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이 동일한 공간에서 별개의 우주로 공존한다는 특이한 상상력에 기반한 SBS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가 12일 제16회로 종영한다. 최근 이 드라마 후반부에서는 현재와 1994년을 오가는 시간여행의 상상력을 보여줬다. 초반에는 두 우주 사이의 공간 이동을 다뤘던 드라마가 후반에는 공간여행에 더해 시간 이동까지 결합시켜 보여준 것이다.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 SBS

 
대한제국 황실은 신라 국보 만파식적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4년 궁중 쿠데타로 이것이 둘로 절단됐다. 그런 뒤 황실 세력과 쿠데타 세력에게 각각 절반씩 돌아갔다. 쿠데타로 아버지도 잃고 만파식적 절반도 잃은 황태자 이곤(이민호 분)은 황제 즉위 25주년인 2019년부터 대한민국이 있는 우주로 공간이동을 하면서 만파식적 문제의 해결에 나섰다.
 
만파식적 분열로 인한 두 우주의 균열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만파식적 절반을 지닌 이복삼촌 이림(이정진 분)과의 원한을 매듭짓고자 했다. 황제를 죽이고 달아난 역적 이림을 처단하고 만파식적 절반을 회수하여 우주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목표를 위해 드라마 초반에는 대한제국 우주와 대한민국 우주 사이를 공간이동했던 그는, 후반에 들어서는 소년 시절인 1994년 쿠데타의 날로 되돌아가 그날의 사건에 변경을 가하기 위한 시간여행에 나섰다.
 
이를 통해 이곤은 뜻밖의 사실을 알아낸다. 1994년 쿠데타 현장에 모자와 마스크 차림으로 나타나 나이 어린 자신을 구해주고 달아난 건장한 성인 남자의 실체를 파악하게 됐다. 그 성인 남자는 다름 아닌 미래의 이곤 자신이었다. 쿠데타 현장에 가서 문제를 바로잡겠다며 시간 여행을 떠난 현재의 이곤이 1994년 그날 그런 차림으로 나타나 과거의 자신을 구출했던 것이다.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SBS 드라마 <더 킹 : 영원의 군주> 관련 이미지. ⓒ SBS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가능할까
 

<터미네이터>도 그렇고 <더킹>도 그렇고, 시간이동을 다룬 작품을 시청하다 보면,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고 이치에도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서도 그런 작품에 푹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 저게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에 빠지다 보면, 눈은 화면에 고정돼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자기 나름의 시간여행으로 꽉 찰 수도 있다.
 
2018년 작고한 스티븐 호킹 박사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의 과학기술로 힘들어서 그렇지, 개념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지구상에서 발생한 과거의 물리적 현상은 빛으로 변해 우주공간에 진입했으며 그 빛은 지금도 우주공간 어디선가 이동 중이므로, 만약 인간이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이동해 그 앞에서 기다릴 수만 있다면 빛 속에 담긴 인간의 과거 역사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더킹>이나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인간이 과거로 되돌아가 변경을 가하지는 못할지라도, 과거지사를 눈으로 확인하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확인하는 정도도 사실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빛의 속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하고, 수천 년·수만 년 전에 날아간 빛들을 찾아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시간여행은 단순히 과거를 구경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과거를 변경하는 수준까지 나아가고 있으므로, 스티븐 호킹이 말한 수준을 초과하는 과학적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학계에서도 시간여행이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 분야의 연구 결과들을 정리한 박영숙과 제롬 글렌의 <세계미래보고서 2030-2050>은 "양자역학 실험을 통해 과거로의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며 "입증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연구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시간여행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과학수준은 물론이고 미래의 과학수준으로도 실현 가능성을 장담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인간은 지난날로 되돌아가 과거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다. '어디든지 보내줄 테니, 미래로 가고 싶은지 과거로 가고 싶은지 말해보라'는 초월자의 제안을 받는다면, 미래로 보내달라는 사람보다 과거로 보내달라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미래에 대해서는 궁금증을 갖고 있을 뿐이지만, 과거에 대해서는 누구나 다 미련을 갖고 있다. 게다가 미래의 나이든 자신을 보는 것보다는 과거의 싱싱한 자신을 만나는 게 더 유쾌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미래보다는 과거 여행을 좀더 많이 꿈꾸게 된다. 2011년에 <영상예술연구> 제18권에 실린 서곡숙 경북테크노파크 정책기획단 팀장의 논문 '시간여행 영화의 쾌락: 시간, 죽음,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부분의 시간여행은 과거로의 여행이다. 왜냐하면 미래에는 회한이 없지만 과거에는 회한이 깊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거의 사건을 바로잡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바로 시간여행을 꿈꾸게 만든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지, 적성에 맞는 인생 행로를 용감하게 개척해야지, 부모님과 형제자매에게 더 잘해야지, 사랑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그 사람에게 이렇게 해봐야지 등등의 결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해서는 회한이 깊다는 위 논문의 표현처럼,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굴보다 인생을 더 뜯어고치고 싶은 게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시간여행'을 꿈꿔 온 인류

이 같은 욕망은 아주 오래 전부터 기록을 통해 표출됐다. 타임머신에 관한 영화가 나온 것은 20세기이고 그에 관한 책이 나온 것은 19세기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인류는 시간여행에 관한 욕망을 문자로 남겼다.
 
일례로, 조선 영조 임금 때인 1726년 간행된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도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글럽덥드립이라는 미지의 섬에서 마법사를 겸한 총독의 도움으로 알렉산더 대왕, 한니발 장군, 시저(카이사르), 폼페이오, 브루투스 등을 만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시간여행은 주술사가 초혼 의식을 통해 옛 사람들을 불러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간여행을 통해 걸리버는 과거 역사의 비하인드를 알게 된다. 알렉산더 대왕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사망 원인 중 하나가 과음이라는 것도 알아낸다. 걸리버는 "그는 자신이 독살되지 않았으며, 다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열병으로 죽었다고 했다"고 말한다.
 
걸리버는 브루투스의 공격을 받고 "브루투스여! 너마저?"라며 외치다가 죽은 시저와의 대화에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시저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업적도, 생명을 빼앗은 브루투스의 영광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고 말한다.
 
걸리버의 시간여행이 과거에 대한 호기심을 푸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데 비해, 춘추전국시대 노양공(魯陽公)의 시간여행은 불과 몇 시간 전의 사건을 변경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서기 3세기 중국에서 편찬된 <박물지>라는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노양공은 초나라 평왕(平王, 재위 기원전 528~516년)의 손자다. 그가 경험했다는 시간여행에 관해 이 책은 이렇게 말한다.
 
"노양공이 한(韓)나라와 한창 전투를 벌이던 중에 그만 해가 저물었다. 이에 창을 들고 해를 향해 휘젓자 해가 3사(舍)쯤 되돌아왔다."
 
해가 3사쯤 도로 떠올랐다고 했다. 서쪽으로 기울던 태양이 30도쯤 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날이 저물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게 되자, 창으로 태양을 휘저어 태양이 30도 정도 되돌아가게 해서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다. 좀 전에 죽이지 못한 적군을, 시간을 되돌린 뒤 죽일 수 있게 됐던 것이다.
 
구약성경 여호수아 10장 13절은 이스라엘 지도자 여호수아가 아모리와 전투를 벌일 때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으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태양이 멈췄다고 했지만, <박물지>에서는 태양이 30도 위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태양이 30도 되돌아갈 만큼의 시간여행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들이 기본적으로 무속인들이었다. 이들은 사건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 기록했다. 태양이 30도 정도 도로 올라갔다고 표현할 만한 특이 상황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기원전 시대 사람들에게도 시간여행의 관념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노양공의 기적이 벌어진 원인에 관해 한나라 제후인 회남왕 유안(기원전 179~122)이 쓴 <회남자> 남명훈 편은 "천성을 온전히 하고 진실을 지키며 신체를 손상시키지 않으면, 뜻밖의 곤경에 처하더라도 정성이 하늘에 통하는 법"이라고 풀이했다.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시간여행 같은 기적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시간여행을 생각하고 꿈꾸었다. 스티븐 호킹의 말대로라면 타임머신 같은 게 동반되는 시간여행은 인간의 과학수준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 여하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갖고 살아간다. 그래서 <더킹>처럼 공간여행에 더해 시간여행까지 다루는 작품은 인간의 회한을 계속 자극하며 시장 수요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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