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모는 종종 폴 블랑코와의 콜라보 앨범 발매를 예고해온 바가 있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덕소와 덕수'를 애칭으로 삼아 폴 블랑코를 향한 애정을 보였고 둘의 조합은 자주 볼 수 있었다. 히트 앨범 <Boyhood>에서도 'meet me in Toronto'를 함께했던 둘은 함께 다양한 곡을 만들어왔다. 지난 22일, 창모는 지난해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미발매 곡으로 선공개했던 'COUNTIN MY GUAP'을 기습 발매했다. 팬들을 위한 선물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이 곡은 폴 블랑코와의 EP 수록곡 선공개였다. 인스타그램에서 4년 전 폴 블랑코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던 그는 지난 3일, 기습적으로 앨범을 냈다. 드디어 '덕소와 덕수' 조합의 EP 앨범을 음원 사이트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제목은 <BIPOLAR>였다. 'Bipolar'은 '조울증의, 조울증을 앓는'이라는 뜻을 갖고 있었다. 앨범 소개는 'It's okay to be bipolar'라고 되어 있다. 조울증을 앓아도 괜찮아. 이 한 마디는 창모와 폴 블랑코 사이 또는 이들을 향한, 또는 조울증을 앓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한 마디처럼 들려온다. 지난 <COUNTIN MY GUAP> 선공개 당시의 앨범 소개는 'Sorry I'm bipolar'였다. 이 역시도 같은 맥락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조울증은 우울장애의 종류로 흔히 양극성 장애라고 알려져 있다.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일상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에 영향을 받는다. 스토리를 가진 앨범의 형태보다는 '콜라보'에 초점이 맞춰진 EP지만 무언가 위로를 주려는 의도를 가진 듯하다.
 
 창모와 폴 블랑코의 콜라보 <BIPOLAR>

창모와 폴 블랑코의 콜라보 ⓒ 창모, 폴 블랑코

 
지난 6월 초, 창모와 폴 블랑코가 출연했던 랩하우스 온에어에서는 제목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사실 둘의 조합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둘의 공통점을 엮어낼 수 있는 제목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창모와 폴 블랑코를 비롯해 음악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겪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보편적인 조울증을 두고 제목을 지었다고 전했다. 폴 블랑코는 때로 행복하다가도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어두운 상황에는 무덤덤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창모 역시도 가끔 오락가락 기분이 움직일 때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나 음악에서는 그런 것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여져서 좋은 곡이 탄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둘이 공통적으로 겪는 조울증 증세를 두고 <BIPOLAR>가 탄생됐다.

<BIPOLAR>은 총 9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다섯곡이 개인곡이며 나머지 네 곡에서 창모와 폴 블랑코가 합을 맞췄다. 이 앨범은 4월쯤부터 한 달 반 동안 만들어졌고 둘이 함께 작업실을 쓰며 빠르게 작업했다고 한다. 그 사이 예전의 비트부터 하나하나 천천히 다시 검토하며 곡을 선정했다. 비트와 녹음, 믹스까지 둘이서 전부를 맡아야 했기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았지만 미련 없이 깔끔하게 만들어졌다고 밝힌 바가 있다. 이 EP의 첫 시작점은 어떻게 보면 코로나였다. 창모는 지난해 <Boyhood>를 낸 뒤 서울을 시작으로 유럽과 북미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코로나가 확산되며 차례로 취소됐고, 투어를 동행하던 폴 블랑코와 함께 방에서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Sorry, I'm bipolar. It's okay to be bipolar
- <BIPOLAR> 앨범 소개

앨범은 전체적으로 창모와 폴 블랑코의 색채가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첫 곡인 'birthstone'부터 둘의 색이 잘 묻어난다. 폴 블랑코는 주로 어두운 비트 위에서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아름다운 선율을 드러낸다. 이번 곡에서도 차분하지만 강렬한 보컬을 보여줬다. 한편 그와 동시에 창모는 잔잔함과 강렬함을 함께 가진 래핑을 뽑아냈다. 서로의 파트에서 더블링도 적절하게 올려 멜로디와 음감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번 <BIPOLAR>는 대부분의 곡이 이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앨범 전체를 듣기에 앞서 그들의 색채를 체험하고 싶다면 첫 곡부터 듣는 게 좋을 것 같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곡인 'SHOOT'과 'Swoosh Flow'는 폴 블랑코와 창모 각각의 개인곡이다. 두 곡은 모두 어둡고 강한 랩의 색채가 강하다. 먼저 'SHOOT'은 폴 블랑코의 찰진 랩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이번 곡에서는 보컬이 아닌 랩과 위스퍼로 속삭이는 스킬을 주로 보여준다. 여기에 강렬한 비속어들을 섞어서 돈에 대한 열망을 부른다. 곡의 느낌과 적절하게 피처링은 언에듀케이티드키드가 맡았다. 돈뭉치를 쥐고 싶었던 자신과 쥐게 된 자신, 그리고 돈을 좇아 자기 자신을 잃은 모습을 묘사한다. 한편 'Swoosh Flow'는 이 앨범의 최대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내는 창모가 이번 곡에서는 강한 랩을 소화했다. 훅의 플로우가 마치 나이키의 로고처럼 내려갔다가 올라감을 반복한다. Swoosh는 나이키의 V자 로고를 뜻하는 단어다. 창모는 이 곡이 트랩 비트처럼 들리겠지만 영국의 서브 장르인 UK Drill이라고 소개했다. 요즘 이것에 꽂혀있어서 차용해보았다고 한다.

네 번째 곡은 폴 블랑코의 장점을 살림과 동시에 환희와의 콜라보로 완성된 완벽한 R&B 곡, '널 위해'다. 폴 블랑코는 어린 시절부터 우상과도 같았던 환희와 곡을 해보고 싶었고 먼저 연락을 해 콜라보가 성사됐다. 곡의 색깔은 어두우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갖고 있어 앨범과 어울리지만 정통 R&B 느낌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다섯 번째 곡인 'BEBE'에서는 무언가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났던 때의 기억을 떠올려 상황을 반영했다고 한다. 창모의 애정을 드러내는 감정선과 폴 블랑코의 보컬이 합쳐져 깔끔하게 다가온다. 'BEBE, I do believe in love'로 반복되는 훅 파트는 리스너들의 감정선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창모의 감성곡을 좋아한다면 충분히 취향이 일치할 것이다.

Oh bebe we need a story, For the night
꿈에 닿은 내겐 이제 풋내기 설렘 따윈 없는 줄 알았는데
- <BIPOLAR> 다섯 번째 곡 'BEBE' 창모 파트 中

여섯 번째 곡은 지난 5월 22일 선공개했던 창모의 개인곡 'COUNTIN MY GUAP'이다. 언젠가 잃을 인기와 돈, 그리고 너를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이 곡은 지난해 창모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먼저 선공개됐던 바가 있다. 앨범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과거 곡을 다시 찾아 수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 곡은 폴 블랑코의 'Star Ceiling'이다. Ceiling은 천장 혹은 ~의 최대 한계로 정의할 수 있다. 앞선 창모의 곡과 더불어 앨범의 후반부를 잔잔하게 이어주고 있다. 마치 동화 같은 느낌을 자아내며 곡의 분위기를 펼친다. 창모의 '닿게 됐어'나 '핑계', 'Interlude' 등과 비슷한 색채를 내고 있다.

남아 있는 두 곡은 모두 창모와 폴 블랑코가 함께 참여했다. 우선 'BIG LOVE'는 멜로디컬하면서도 강한 랩이 벌스를 이루고 있지만 훅 파트에서 잔잔함이 자아내진다. 이 곡에서는 창모의 'I Always'로부터 이어지는 복선을 알면 더 재밌게 들을 수 있다. 창모는 'I Always'에서 새끼손가락을 걸어달라며 황혼까지 함께하자고 말했다. 'BIG LOVE'에서는 "기억해 내가 했던 말"이라며 "새끼손가락 걸어, 우리 황혼은 멀었어"라고 여전한 젊음을 전달하고 있다. 창모의 오랜 팬이라면 누구든지 기억할 수 있는 말이다. 동시에 폴 블랑코의 보컬은 금상첨화다.

한편 마지막 곡인 'TOUR DAY 5 FREESTYLE'은 앨범 작업을 시작했던 시기, 투어를 떠난 후 5번째 날에 만든 곡이라고 한다. 둘이 함께 앨범을 논의하던 중 나온 발상으로 가볍게 만든 프리스타일 곡이라고 전했다. 창모와 폴 블랑코는 서로 벌스를 주고받으며 강렬한 랩을 주고받고 있다. 거친 표현과 비트 스타일로 무언가 강한 내용 같지만 사실은 창모와 폴 블랑코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함께 지하에서 굴렀었던, 때로 침대에 쓰러져서 잠을 자던 시절을 기억한다. 돈도 없고 거지처럼 살았던 시절을 회상하지만 지금은 삶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돈 없던 시절의 서로를 회상하고 그때의 감정을 공유하며 인생이 바뀌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더니 창모는 "우린 썅 피를 나눴네"라고 외친다. 마지막 파트에서는 "다 덤벼"라며 '덕소와 덕수' 조합에는 적수가 없음을 자부심 있게 말하고 있다.
BIPOLAR 창모 폴 블랑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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