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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앙대 김누리 교수의 교육 담론이 화젯거리이다. 그는 교육개혁에 있어 가장 큰 사업이 새로운 청사진을 내놓는 것이라 주장한다. 일견 옳은 말이다. 그동안 교육개혁 청사진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김 교수의 주장이 새삼 주목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깝게는 혁신학교 정책이 있었고, 좀 더 나아가면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김영삼 정부의 5.31 교육개혁안도 있었는데 말이다. 또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고 작은 청사진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교육개혁 청사진이 없었다기보다는 실천할 의지와 전략이 미약하여, 반복적인 개혁 실패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개혁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교육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휘둘려 왔다는 점이다. 헌법에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하였지만,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교육과정, 대입제도, 학교체제 등이 수시로 변동되어 왔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교원은 국가가 정한 대로만 가르쳐야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는 아예 금지되어 왔다.

2020년 4월부터 만 18세 고교생도 투표와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교원은 여전히 정치 활동을 온전히 할 수 없는 반쪽짜리 시민으로 남아 있다. 정작 교원이 선거제를 비롯한 민주주의를 교육하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교육을 정권의 통제하에 두어온 결과, 애당초 교육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교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성과도 분명히 있다. 우선 과거 교사에 비해 현재 교사의 전문성은 높다. 단순히 대입 성적으로만 볼 때도 상위권이고, 치열한 임용고사를 거쳐 교사로 발령받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촌지에 휘둘리는 교사도 거의 없고, 교육환경도 좋아진 편이다.

또한, 정부 주도 교육개혁의 부진 속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혁신교육이 진보교육감의 등장과 더불어 정착되고 있다. 다만, 중고등학교에서 확산은 주춤하지만, 혁신학교가 갖고 있는 배움의 공동체, 민주적 교육공동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혁신 등은 계속 이어나가야 할 교육개혁의 가치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반복적인 교육개혁의 실패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시류에 편승한 고담준론과 외국의 교육제도를 따라 하자는 주장은 참고는 할 수 있으나, 문제 해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함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교육현장의 혼란과 어려움 들여다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실효성과 실천 가능성을 갖춘 교육개혁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가장 상식적 차원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교육전문가로서 교사가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도록 해야 한다. 교사 본연의 업무란 교육과정, 수업, 평가, 생활지도 등을 말한다. 우리나라 교사는 짬을 내어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 중에도 공문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맡고 있는 행정업무를 대폭 경감하거나 제거할 필요가 있다.

학교 밖에서는 교사가 수업 이외에 다른 일이 없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교사는 '교육과 관련된' 행정업무(교육 관련 강사 채용, 인건비 품위, 현장체험 답사 및 위생점검, 등교지도, 학부모회와 녹색어머니회 지원, 기자재 및 도서 구입, 방과후학교 및 돌봄지원 등)뿐만 아니라 '교육과 관련 없는' 행정업무(물품구입, 시설관리, 정보관리, CCTV 관리, 공기질 관리, 복지업무, 특별실 관리 등)도 담당하고 있다.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사 역할도 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교육에 큰 손실임이 틀림없다. 참고로 핀란드 교사는 공문을 작성하지 않고 구두나 메시지로 소통한다. 교육활동에 필요한 사항을 교장이나 행정비서, 학교운영팀 등에 요청하면 이를 처리해 준다. 교사는 수업에만 전념하는 교육체제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 강국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 교육도 교육전문가인 교사가 행정업무가 아닌 수업에 전념하는 교육체제로 바꿔야 한다. 이를 위해 행정업무를 전담할 인력 충원을 포함한 행정업무 경감을 지속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보급과 확산의 용이성만을 따져 법적 근거도 없는 국가사업을 학교에 떠넘기는 행위가 없어야 한다.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청소년 단체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교육부가 방과후학교(돌봄교실) 운영의 근거를 초·중등교육법에 마련하고자 입법예고안을 내놓았으나, 여러 교원단체와 현장교사들의 반발로 중단한 적이 있다. 이는 교육부 스스로가 학교가 방과후학교(돌봄교실)를 운영할 근거가 없음을 밝힌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그동안 학교는 권한도 없이 방과후학교(돌봄교실)을 운영해온 것이다. 최근에는 중학교까지 전일제 학교를 도입하여, 학교가 돌봄과 방과후학교를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도 나왔다. 이는 현행 법령에도 맞지 않으며, 학교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모른 처사이다.

학교는 교육기본법과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한 교육기관이다. 그런데도 갈수록 온갖 교육 관련 요구들이 학교로 밀려 들어와 돌봄기관, 보육기관, 방과후 학원으로 변하고 있다. 현행법상 돌봄교실이나 방과후학교는 교육부나 학교 소관 업무가 아니다.

지자체나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소관 업무이다. 학교에 모든 것을 떠넘기기보다는 학교는 시설을 활용하여 원래 소관 부처가 주체가 되어 운영하는 협력 모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학교자치 실현이다. 교육개혁의 종착점 중 하나가 학교자치 실현이다. 우리나라는 교장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자칫 교장의 취향이나 독선으로 운영될 위험성이 높은 체제이다. 또한, 교육당국에서 찍어내리는 목적사업, 교부금, 지침 등 각종 강행규정으로 인해 학교자치 실현이 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학교자치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그동안 손댈 수 없다고 생각한 목적사업 축소, 예산전용, 평가방법 조정, 행정업무 축소, 기자재 구입, 원격수업과 등교수업 병행, 수업 일수와 시수 축소 등 평상시 교육활동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이루어졌다.

평소 금과옥조처럼 꼭 지켜야 할 것처럼 여겼던 업무들이 사라져도 학교는 잘 돌아갔다. 위기 상황임에도 학교구성원 간의 협의를 통해 신속히 판단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자치가 가능함을 학교 스스로가 증명했다고 본다.

넷째, 교육개혁을 지속 가능하게 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법적 근거가 있어야 흔들림 없이 개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교육은 각종 진흥법, 촉진법, 보장법, 지원법, 방지법, 보호법, 예방법, 복지법, 조례 등 이름도 생소한 법령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도 벅찬 상황인데, 이들 법령을 근거로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지도해야 하는 교육활동에는 '안전‧건강, 인성, 진로, 민주시민, 인권, 다문화, 통일, 독도, 경제금융, 환경지속가능발전, 학교폭력예방, 인터넷중독예방, 저작권, 소방훈련, 상담, 자살예방, 장애인식개선, 식생활, 감염병 및 흡연예방, 약물오남용, 응급처치, 가정폭력예방, 성매매예방 등'이 있다. 학교에서는 이 모두를 범교과 교육이라고 통칭한다.

이처럼 법령이 주는 위력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어도 변함없이 교육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교육개혁을 추진한다 해도 법적 뒷받침 없다면, 일시적 유행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바탕에서 교육현장을 중심으로한 실천적이고도 실효성 있는 교육개혁이 추진되고, 이에 함께 학생, 교직원, 학부모, 시민이 연대하고 협력하는 민주적 교육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교육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태그:#교육개혁, #업무경감, #학교자치, #방과후학교, #돌봄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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