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시즌 8번째 승리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승리를 위한 경기 시간도 비 때문에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면서 1박 2일이 걸렸다. 한화 이글스가 드디어 연패 사슬을 18연패에서 끊어내고 시즌 8번째 승리를 거뒀다(27패).

한화는 5월 23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를 시작으로 1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까지 18경기를 모두 패했다. 종전 팀 기록이었던 2013년 개막 13연패의 기록을 넘긴 지난 7일 14연패 시점에서 한용덕 전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고 쓸쓸하게 경기장을 떠났다.

최원호 퓨처스 감독이 남은 시즌에 한하여 1군 감독대행을 맡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서 4경기를 더 패했다. 감독대행을 맡는 시점에 1군 선수들과 퓨처스 팀 선수들이 대거 자리를 바꾸는 분위기 전환을 꾀했지만, 답이 없어 보였다.

연패를 끊기 위한 독수리의 몸부림, 김범수의 5일 130구 투혼

18연패까지 기록이 이어지면서 한화는 역대 아시아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연패 동률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적립했다. KBO리그에서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故 최동원이 선발로 등판했던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개막전에서 승리한 이후 18연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삼미는 모기업의 재정난으로 시즌 도중 청보식품에 매각됐다(청보 핀토스).

일본에서도 퍼시픽리그의 치바 롯데 마린즈가 1998년 18연패 기록을 세운 적이 있었다. 당시 치바 롯데는 팀 타율 퍼시픽리그 1위, 팀 평균 자책점 퍼시픽리그 2위를 기록하고도 이 18연패 때문에 리그 3위에서 최하위까지 추락했다. 당시 퍼시픽리그 1위 세이부 라이온즈와의 승차는 9경기 반에 불과했을 정도로 유난히 운이 없던 시즌이었다.

더 이상 연패를 이어가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마땅한 묘수가 없었던 한화는 그저 매 경기를 어떻게든 치르는 수밖에 없었다. 18연패 동률을 기록했던 12일 경기에서도 8회까지 무득점으로 끌려가다가 9회 마지막 공격에서 2점을 추격하는 등 몸부림을 쳐 봤지만 소용 없었다.

그리고 13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렸던 주말 3연전의 두 번째 경기는 비 때문에 중단됐다. 3회말 한화의 선두 타자 정은원의 타석에서 두산의 선발투수 유희관이 4구까지 승부하여 2볼 2스트라이크가 된 상황에서 30분을 기다렸지만 결국 올 시즌 최초로 서스펜디드가 선언됐다.

13일 저녁 7시 10분에 중단된 경기는 14일 낮 2시에 다시 이어졌다. 타석에는 한화의 정은원이 계속 들어섰지만, 두산은 19시간 가까이 경기가 멈춘 탓에 유희관을 대신하여 두 번째 투수인 홍건희가 마운드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두산은 유희관(2이닝 3실점 43구)과 홍건희(3이닝 1실점 49구) 두 선수를 동원하여 5회까지 운영한 뒤 본격적으로 불펜을 가동했다.

마땅히 로테이션에서 나올 확실한 선발투수가 없었던 한화는 13일 저녁에 한승주(1.2이닝 3실점 36구)와 이현호(1.1이닝 1실점 23구)가 이어 던진 상태였다. 14일 낮에 경기가 재개된 시점에서 한화는 세 번째 투수 김범수가 3.1이닝 1실점(57구)의 투혼을 펼쳤다.

김범수는 10일과 1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각각 18구와 65구를 던지고 이틀을 쉰 뒤 다시 등판했고, 이날까지 5일 동안 130구를 던졌다. 분명 김범수에게 무리가 가는 투구였지만, 한화는 연패를 끊기 위해 그나마 믿을만한 구위를 가진 김범수에게 운명을 맡겼다.

그럼에도 경기 중반까지 한화는 두산에게 4-5로 끌려갔다.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한화는 19연패로 아시아 프로야구 역대 최다 연패 신기록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또 한 번 적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부문 세계 프로야구 최다 기록은 메이저리그에서 나왔던 1889년 루이스빌 커널스의 26연패 기록이었다.

1박 2일 승부 마무리한 끝내기 안타, 드디어 날아오른 독수리

7회말 두산의 마운드에는 박치국이 공을 던지고 있었다. 한화는 1사 상황에서 박한결의 볼넷과 이용규의 몸 맞는 공으로 1사 득점권 찬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두산은 투수를 이현승으로 교체했는데, 서스펜디드 선언 당시 타석에 있었던 정은원이 다시 등장하여 이현승을 상대로 2타점 2루타를 작렬, 승부를 뒤집었다(6-5).

18연패에서 사슬을 끊을 기회를 잡은 한화는 어떻게든 승리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8회부터 마무리투수 정우람이 마운드에 올랐다. 두산의 선두 타자 국해성을 삼진으로 잡아낸 정우람은 박건우에게 안타를 허용했고 호세 페르난데스의 땅볼 때 박건우의 2루 진루를 허용했다.

여기서 한화의 배터리는 최주환을 자동 고의4구로 거르고 이유찬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그러나 이유찬의 적시타로 박건우가 홈을 밟으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이 되었고(6-6), 정우람의 블론 세이브로 한화의 연패 탈출은 이렇게 또 미뤄지는 것처럼 보였다.

한화는 8회말 1사에서 바로 최재훈이 안타로 출루하며 다시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다음 타자 박한결의 유격수 앞 땅볼이 병살타로 연결되는 바람에 8회말 한화의 공격은 3타자 만에 끝나 버렸다.

정우람이 9회초 수비에서 추가 실점을 하지 않으면서 한화에게는 연패 탈출의 마지막 기회가 왔다. 더블헤더 첫 경기와 마찬가지로 서스펜디드 선언으로 인해 속개된 경기는 연장 없이 9회까지만 치르기 때문에 이 공격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면 연패 사슬을 끊을 수 없었다.

지난 해 1년 동안 구단 자체 징계를 소화한 뒤 주장으로 복귀했던 이용규는 9회말 선두 타자로 나섰고, 김강률과의 5구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이용규가 출루하자 두산 역시 마무리투수 함덕주를 마운드에 올렸고, 한화는 정은원의 보내기 번트 성공으로 기어이 득점권 찬스를 만들었다.

한화의 배터리가 8회초 최주환을 거르고 이유찬과 승부했다가 실점했는데, 9회말에 두산의 배터리도 김태균을 자동 고의4구로 거르고 제라드 호잉과의 승부를 선택했다. 일단 두산의 배터리는 이 날 무안타로 침묵했던 호잉을 인필드 플라이로 잡아내면서 위기를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다음 타자 노태형은 끈질겼다. 함덕주와의 승부에서 1볼 1스트라이크 이후 2번의 파울 타구 커트로 승부를 이어갔고, 이 과정에서 5구 째 폭투가 나왔다. 2루에 있던 이용규와 대주자 이동훈이 모두 득점권으로 진루한 뒤, 함덕주가 던진 6구를 노태형이 놓치지 않았다.

노태형이 밀어친 타구는 유격수와 3루수 사이를 가로질러 좌익수 앞으로 향했고, 이 타구를 두산의 야수들이 아웃으로 잡아내지 못하면서 3루에 있던 이용규가 홈을 밟았다(7-6). 극적으로 18연패 탈출에 성공한 한화는 여세를 몰아 이 날 두 번째 경기에서도 워윅 서폴드의 6이닝 무자책 투구에 힘입어 2연승을 거뒀다(시즌 9승 27패 승률 0.250).

한화는 역시 4연패에서 탈출한 9위 SK 와이번스와의 승차를 3경기 반으로 좁혔다. 반면 두산은 올 시즌 처음으로 2연패를 당하며 LG 트윈스(22승 13패 0.629)에게 2위를 내주고 3위로 내려갔다(21승 14패 0.600). 4위 키움 히어로즈(20승 16패 0.556)는 1경기 반 차, 5위 KIA 타이거즈(19승 17패 0.528)는 2경기 반 차 그리고 6위 롯데 자이언츠(18승 17패 0.514)까지 3경기 차로 두산을 추격하고 있다.

너무나 소중했던 한화의 1승, 소중한 생애 첫 타점 기록한 노태형
 
 14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 한화 이글스 서스펜디드 경기. 9회 말 한화 노태형이 2사 후 주자 2, 3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터트리고 환호하고 있다.

14일 오후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 한화 이글스 서스펜디드 경기. 9회 말 한화 노태형이 2사 후 주자 2, 3루에서 끝내기 안타를 터트리고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1박 2일 승부에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한 노태형은 올 시즌 1군 진입이 처음이었다. 1995년 2월 8일 생으로 천안 출신이었던 노태형은 북일고등학교 졸업 후 2014 드래프트 2차 지명 10라운드(104순위) 지명으로 입단했을 정도로 관심이 적었다. 입단 첫 시즌이었던 2014년 1군 엔트리에 들었던 적은 있었지만 출전 기록은 없었다.

이후 노태형은 한 번도 1군 엔트리에 든 적이 없었다. 퓨처스리그에서 머무는 동안 군 복무도 상무 피닉스나 경찰청에서 복무한 것이 아니라 2017년 현역으로 입대하여 육군 11사단에서 만기 전역했다.

전역 이후 퓨처스리그에 돌아와 기회를 찾고 있던 노태형은 2020년 5월 20일 드디어 1군 경기에, 그것도 선발로 첫 출전 기회를 이뤘다. 수원에서 열렸던 KT 위즈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지만 이 날 경기가 끝난 뒤 다시 서산으로 돌아가야 했다.

퓨처스리그에서 노태형을 지켜보고 있었던 최원호 감독대행은 이후 한용덕 전 감독의 사퇴로 1군 팀을 맡게 되면서 엔트리를 대폭 교체했고, 이 과정에서 노태형을 포함시켰다. 6월 10일 노태형은 서산에서 퓨처스리그 경기를 소화하고 있었는데, 경기 도중 1군 합류 소식을 듣자마자 교체됐다.

교체 직후 노태형은 서산에서 구단 차량과 KTX까지 이용해 1군 팀의 경기가 치러지고 있는 부산 사직 야구장까지 당일 이동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부산에서 열렸던 롯데와의 경기에 바로 교체 출전했고, 11일 경기에도 출전하여 첫 타석에서 데뷔 첫 안타까지 기록했다.

13일 경기가 서스펜디드 선언이 되면서 14일 낮에 속개된 상황에서 노태형은 4-5로 뒤지고 있던 6회말 김민하 타석부터 대타로 출전했다. 첫 타석에서는 박치국의 구위에 삼진으로 밀려났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는 이현승을 상대로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그리고 마지막 타석에서 노태형은 데뷔 4경기 만에 생애 첫 타점을 기록했다. 생애 첫 타점이 어쩌면 자신의 선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게 될 타점이었다. 두산의 마무리 함덕주를 상대로 시속 142km 짜리 빠른 공을 욕심부리지 않고 밀어친 결과가 팀에게 너무나 소중했던 승리를 안겨주는 끝내기 안타가 된 것이다.

끝내기 안타를 치고 1루를 향해 달리며 포효했던 노태형의 표정은 어쩌면 이 날 선수들 중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한화의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는 모습은 다른 때보다 더 값진 모습이었다. 1회말 김태균의 동점 홈런, 2회말 노시환의 추격 홈런, 5일 동안 도합 130구를 던진 김범수의 투혼, 7회초 만루 위기를 극복한 김진영의 투구 등 한화의 여러 선수들이 마음을 모았던 승리였다.

감독대행 체제 첫 승리, 앞으로가 더 중요한 한화

14일 경기 결과까지 한화는 선두 NC(26승 9패 0.743)와 무려 17경기 반이나 벌어져 있다. 5팀이 4경기 차이로 2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화는 6위 롯데와의 승차도 7경기 반. 7위 삼성 라이온즈(17승 19패 0.472)와의 승차도 6경기나 벌어져 있어 올 시즌 추격은 현실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올해 남은 시간 동안 한화는 지난 해 가을부터 롯데가 그러하고 있듯이 대대적으로 팀을 재편해야 하는 시기다.

한용덕 전 감독이 물러나고 최원호 감독대행이 팀을 맡은 직후에도 한화는 리빌딩에 대한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한화는 이 18연패 기간과 1박 2일의 경기를 통해 일단 매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임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다만 이 연패를 끊는 동안 느꼈듯이 그러한 마음만으로 매 경기 승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지난해 KIA 타이거즈가 김기태 전 감독이 물러난 이후 박흥식 퓨처스 감독이 100경기 동안 퓨처스리그에 있던 선수들에게 1군 기회를 주었고, 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해냈는데 한화에게도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팀을 재편한 KIA와 지난 시즌 막판부터 팀을 재편하기 시작했던 롯데는 현재까지 그 재편 과정이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KIA와 롯데를 포함한 상위권 그룹은 2위부터 6위까지 승차가 불과 4경기 차이로 포스트 시즌을 향해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는 어쩌면 이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몇 년 동안 FA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느라 수많은 유망주들을 보상 선수로 떠나 보냈고, 그 결과 베테랑 선수들과 젊은 선수들 사이를 이어주며 팀 전력에 주축이 되어야 할 중간 선수들이 없었다.

선수들도 힘을 좀처럼 모으지 못했고, 선수단과 코칭 스태프, 구단 프런트 그리고 모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지 못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2018년 무려 11시즌 만에 포스트 시즌 진출 성과를 냈던 한용덕 전 감독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됐다.

한화의 팬들은 1980년대 윤항기 목사가 작곡했던 "나는 행복합니다"를 2011년부터 응원가 중의 한 곡으로 채택하여 응원하고 있다. 주로 한화가 득점하는 순간에 이 응원가가 활용되고 있으며 팬들은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을 향해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

한화의 팬들은 이 응원가를 승리의 순간에 더 많이 부르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을 것이다. 그 동안 팀 성적이 하위권에 있었던 순간이 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응원하며 기다려주고 있는 팬들에게 한화는 어떠한 방향이 진정으로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인지 이번 남은 시즌 동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경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KBO리그 한화이글스 한화18연패탈출 역대프로야구연패기록 노태형끝내기안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