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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과 지방자치단체 공동사업인 '문화재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어 문화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기자말]
 1996년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후기 사비시대 왕실의 절터였던 사적 제434호 ‘능산리 사지’에서 주차장 조성 공사 중 발견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향로로 밝혀졌다
 1996년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 백제 후기 사비시대 왕실의 절터였던 사적 제434호 ‘능산리 사지’에서 주차장 조성 공사 중 발견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향로로 밝혀졌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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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상상의 동물, 용(龍) 한 마리가 용트림하며 하늘로 승천하고 있다. 치켜들고 있는 한쪽 발에 곧추서 있는 날카로운 발톱들이 금방이라도 할퀼 듯 긴장감을 더한다. 역동적으로 몸을 감아올린 용은 지상의 '속세'와 연꽃 위에 피어난 이상의 '신선세계'를 수직으로 연결하고 있다.

연꽃 바다에서 다시 큰 산이 솟아오르고, 산속에는 여러 사람들과 온갖 동물들이 작은 봉우리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노닐고 있다. 산꼭대기에 역시 상상의 새, 봉황(鳳凰)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여의주를 목에 끼고 지그시 산아래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골짜기와 봉황의 가슴팍에서는 향연(香煙)이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다.

1400여 년 동안 진흙 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백제 예술혼의 결정체. 백제 사람들의 높은 기술 수준과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담겨있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백제 문화·예술의 금자탑.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가 긴 잠을 깨고 공개되는 순간, 사람들은 탄성을 자아내며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향로의 손잡이 부분. 산꼭대기에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양 날개를 편 채 꼬리를 쳐들고 산 아래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골짜기에는 12개의 향 구멍이 뚫려 있다
 향로의 손잡이 부분. 산꼭대기에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양 날개를 편 채 꼬리를 쳐들고 산 아래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골짜기에는 12개의 향 구멍이 뚫려 있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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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창에 묻힐 뻔 한 백제 금속공예 예술의 '끝판왕'

백제의 예술과 과학 기술의 집대성, 백제금동대향로는 어떻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까.

1500여 년 전, 수준 높은 문화·예술로 문화강국을 이룩했던 백제는 수도를 한성과 웅진을 거쳐 사비, 지금의 충남 부여로 천도하게 된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에는 백제 말기 왕족들의 무덤인 능산리 고분군이 있다.

국가사적 제14호로 지정된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는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을 비롯한 7기의 왕릉이 있다. 백제 후기 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장 확장 공사를 하게 되었다.
 
 발견 당시 향로는 몸체와 뚜껑이 분리된 채 진흙 속에 묻혀 있었다
 발견 당시 향로는 몸체와 뚜껑이 분리된 채 진흙 속에 묻혀 있었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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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고분군의 북단에 있는 논을 주차장 부지로 선정하였다. 1차 지표조사 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그대로 공사를 진행하던 중 기와 조각 등 유물이 나왔다. 발굴단은 즉각 공사를 중단시켰고 이듬해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발굴 작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1993년 12월 12일 발굴지의 가장자리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게 발견되었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다. 당시 발굴단장이었던 신광섭 국립부여박물관장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현장의 인부들을 모두 퇴근시켰다. 소문이라도 나서 유물이 도굴당하면 낭패를 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박물관 실장과 학예연구사 등 다섯 사람이 직접 발굴에 나섰다. 한겨울 한밤중에 불을 밝히고 언 손으로 물구덩이를 더듬어가며 야간 작업을 진행했다. 차가운 논바닥에 엎드려 1회용 종이컵으로 물을 퍼내고 스펀지로 물을 훔쳐가며 진흙 구덩이 속에서 밤 9시가 넘어서 겨우 유물을 수습했다.
 
 산의 모습을 형상화한 향로의 뚜껑. 배소와 피리, 비파, 북, 거문고를 연주하는 5인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며 호랑이 사슴 등 사람과 동물들이 평화를 이루고 있다
 산의 모습을 형상화한 향로의 뚜껑. 배소와 피리, 비파, 북, 거문고를 연주하는 5인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며 호랑이 사슴 등 사람과 동물들이 평화를 이루고 있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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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의 몸통. 연꽃이 활짝 피어나고 연잎 하나하나에 불사조와 물고기 등 26마리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향로의 몸통. 연꽃이 활짝 피어나고 연잎 하나하나에 불사조와 물고기 등 26마리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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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는 물웅덩이 속에 진흙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향로를 온전한 모습으로 1400여 년을 땅속에서 견디게 한 일등공신은 바로 '진흙'이었다. 진흙이 금속물질과 유기물을 진공 상태로 유지시키며 부식을 방지하여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게 만든 것이다.

발견 당시 사람들은 뚜껑과 몸체가 분리되어 있는 이 유물이 무엇인지 몰랐다. 현장보존을 위한 마무리 작업을 끝내고 이 유물을 조심스럽게 박물관으로 옮겨 왔다. 진흙을 떼어내고 복구 작업 끝에 높이 61.8cm 무게 11.8kg의 동아시아 최대의 대형 향로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발굴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향로에 담겨있는 백제 사람들의 '이상향'
 

일부 학자들은 이 향로가 중국에서 건너온 '박산로(博山爐)'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중국의 향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봉우리 모양의 뚜껑이 달린 '박산향로'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향로의 몸체에 새겨져 있는 5 악사 중 한 사람이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향로의 몸체에 새겨져 있는 5 악사 중 한 사람이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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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의 몸체에 표현된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
 향로의 몸체에 표현된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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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국의 향로는 이처럼 크지도 않고, 섬세하지도, 화려하지도, 우아하지도 않다. 특히, 백제의 하이테크 첨단기술로 서양의 기술보다 천년 앞선 수은과 금을 섞어 아말감을 추출해내는 '수은아말감기법'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백제 사람들만이 보유한 전매특허기술이었다.

5~6세기 백제 사람들의 우주관이 담겨 있는 향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대와 몸통, 뚜껑과 손잡이로 나뉜다. 각 부분에 당시 백제인들이 꿈꿨던 사람과 자연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향의 세계를 그려 놓았다.
 
 향로 받침대. 한 마리 용이 고개를 들고 입으로 연꽃 바다를 떠받치며 지상의 ‘속세’와 연꽃 위에 피어난 이상의 ‘신선세계’를 수직으로 연결하고 있다
 향로 받침대. 한 마리 용이 고개를 들고 입으로 연꽃 바다를 떠받치며 지상의 ‘속세’와 연꽃 위에 피어난 이상의 ‘신선세계’를 수직으로 연결하고 있다
ⓒ 국립부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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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대는 한 마리 용이 고개를 들고 연꽃 바다를 떠받치며 힘차게 승천하고 있다. 이는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활짝 피어나고 연잎 하나하나에 불사조와 물고기 등 26마리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뚜껑은 산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배소와 피리, 비파, 북, 거문고를 연주하는 5인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며 호랑이 사슴 등 동물들과 평화를 이루고 있다. 산꼭대기에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양 날개를 편 채 꼬리를 쳐들고 산 아래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봉황의 가슴과 산골짜기에는 12개의 향 구멍이 뚫려 있다.

대향로가 발견된 곳은 백제 왕실의 절터로 확인되어 국가 사적 434호로 지정되었다.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은 이 사찰이 백제 27대 위덕왕(재위 554~598) 때 지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향로는 선대 왕들의 제사를 지낼 때 향을 피웠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덕왕은 이 절에서 향을 피우며 관산성 전투 중 자신을 구하려다 신라군에게 잡혀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성왕(재위 523~554)의 명복을 빌었을 것이다. 백제 문화 예술의 결정체, 백제금동대향로에는 '아버지 성왕'을 그리워하는 '아들 위덕왕'의 못다 부른 사부곡(思父曲)이 담겨있다.

1400여 년 동안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하마터면 영구히 주차장에 묻힐 뻔했던 백제금동대향로의 발굴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1996년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7월초 발행 예정인 <대동문화> 119호(2020년 7, 8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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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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