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1대 0으로 승리한 성남FC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0.5.31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1대 0으로 승리한 성남FC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2020.5.31 ⓒ 연합뉴스


이 정도면 더 이상 운이 아닌 실력이다. '초보' 김남일 감독이 이끄는 프로축구 성남FC가 '빠따볼' 신드롬을 일으키며 올시즌 K리그1 돌풍의 눈으로 자리잡았다.
성남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 2020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후반 44분 터진 외국인 공격수 토미의 극적인 결승골을 앞세워 FC 서울에 1-0으로 이겼다. 성남은 2승 2무로 개막 후 4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이어가며 리그 순위를 6위에서 3위(승점 8)로 끌어올렸다.

이 경기는 김남일 감독과 최용수 FC서울 감독간 '2002 한일 월드컵 4강 멤버' 출신 감독들의 맞대결로 화제를 모았다. 최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 감독을 맡았던 2016년에는 김남일 감독이 코치를 맡아 지도자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김남일 감독은 지난해 12월 26일 성남 감독 부임 기자회견에서 '가장 이기고 싶은 상대'로 최용수 감독의 서울을 콕 집어 지목하여 이슈가 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서울을 이기고 싶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이기고 싶다"라며 특유의 승부욕을 드러냈다. 함께 2002 세대의 영광을 같이한 동반자이자, 현재 K리그에서 스타 출신 감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최감독을 넘어보고 싶다는 선의의 경쟁의식이었다.

최용수 감독도 이런 후배의 도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최 감독은 "김남일 감독이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항상 서울은 다른 팀들의 견제를 받는 상황이다. 오히려 우리를 더 자극해줬으면 좋겠다"고 응수했다. 담담한 대응속에 우리가 더 강자이고 도전을 받는 입장이라는 여유를 드러낸 대목이다. 

최용수 감독은 현역 시절 '독수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공격수 출신이었고, 김남일 감독은 상대의 공격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로 명성을 떨친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감독들의 대리전답게 서울과 성남의 시즌 첫 맞대결도 두 감독의 현역 시절 포지션을 연상시키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FC서울 최용수 감독이 경기를 보고 있다. 2020.5.31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FC서울 최용수 감독이 경기를 보고 있다. 2020.5.31 ⓒ 연합뉴스

 
초중반까지 주도권을 움켜쥔 것은 최 감독의 서울이었다. 서울이 공격하면 성남이 지켜내는 구도였다. 성남은 서울의 과감한 전방 압박에 고전하며 공격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올시즌 리그 최소실점에 빛나는 성남의 견고한 수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몇차례 아찔한 실점위기도 있었지만 올 시즌 새로 보강된 베테랑 골키퍼 김영광이 여러 차례 좋은 선방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던 김남일 감독은 후반 중반부터는 서서히 공세의 고삐를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김 감독은 후반 임선영, 토미 등 공격자원을 잇달아 투입하며 승리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무승부의 기운이 짙어가던 후반 44분 이태희가 오른쪽에서 강하게 차올린 크로스가 수비를 맞고 튀어나온 것을 교체 선수인 토미가 쇄도하여 빈 골대에 공을 차 넣으며 팽팽하던 경기의 균형을 마침내 깼다. 김남일 감독의 용병술이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맞은 셈이었다.

서울은 파상공세를 펼쳤으나 끝내 성남의 골문을 열지못했고, 토미의 이 골은 그대로 결승골이 됐다. 그야말로 독수리가 진공청소기에 빨려들어가면서, K리그 1년차 초보 감독이 산전수전 다겪은 10년차 베테랑 감독을 잡아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경기는 치열했지만 끝난 이후에는 선후배로 돌아간 최용수-김남일 두 감독이 미소로 서로를 격려하는 훈훈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김남일 감독이 이끄는 성남은 개막 이후 4경기에서 득점은 4골에 그쳤지만 단 1실점만 내주는 철저한 짠물 축구를 펼치고 있다. 안정된 수비 조직력이 더 돋보이지만, 수비적인 경기운영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 간결하고 빠른 패스 워크를 위한 공격 전개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한정된 스쿼드 안에서 양동현, 홍시후, 최병한, 토미 등 여러 공격 자원들을 최대한 고르게 가동하면서 전술적 유연성을 다양하게 가져가고 있다.

초반에는 승격팀인 광주(2-0)를 비롯하여 인천(0-0) 등 해볼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전북을 잡아낸 강원(1-1)이나 전통의 강호 서울을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않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초반 무패행진이 이변이 아닌 실력임을 증명하고 있다.

김남일 감독 특유의 아우라를 드러낸 캐릭터도 인기만점이다. 김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카리스마넘치는 남성적 이미지와 거침없는 언행으로 숱한 이슈를 만들어낸바 있다. 감독으로 변신한 이후에는 매경기마다 검은 마스크와 정장의 '올블랙 패션'이 김 감독의 새로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는데 마치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분위기로 축구팬들 사이에서 화제를 자아내고 있다.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FC 김남일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2020.5.31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0 K리그1 FC서울과 성남FC의 경기에서 성남FC 김남일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2020.5.31 ⓒ 연합뉴스

 
초보 감독답지 않게 경기흐름이 바뀌거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고 발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 마치 5~6년차 중견 감독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올시즌 성남의 축구를 가리켜 김감독의 과거 빠따 발언을 빗댄 '빠따볼'이라는 애칭도 붙었다. 이슈메이커다운 김남일 감독의 스타성을 확인시킨 장면이다.

반면 최용수 감독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성남전 패배로 2승2패를 기록한 서울의 순위는 7위로 떨어졌다. 다음 경기가 K리그 우승후보인 전북전임을 감안하면 부담이 더 커졌다. 팀의 기둥인 오스마르가 부상으로 성남전에 결장하면서 서울은 주도권을 쥐고도 빌드업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현재로서는 전북전에서도 결장할 확률이 높다. 박주영-아드리아노-조영욱 등으로 구성된 공격진의 결정력 부족도 고민거리다. 서울은 올 시즌 4골을 기록할 동안 공격진은 아직까지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있으며 멀티골을 기록한 선수도 전무하다.

서울은 올 시즌 명문구단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이래저래 잡음이 많다. 기성용-이청용 등 국내 복귀를 타진하던 서울 출신 스타들의 영입이 불발되며 전력보강의 기회를 놓쳤다. 박동진은 팀을 떠났고 외국인 공격수 페시치와도 결별이 유력하다. 최근에는 리얼돌 파문으로 연맹의 중징계를 받으며 경기외적으로 망신을 당하는 사태도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팀 성적과 경기력도 불안정하다. 좋지 않은 분위기에서 전북, 울산 등 우승후보들의 맞대결이 기다리고 있는 6월을 앞두고 최 감독의 머릿속이 많이 복잡해질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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