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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동 전경 고층에서 내려다 본 송현동
▲ 송현동 전경 고층에서 내려다 본 송현동
ⓒ 솔방울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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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서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방면으로 가다보면, 종로문화원부터 돌담길이 250m 정도 이어진다. 4m 높이의 돌담 뒤에는 거대한 공터가 소리 없이 감춰져 있다. 돌담 한구석에 있는 낡은 철제문 틈 사이로 들여다보면,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이 앙상한 갈색 수풀만 우거져 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그것도 경복궁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노른자위' 땅이다.

서울 종로구 송현동 48-9번지 일대 3만6554.5㎡에 이르는 이 땅의 주인은 대한항공이다. 그런데 이 땅을 팔려고 하고 있다. 유력한 매수자는 서울시. 현재 대한항공과 서울시는 이 노른자위 땅의 매매가격을 놓고 기싸움이 한창이다.

서울시, 송현동 토지 보상 예산 4671억 책정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이 7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서울시교육청-서울시-자치구가 함께하는 '학생 식재료 꾸러미 지원' 사업 추진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시 송현동 일대(총 면적 3만7141.6㎡)를 역사 문화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지구단위계획 열람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4671억33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사진은 지난달 7일 서울시청 브리핑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가운데)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오른쪽)과 김영종 종로구청장(왼쪽)과 함께 브리핑 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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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 토지를 사들이기 위해 꽤 많은 예산을 책정했다. 송현동 토지와 건물 보상을 위해 가책정한 예산은 4671억3300만 원이다. 주변 다른 개인 소유의 토지, 건물 보상액을 제외해도 대한항공 토지 보상에 책정된 예산은 4500억~4600억 원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이 일대(총 면적 3만7141.6㎡)를 역사 문화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지구단위계획 열람을 진행하고 있다. 공원 계획에 포함된 토지는 종로구 송현동과 사간동, 중학동 일대 25개 필지다. 공원 예정지 가운데 총 13개 필지(3만6554.5㎡)가 대한항공 소유다.

대한항공이 지난 2008년 이 땅을 사는 데 들인 돈은 2900억 원. 만약 보상액 기준으로 토지를 매각할 경우 대한항공은 1600억~1700억 원의 시세차익을 챙기게 된다. 단순히 땅을 보유했다 파는 행위로 버는 돈, 즉 불로소득이다. 투자한 금액의 50%가 넘는 높은 수익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현재 책정한 예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다. 서울시가 책정한 예산은 수행총괄지침에 따라 올해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가책정한 것일 뿐이다. 실제로 토지 보상 가격은 감정평가법인 2곳에서 정한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책정된다. 이 경우 주변 시세 등이 반영되기 때문에 보상 가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사례를 봤을 때, 감정평가를 진행하면 일반적으로 보상 금액은 더 높아졌다"며 "감정평가액이 나오면 보상위원회에서 가격에 대한 심의를 거쳐서 최종 확정된다"고 설명했다. 즉, 대한항공는 1600~1700억 원보다 훨씬 더 높은 시세차익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

시세차익 최소 1600억... 하지만 권익위에 민원 접수한 대한항공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4월 12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빈소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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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대한항공은 현재 상황이 못마땅한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 1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서울시의 송현동 공원 지정 추진과 관련해 고충민원을 냈다.

대한항공은 "(경영 위기에 대응한) 핵심 자구 대책인 송현동 부지 매각 추진이 서울시의 일방적 문화공원 지정 추진, 강제수용 의사 표명 등에 따라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피신청인(박원순 서울시장)의 매각 방해 시도의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즉, 토지 매각을 통해 이익을 더 남길 수 있는데, 서울시가 공원을 추진하면서 계획이 엉클어졌다는 것이다.

매도자인 대한항공이 이렇게 나오면 매각 자체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대한항공이 민간 매각을 위해 추진했던 송현동 부지 예비입찰에는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서울시가 현재 열람 공고 중인 북촌지구단위계획 결정 변경안이 확정되면, 대한항공이 소유한 송현동 땅은 공원 용도로만 활용될 수 있다.

만약 대한항공이 토지 매각을 계속 거부하면, 서울시는 해당 토지에 대해 강제수용권도 행사할 수 있다. 땅주인 의사와 상관 없이 일정 부분 보상액을 주고 땅의 소유권을 서울시가 갖는 방식이다. 서울시로서는 굳이 대한항공이 제시하는 가격에 따라갈 이유는 없다.

앞서 대한항공은 서울시 측에 "최고 가격에, 최단 시간에 팔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한 바 있다. 대한항공은 서울시에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하진 않았지만 업계에선 5000억 원 이상을 기준선으로 보고 있다.

막대한 시세차익에도 세금 안 낼 가능성

주목할 점은 땅을 팔아 최소 1500억이 넘는 시세차익을 올려도 세금을 하나도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 같은 법인의 경우 자산 매각과 영업 활동 등 1년 소득을 모두 계산해 법인세를 낸다. 송현동 땅을 판 돈도 전체 1년 소득에 합산돼 세금이 부과된다. 따라서 만약 법인 영업이익이 큰 폭의 적자일 경우 법인세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566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2분기엔 화물 수요가 늘어나 선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잡히지 않으면 항공산업 침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의 올해 적자폭이 커질 수록 송현동 땅을 팔아 남긴 양도 차익에 대한 세금 면제 가능성도 커진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법인이 부동산 매각을 통해 시세 차액을 누리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것은 문제"라며 "법인 적자를 부동산 시세 차액으로 상쇄해 양도세를 피하는 상황에 대해 제도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기업이 생산 활동을 하지 않고 단순히 토지 매각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향후 기업 활동도 그런 쪽에 집중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토지 보유를 하면 개인보다 세제 혜택이 더 많은 게 정당한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기업들이 보유한 땅을 팔 때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내도록 과세 체계를 점검하고, 공공의 토지 보상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한 번쯤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현동 땅은 어떤 곳?]
조선시대엔 대대로 세도가들의 거쳐
해방 후에는 미 대사관 숙소 → 국방부 → 삼성생명 → 대한항공
7성급 호텔 지으려던 꿈, '땅콩회항'과 함께 물거품

 
경복궁 옆 KAL호텔 현실화되나  청소년 유해시설만 없다면 학교주변에도 고급 관광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입장을 정함에 따라 대한항공의 오랜 숙원사업인 경복궁 옆 호텔건립이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사진은 대한항공이 관광호텔 건립을 추진해온 종로구 송현동 옛 주한미대사관 숙소 부지. 촬영일자는 2013년 9월 25일.
 대대로 그 시대 권력자들의 소유였던 서울의 노른자위 송현동 땅은 이제 공공의 품으로 돌아와 공원화 되기 직전에 있다. 사진은 종로구 송현동 부지. 촬영일자는 2013년 9월 25일.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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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경복궁 바로 옆 송현동 땅은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조선시대엔 세도가들의 거처였다. 광해군 시절에는 광해군 장인인 유자신(1533-1612)의 집이 자리잡았다. 이어 선조의 첫째 부마인 달성위 서경주가 살았고, 조선시대 후기엔 영의정 심상규(1766-1838)가 이 땅의 주인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윤택영 일가가 잠시 소유했다가, 조선식산은행 사택으로 쓰이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는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다가, 1997년 국방부로 소유권이 환원된다. 2002년에 삼성생명이 1400억 원을 들여 이 땅을 국방부로부터 사들인다. 삼성생명은 2008년 2900억 원을 받고 대한항공에 되팔았다. 이때도 단 6년만에 시세차익은 1500억 원에 달했다.

대한항공은 이곳에 3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7성급 관광 호텔을 지으려 했다. 서울 도심지에 위치한데다, 경복궁 바로 옆이어서 입지만 놓고 보면 최상의 조건이었다. 호텔건립은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숙원사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당히 무리한 계획이었다.

이 땅은 호텔이 들어설 수 없는 1종 일반 주거 지역인데다, 건물 높이가 16m 이하(고도지구)로 제한된다. 특히 인근에 있는 덕성여고·덕성여중·풍문여고 때문에 주변이 학교정화구역으로 지정돼 호텔이 들어설 수 없었다. 관광진흥법상 학교 반경 200m 내에서는 관광호텔을 신·증축하지 못하게 돼 있다.

대한항공이 호텔 건립 심의를 통과시키기 위해 서울중부교육청과 소송전까지 벌였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게다가 2014년 12월, 호텔사업을 총괄하고 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터지면서 덩달아 송현동 호텔 계획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도 차가워졌다.

카지노 등 유해시설이 없는 관광호텔의 경우 학교정화심의위원회 심의 없이 건립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대한항공을 지원하려던 박근혜 정부도 한 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오너 기업이 서울 도심지, 유서 깊은 땅에 관광호텔을 세우는 것은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관광호텔 추진을 위한 동력을 얻지 못한 채 냉가슴을 앓던 대한항공은 지난해 호텔 계획을 백지화하고 토지 매각 방침을 세웠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대한항공으로서는 비핵심 자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큰 상황이다.

이렇게 대대로 그 시대 권력자들의 소유였던 서울의 노른자위 송현동 땅은 이제 공공의 품으로 돌아와 공원화 되기 직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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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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