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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는 영영페미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페미워커클럽>은 다양한 문화컨텐츠를 함께 감상하고, 성평등노동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일하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비평한 문화의 이야기를 '페미워커의 모두까기'라는 제목으로 비정기 연재 한다.[편집자말]
한국여성노동자회 내 소모임인 '페미워커클럽'이 지난 5월 20일, 오랜만에 오프라인 만남을 재개했다.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모임을 자제하던 중에 조심스럽게 열린 상반기 첫 모임이었다. 손 세정제를 바른 뒤 각자 마스크를 끼고 마주 앉은 풍경이 코미디 영화와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오가기는 했지만, 사무실 한편에 널따란 백지를 벽에 붙여 스크린을 만들고 빔프로젝터를 켜니 제법 극장의 분위기가 났다. 한동안 극장에 가지 못했던 터라, 이런 어두움 속에서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는 일을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2020년의 첫 번째 오프라인 모임에서 함께 본 영화는 <소공녀>(2017)이었다.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남자친구. 영화 속 주인공 '미소'는 이 세 가지를 자기 삶의 우선순위로 간단히 정리한다. 2년 전부터 가사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한 30대 여성인 미소는 열심히 청소를 마친 뒤 단칸방에 돌아와 매일 가계부를 적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자신이 번 것만큼만 소비하려 했던 미소에게 어느 날 위기가 닥쳐온다.

미소의 위기, 나의 위기

담뱃값과 월세 그리고 하루 한 잔 마시던 위스키의 가격이 모두 오른 것. 상식적인 선택이라면 담배를 끊고 위스키를 줄이고 노동 시간을 늘려서 어떻게든 아등바등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미소는 그 대신 결연한 표정으로 집주인의 방문을 두드린 뒤 말한다. 담뱃값이 올라 어쩔 수 없이 집을 빼야 할 것 같다고. 그리고는 트렁크 가방 하나에 많지 않은 짐을 주워 담은 미소는 친구들을 찾아간다. 대학교 때 미소의 자취방에서 함께 줄담배를 피우며 진탕 술을 마시고 뻗어버리곤 했던 친구들에게 말한다. 오늘 하루 재워줄 수 있겠냐고.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의 일일 가계부.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의 일일 가계부.
ⓒ 소공녀 예고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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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는 소위 'N포 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20~30대가 사회생활에 진입하는 시기에 겪는 진통을 블랙 코미디로 풀어낸다. 집보다 취향을 선택하는 '미소'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노동, 여성의 연애 그리고 여성의 취향과 생존이 위협받는 서울의 잔혹한 풍경을 보여준다.

쌀은 떨어질지언정 흰머리가 나지 않게 해주는 한약은 꼭 챙겨 먹고, 매일 한 값의 담배와 한 잔의 위스키를 소비하는 미소는 자신을 가사 도우미로 고용한 친구에게 부끄러움도 악의도 없이 묻는다. "쌀 남는 것 없냐"고. '내 집 장만'이라는 서울 판타지는 포기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최소한의 취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미소는 꽤나 당당하다. 당장 대출 이자를 갚아나가며 집을 사들일 능력이 없다면, 매일 하루 한 잔의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공간에 잠시 몸을 맡기는 방식이 미소의 생존전략이다.
    
모처럼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본 뒤에 한참 수다를 터뜨리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았던 시간이 즐거웠지만, 서울을 배회하는 미소를 길거리 어딘가에서 마주칠 것만 같아 집으로 돌아가는 중 마음 한 쪽이 무거웠다. 영화 네이버 댓글 중에 "어떻게 다들 이게 자신에게 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냐며 "잔혹하고 아름다운 서울 동화"를 보았다는 네이버 댓글처럼, 사실 미소는 멀리 있는 이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취향과 생존 사이?

미소의 서울 유랑기는 다소 비현실적인 동화로 보이기도 하지만, '취향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모두가 매일의 일상 속에서 겪는 보편적인 갈등이다. 아파트 장만의 신화가 생산한 하우스 푸어 세대의 부모를 보며 자란 지금의 20~30대는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즐기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욜로(YOLO)족'이 되었다.

고강도 장시간 노동과 절약 그리고 저축의 노력을 보란 듯이 배신하며 솟구치는 부동산 가격의 시세는 박탈감을 안겨주며 '수저론'을 생산하기도 했다. 나의 노력보다 부모의 노력과 상속재산이 중요하다는 청년들의 자조적인 패배감은 임금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은 고사하고 노동의 기회를 가지는 일조차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기인한다.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없이 살아가는 소공녀 주인공 미소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 없이 살아가는 소공녀 주인공 미소
ⓒ 소공녀 예고편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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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자 구직시장의 채용이 모두 지연되었고 당장 서비스업종의 비정규직 여성들은 손쉬운 해고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집안에서 밀접하게 접촉을 해야 하는 가사도우미의 경우, 고용인이 일방적으로 가사도우미의 동선을 공개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이지만 실업급여를 받을 길도 묘연하다. 애초에 재직 상태로 인정받지 못한 직업군이기 때문에 실직의 상태를 증명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강제로 쉬거나, 수도꼭지도 못 만져... 가정관리사의 고충 http://omn.kr/1npht)

미소가 서울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다면, 세대주로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았을까? 갑자기 들이닥친 재난 앞에서 일시적인 지원금조차 없었다면 생활고를 면치 못했을 테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는 와중에 '내 집 장만'이라는 꿈은 그 기반인 노동의 자리가 흔들리며 덧없이 먼 신기루처럼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되묻는다. 여성의 노동은 집이 될 수 있을까? 이 도시에서 부끄러움도 악의도 없이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고자 한다면, 작은 텐트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 함께 듣는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 시즌 4-7] 영화 소공녀 전고운 감독을 만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서아현 님은 한국여성노동자회 회원소모임 <페미워커클럽>의 멤버 입니다.
<페미워커클럽>은 매달 1-2회 온/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영화/전시/공연 감상, 북세미나 등 함께 즐기고 비평합니다. 참가를 원하는 분은 한국여성노동자회 이메일(kwwa@daum.net)로 문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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