뿐이지만, 오승환은 이 4경기에서 4피안타 5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다소 출루 허용이 많다(평균 자책점 4.50). 오승환에 대한 데이터도 많아서 다른 팀들을 만날 때마다 오승환에게 만만한 타자는 없다고 봐야 한다.

파란만장한 야구 인생, 돌고 돌아 고국에 돌아온 오승환
 
 오승환은 16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4-3으로 앞선 9회말에 등판에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오승환은 16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0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4-3으로 앞선 9회말에 등판에 세이브를 기록하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 연합뉴스

 
오승환의 야구 인생은 항상 정상의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대학 출신으로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았다. 대학 시절에 인대 접합 수술(토미 존 서저리)까지 받았고, 삼성에서 데뷔한 뒤에도 매 시즌 리그를 압도한 것도 아니었다.

데뷔 첫 시즌에는 중간 계투와 마무리를 거쳤고, 마무리 초기에도 1이닝을 초과하여 등판하는 경기가 많은 편이었다. 이후 팔꿈치가 다시 좋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어깨에도 무리가 가면서 2009년과 2010년 부진했다. 2010년 팔꿈치 뼛조각을 한 차례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은 오승환은 다행히 후반기에 복귀하여 한국 시리즈에는 출전했다.

일본에서 활약했을 때는 2015년 시즌 막판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일찍 마무리했다. 하필이면 한신 타이거즈와의 계약이 끝나 메이저리그에 도전해야 할 타이밍에 부상이 있었고, 원정 도박 사건까지 연루되면서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동안에는 2년차인 2017년부터 팔꿈치 염증을 달고 공을 던졌다. 이 때문에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계약이 메디컬 테스트 과정에서 무산되었던 적도 있었고, 이 부상 때문에 2019년 다시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삼성과는 2019년 8월에 계약했지만 시즌 절반의 징계가 남아 있었고, 코로나19 때문에 시즌 개막도 1달 늦춰졌다. 이로 인해 399세이브에서 400세이브를 달성하는 시간이 1년 10개월이나 걸렸다. 빠른 속도로 2015년 350세이브까지 넘겼으나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풀 타임 마무리투수로 뛰었던 시즌이 없었기 때문에 세이브 적립 속도가 더뎠다.

징계 소화에 부상까지 극복하고 다시 마운드에 오르는 오승환의 선수 인생에서 아직 에이징 커브가 언제 닥칠지 장담할 수 없다. 만일 올해 시즌을 치르면서 공이 점점 더 좋아진다면 현실적으로 450세이브에서 500세이브까지는 도전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올 경우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다만 마운드에서 돌부처 같은 표정으로 평정심을 잃지 않고 공을 던지는 모습은 젊은 시절의 모습 그대로다. 오승환이 9회 마운드에 오르면 삼성의 선수들과 팬들이 이길 수 있다는 확신감을 갖게 해 주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400세이브를 넘어 선수 인생의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오승환의 세이브 기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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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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