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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에서 발견된 수군 군적부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 벽지에서 발견된 수군 군적부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 태안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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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군이 충남기념물 제11호인 옛 수군 주둔지인 안흥진성의 국가문화재로의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안흥진성과 인접한 신진도의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를 발견해 이목을 끌고 있다.
 
지역주민의 신고로 발견된 수군 군적부는 고가의 벽지로 사용된 상태였다고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측은 밝혔다.
 
군역의 의무가 있는 장정(壯丁)의 명단과 특징을 기록한 공적 문서인 수군 군적부는 조선 후기인 19세기에 작성된 것으로, 안흥진 소속 60여 명의 군역 의무자를 전투 군인인 수군(水軍)과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보인(保人, 직접 군역에 종사하지 않고 보조적 역할을 하는 병역 의무자)으로 나누어 이름, 주소, 출생연도, 나이, 신장을 부친의 이름과 함께 적어둔 고문서다. 
 
풀로 뒤덮여 있는 군적부가 발견된 고가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문서 발견 가옥.
▲ 풀로 뒤덮여 있는 군적부가 발견된 고가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사진은 문서 발견 가옥.
ⓒ 태안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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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옥내부 상량문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상량문에는 도광 23년이라고 적혀있다.
▲ 가옥내부 상량문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상량문에는 도광 23년이라고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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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측이 19세기 군적부로 추정하는 이유는 군적부가 발견된 태안 신진도 고가(古家)의 상량문(上樑文)에 ‘도광(道光, 청나라 도광제(道光帝) 선종의 연호) 23년’이라는 명문이 적혀 있기 때문이다. ‘도광(道光) 23년’은 건축연대가 1843년으로 판단된다는 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설명이다.
 
군적부를 통해 볼 때 수군의 출신지는 모두 당진현(唐津縣)으로, 당시의 당진 현감 직인과 수결(手決, 자필로 서명을 하는 결재 방식)이 확인됐다.
 
군적부를 자세히 살펴보면 수군(水軍) 1인에 보인(保人) 1인으로 편성된 체제로 16세기 이후 수군편성 체계를 실질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서다.
 
무엇보다 국가에서 관리하던 문서가 수군 주둔지역의 민가에서 발견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군적부의 용도는 작성 형식이나 시기로 미루어 수군의 징발보다는 18~19세기 일반적인 군역 부과 방식인 군포(軍布, 군복무를 직접하지 않는 병역 의무자가 그 대가로 납부하던 삼베나 무명)를 거두어 모으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군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 수군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 충남 태안 안흥진성 인근 신진도 고가(古家) 벽지에서 조선 후기 수군(水軍)의 명단이 적혀 있는 군적부(軍籍簿)가 발견돼 큰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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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안흥량(安興梁) 일대에 주둔했던 수군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던 왜구의 침입을 막고, 유사시에는 한양을 지원하기 위한 후원군 역할을 했다.
 
특히, 수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험조처(물살이 빠르고 항해가 어려운 바다)인 안흥량 일대를 통행하는 조운선의 사고 방지와 통제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앞바다인 안흥량(安興梁)은 신진도, 마도, 관장목을 연결하는 물길이 험한 구역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해상뱃길의 중요거점인 동시에 중국과 인접해 있어 수많은 세곡선과 상선들이 오갔다.
 
하지만, 물살이 세 조운선의 무덤이라고 불렸던 안흥량에 붙잡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물속으로 수장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안흥량으로 인해 태안반도 앞 바다는 현재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을 건져내며 ‘바닷속 경주’라는 수식어도 얻게 됐다.
 
한시 3편도 발견… 수군진촌의 풍경과 일상 표현 추정
 
고가에서 출토된 한시 신진도의 고가에서는 군적부와 함께 한시도 출토됐다.
▲ 고가에서 출토된 한시 신진도의 고가에서는 군적부와 함께 한시도 출토됐다.
ⓒ 태안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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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의 벽지에서 군적부와 함께 출토된 한시 신진도의 고가에서는 군적부와 함께 한시도 출토됐다.
▲ 고가의 벽지에서 군적부와 함께 출토된 한시 신진도의 고가에서는 군적부와 함께 한시도 출토됐다.
ⓒ 태안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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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가 벽지에서는 판독이 가능한 한시 3편도 함께 발견됐다.
 
이 시는 당시 조선 수군이거나 학식을 갖춘 당대인이 바닷가를 배경으로 수군진촌(水軍鎭村)의 풍경과 일상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진도 수군진촌에 자리한 능허대(凌虛臺) 백운정(白雲亭)은 예로부터 ‘능허추월(凌虛秋月)’이라 하여 안흥팔경(安興八景) 중의 하나로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중국의 능허대와 모습이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며, 옛날 중국 사신들이 안흥 앞바다에 체류할 때 이곳을 소능허대(小凌虛臺)라고도 칭했다.
 
또한, 도처의 시객(詩客)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시를 짓던 유명한 곳이기도 하여, 새로 발견된 한시 3편은 이 지역의 문학적인 맥락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충청 수군 군적부는 현재까지 서산 평신진(平薪鎭) 수군 군적부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어서 이번에 발견한 자료는 희귀성이 높다는 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측의 설명이다.
 
더구나 수군이 주둔했던 현지에서 이름, 나이, 주소, 출생연도 등이 상세히 기재된 문서라서 앞으로의 조선 시대 수군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유물은 오는 5일 오후 1시부터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서 열리는 ‘태안 안흥진의 역사와 안흥진성’ 학술세미나 때 공개할 예정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안흥량 일대의 신진도 고가에서 출토된 군적부를 계기로 삼국 시대 이후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안흥량 일대에 넓게 분포한 수군진 유적과 객관(客館, 국외 사신을 영접하던 관청 건물) 유적의 연구와 복원 활용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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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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