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600세이브 투수였던 트레버 호프먼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홈 경기장 펫코 파크에 등판하는 순간이면 "Hells Bells(지옥의 종소리)"가 울렸다. 역대 최다 세이브 투수인 마리아노 리베라가 등판할 때면 뉴욕 양키스의 양키 스타디움에 "Enter Sandman"이 울렸다.

각 팀의 주전 마무리투수 등장곡이 홈 경기장에 울리는 순간 홈 팀의 팬들은 승리를 지키기 위해 마운드에 오르는 마무리투수를 연호한다. KBO리그에도 이러한 문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바로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이다.

대구 시민야구장 시절 세이브 상황이 되면 "소녀의 기도" 멜로디의 학교 벨소리가 울린 뒤 밴드 넥스트가 연주했던 고(故) 신해철의 자작곡 "Lazenca, Save Us"가 울렸다. 그리고 오승환이 불펜에서 나와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삼성의 팬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4년 반 만에 징계 완료한 오승환, 1군 엔트리 합류

이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도 승리를 앞둔 9회초를 맞이하면 벨소리와 함께 "Lazenca, Save Us"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삼성의 승리를 지켰던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드디어 라이온즈 파크 마운드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2015년 가을 임창용(은퇴) 등과 함께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었던 오승환은 임창용과 함께 시즌의 절반에 해당되는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당시 임창용은 삼성에서 임의탈퇴 처분을 받았다가 풀린 뒤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에서 징계를 소화한 뒤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오승환은 2014년과 2015년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었기 때문에 징계가 내려졌을 뿐 실제로 카운트가 계산되지는 않았다. 이후 오승환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그리고 콜로라도 로키스까지 3팀을 거쳤다.

오승환은 로키스에 있었던 2019년 후반기에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뼛조각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고, 마침 블루제이스와 맺었던 1+1년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복귀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로키스에서는 오승환을 방출했다.

오승환은 2019년 8월 6일 삼성과 협상하여 계약을 체결한 뒤 선수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선수로 등록한 8월 6일부터 오승환의 72경기 징계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당시 삼성이 42경기가 남았기 때문에 나머지 30경기는 2020년 시즌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와 별개로 포스트 시즌 출전도 금지됐다.

오승환은 8월 10일 라이온즈 파크에서 팬들 앞에서 한 차례 인사를 한 뒤 수술을 받았다. 재활만 1년이 걸리는 토미 존 서저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2019년에 재활을 마치고 2020년에는 본격적으로 공을 던졌다. 코로나19로 시즌이 지연 개막하면서 편성되었던 교류 연습경기에는 출전하지 않았고 자체 청백전에만 마운드에 올랐다.

5월 5일에 KBO리그가 지연 개막한 뒤 삼성은 6월 7일 부로 정규 시즌 30경기를 치렀다. 징계 처분을 받은 지 4년 반 만에 오승환의 72경기 출장정지 징계가 모두 이행된 것이다. 6월 초부터 1군 훈련에 합류했던 오승환은 퓨처스리그 리햅 경기 없이 바로 6월 9일부터 1군 엔트리에 등록될 예정이다.

바로 1군 경기 등판 예정, 강화된 삼성 불펜

삼성은 9일부터 대구에서 키움 히어로즈와의 홈 경기 3연전, 바로 이어서 KT 위즈와 홈 3연전을 치른다. 엔트리 합류 시점이 홈 6연전 일정이었기 때문에 9일 경기부터 오승환이 바로 라이온즈 파크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화면으로 볼 수도 있게 됐다.

다만 언제부터 세이브 상황에서 등판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허삼영 감독은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2경기 정도 등판 기회를 주면서 컨디션을 점검할 계획을 밝혔다. 컨디션이 괜찮다고 코칭 스태프가 판단했을 경우 오승환은 바로 세이브 상황에 투입된다.

구원투수 평균 자책점 4.50(리그 2위)을 기록하고 있는 삼성은 우규민, 최지광 등이 경기 후반을 주로 지키고 있었다. 오승환이 합류하게 될 경우 두 선수가 9회에 등판할 오승환을 믿고 부담을 덜어낸 상태에서 편하게 자신의 공을 던질 수 있게 되어 삼성의 불펜은 그 두터움이 강화될 예정이다.

다행히 삼성의 필승조는 오승환이 없는 1달 동안 잘 버텼다. 6월 7일 경기까지 KBO리그에서 블론 세이브가 없는 팀은 삼성 뿐이었다. 5일까지는 LG 트윈스도 팀 블론 세이브가 없었지만 이상규가 끝내기 역전패를 당하면서 삼성만 블론 세이브가 없게 됐다.

오승환이 없는 동안 삼성의 임시 마무리는 우규민(9경기 1승 무패 4세이브 평균 자책점 3.86)이었다. 노성호(12경기 4홀드 평균 자책점 0.82)와 최지광(13경기 5홀드 평균 자책점 1.38) 등의 다른 필승조도 오승환의 빈 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잘 메워주고 있었다.

팀 성적 리그 7위, 자주 오지 않는 세이브 상황

문제는 오승환이 합류한다고 해서 당장 삼성이 승리하는 경기 수가 많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삼성이 블론 세이브가 없었던 이유는 우규민의 4세이브에서 알 수 있었듯이 그 동안 치렀던 30경기에서 세이브 상황이 자주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5월 24경기에서 삼성은 10승 14패에 그쳤다. 개막 3연전부터 NC 다이노스에게 스윕패를 당했고, KT에게도 스윕패를 당했다. 10승에서 알 수 있듯이 승패 마진 -4로 크게 뒤쳐지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삼성의 경기 결과 점수들이다.

5월 24경기에서 삼성의 10승 중 3점 차 이내의 접전 승리는 4경기 밖에 없었다. 6월에 승리한 3경기에서도 3점 차 이내의 승리는 2경기였다. 반면 큰 점수 차이로 이기거나 큰 점수 차이로 패한 극단적인 경기가 많았기 때문에 필승조를 제외한 투수들과 타선의 기복으로 인해 세이브 상황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오승환이나 손승락(은퇴) 등 최근에 세이브 부문에서 이름을 남긴 마무리투수들은 KBO리그에서 1이닝 전문 마무리투수의 역할이 정립된 21세기에 데뷔했던 선수들이다. 팀이 3점 차 이내의 근접한 점수 차이로 이기고 있는 세이브 상황에 주로 등판하지만 세이브 상황이 아닌 다른 경우에는 마무리투수를 최대한 아끼는 것이 각 팀의 투수 운영 방침이다.

결국 경기마다 기복이 심한 삼성의 전반적인 경기력으로 인해 삼성은 30경기에서 13승 17패 승률 0.433으로 리그 7위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직 시즌 초반이고 5위 KIA 타이거즈(15승 15패)와의 승차가 2경기에 불과하여 중위권 이내로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았다는 점이다.

삼성이 가을야구를 바라볼 수 있는 분수령이 되는 시기는 바로 이번 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이번 키움과의 홈 3연전에서는 오승환의 복귀로 팀 분위기가 좋은 편이며, 바로 다음으로 이어지는 KT와의 3연전은 지난 번에 스윕패를 당했던 만큼 만회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있다. KT와의 3연전을 잡지 못하면 다음 상대는 훨씬 까다로운 두산 베어스(2위)다.

한국 시리즈 진출 공약했던 오승환, 삼성을 구할 수 있을까

오승환은 데뷔 시즌이었던 2005년부터 신인상을 수상하며 삼성의 한국 시리즈 챔피언 등극을 이끌었다. 삼성의 역대 한국 시리즈 챔피언 7회 중에서 2002년과 2014년을 제외한 나머지 5회(2005, 2006, 2011, 2012, 2013)는 모두 뒷문을 굳게 닫아 걸었던 오승환의 역할이 컸다.

오승환의 개인 포스트 시즌 성적만 해도 28경기 2승 1패 13세이브 평균 자책점 1.29로 압도적이었다. 한국 시리즈로만 한정하면 22경기 1승 1패 11세이브 평균 자책점 0.81을 기록한 오승환은 KBO리그의 포스트 시즌 역대 최고의 마무리투수로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삼성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2015년 한국 시리즈 준우승이 마지막이었다. 대구 시민 야구장 시대를 마감하고 2016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파크로 옮겼지만, 선수단과 팬들의 숙원인 라이온즈 파크가 개장한 이후 정작 포스트 시즌 경기가 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공교롭게 삼성은 2015년 한국 시리즈 준우승 이후 라이온즈 파크가 개장한 2016년에 9위로 팀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2016년 이후 포스트 시즌에 간 적이 없어서 라이온즈 파크는 2017년 올스타 게임과 시즌 마지막 날 이승엽의 은퇴전을 제외하고는 큰 관심을 불러모을 만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지난 해 8월 삼성과 계약한 이후 라이온즈 파크를 처음 방문했던 오승환은 팬들과의 인사 시간에 한국 시리즈 진출을 공약했다. 2020년에 라이온즈 파크에서 한국 시리즈가 열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남긴 만큼 오승환의 각오는 남다르다.

다만 오승환이 팬들 앞에서 밝힌 라이온즈 파크 한국 시리즈 경기는 올해 열리지 못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리그가 지연 개막하면서 올해 한국 시리즈 경기는 모두 고척 스카이돔에서만 열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의 역할 특성을 감안하면 오승환 개인의 경기력 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세이브 상황을 많이 제공해야 실현될 수 있는 공약이다.

일단 오승환이 투입될 때까지 삼성의 다른 투수들은 블론 세이브는 기록하지 않으며 어떻게 버텨왔다. 오승환의 복귀와 함께 왼쪽 사타구니 내전근 부상으로 퓨처스리그에 있던 구자욱도 타선에 복귀하는 만큼 삼성은 분위기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다.

또한 오승환은 비록 4년 반이 지나긴 했지만 한 순간의 흐린 판단으로 인해 그를 좋게 보지 않는 다른 야구 팬들도 생각해야 한다. 무관중으로 시즌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야유가 들리지는 않겠지만, 선수 본인의 과오로 인해 일어났던 문제인 만큼 그러한 시선들도 안고 가야 할 문제다.

KBO리그와 NPB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도합 399세이브를 기록한 오승환의 KBO리그 복귀는 어느 팀 팬이든 관심을 보일 만큼 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9일부터 바로 등판할지는 알 수 없으나, 오승환의 엔트리 합류가 향후 삼성의 팀 성적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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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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