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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봉사활동 중 안전등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깃발
▲ 녹색어머니회 깃발  녹색봉사활동 중 안전등교를 지도할 때 사용하는 깃발
ⓒ 이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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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때문에 오랜 기간 잠잠하던 동네가 드디어 깨어났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만큼 왁자지껄하지는 않지만, 마스크를 낀 채 그래도 정답게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 골목길을 채우는 동네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반갑다. 코로나19 이전엔 당연하던 일상의 모습인데, 한 번 빼앗겨 보니 그 정겨움과 평온함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새삼스레 실감 난다. 

삼삼오오 학교를 향하는 골목길의 한 가운데에 초등학생들과 더불어 다시 돌아온 분들이 있다. 등교 안전 지킴이, 바로 녹색어머니회 분들이다. 녹색어머니회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등교 안전을 위해 활동하는 역사 깊은 학부모 봉사단체이다. 코로나로 뒤숭숭한 학사일정에 아직 새 학년 녹색어머니회가 아직 결성되지 않았을 법도 한데, 오랜만에 아이들이 등교하는 바로 그 자리에, 등굣길의 안전은 하루도 빠뜨릴 수 없다는 듯 변함없이 녹색어머니회 분들이 자리하고 계셨다. 

우리 집 아이가 1학년이 되어, 처음으로 단복을 입고 아침 일찍 허둥지둥 봉사활동을 나가던 때가 떠오른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곳에서는 신호등에 맞춰 아이들을 보내면 되지만, 골목길처럼 차량과 보행의 동선이 혼재하는 곳은 차량의 진행 방향을 보며 깃발을 올리고 내리는 동시에 사방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시시각각으로 파악하고 안전하게 길을 건너게 하는 순발력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활동이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레 등교하는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저 내 아이밖에 모르는 나에게 주변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엄마나 아빠의 손을 잡고 재잘대며 걸어오는 1학년 아가들은 언제봐도 귀엽고, 자다가 금방 나온 듯 머리에 새집 짓고 반쯤 감은 눈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아이들에겐 "아직 졸리니?" 엄마 미소 지으며 말도 건넨다. 아는 아이들과는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도 주고받고, 지각이 걱정되는 빠듯한 시간인데도 거북이 걸음 하는 아이들에겐 조바심에 "에구, 얘야. 늦겠다. 조금만 빨리 가거라" 참견도 한다. 

생기있게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면 내 마음도 아이들 따라 환해지고, 왠지 뾰로통해 보이거나 찌푸린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워지며 '우리 집 애들은 밝은 표정으로 갈 수 있도록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반성도 하게 된다. 그렇게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을 등교 시간 막바지까지 배웅하고 나면, 그날 아침 그 학교 아이들은 나 혼자 등교시킨 것 같은 괜한 뿌듯함을 맛보곤 한다. 

녹색봉사를 하며 느끼는 건 그뿐이 아니다. 아이들의 등굣길을 살피러 동네 한 바퀴 도시는 교장 선생님의 감사하다는 말씀에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한 마음이 들며, 교사든 학부모든 같은 학교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한 학교 구성원의 한 식구라는 기분이 제법 들기도 한다. 순찰 나온 경찰 아저씨들에게 현장 상황에 대해 자잘한 의견이라도 나눌라치면 뭔가 공인으로서 지역사회에 큰 기여라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모두 녹색 봉사활동 덕분에 알게 된 감정들이다. 

요즘 등굣길엔 엄마 대신 아빠들은 물론 할아버지나 삼촌 등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녹색 봉사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한 반에 4, 5명씩 전업주부를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지곤 했는데, 1년에 6~7일 이상의 과한 일정이 소수에게만 부담된다는 지적에 의해 몇 해 전부터 전체 학부모들이 1년에 1~2일씩 고르게 참여하는 체제로 바뀌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봉사를 하며 느끼는 의미 있는 감정들을 더 많은 가족이 함께 한다 하니 두 손 벌려 환영하는 바이다. 

녹색봉사에서 우연히 느꼈던 소속감, 공헌감 등은 학교의 다양한 학부모 활동에도 선뜻 참여하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 같다. 형식적이고 진부했던 나 어렸을 적의 학부모 활동과는 달리 요즘은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학부모 활동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녹색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아빠들의 수가 늘어서 그런 걸까? 학부모 활동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예전보다 확실히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최근의 경향이다. 반가운 일이다. 

학교운영위원회나 학부모회 같은 전형적인 활동 이외에도 학부모 독서 모임이나 캘리그라피, 다도 등등 같은 관심사끼리 모이는 각종 동아리 활동이 활발하며, 자체 학부모 강연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한다. 학교 기획행사인 가을 추수 행사나 바자회, 운동회 같은 행사들에 협력하는 것도 물론이다. 

우리 집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도 가을 추수 행사를 진행했는데, 벼탈곡과 떡메 쳐 인절미 만들기, 지게에 볏단 이고 달리기, 큰 줄넘기 넘기 등 각종 부스의 운영을 학부모들이 맡아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돌봐주며 보람 있었다. 비록 반나절 정도의 행사에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쭉 뻗어버렸어도 말이다. 

학부모 활동이 혹시 부담스럽다면, 지역의 복지관에도 아이들을 돌보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있다. 학업이 부진한 아이들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과 1:1로 연결하여 도와주는 멘토 프로그램도 있고, 부모의 따뜻한 돌봄이 부족한 어린아이들과 시간적 정서적 여유가 있는 지역민이 일주일에 한 번씩 놀이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는 프로그램도 있다. 내 아이한테만 쏠린 눈을 밖으로 돌리면 엄마의 끊임없는 눈길이 부담스러운 내 아이에게도 좋고, 사랑이 갈급한 더 많은 아이에게 사랑을 나눠줄 수 있어 좋다. 

아이들의 초등학교, 중학교 생활을 지내고 보니, 아이를 키운다는 게, 부모가 내 아이에게만 온 관심을 쏟는다고 내 아이가 잘 자라는 게 아닌 것 같다. 내 아이도 중요하지만, 주변에 마음 편하고 행복한 아이들이 많을수록 내 아이도 그 속에서 즐겁게 성장할 확률이 높은 게 아닐까? 

녹색 봉사활동을 통해 주변의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던 작은 경험들이 다른 각종 학부모 활동과 지역 내 봉사활동의 참여로 이어지며, 내가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는 세상도 함께 확장되었던 것 같다. 그 확장되는 세상만큼 나와 아이가 공유하는 세상도 넓어졌던 것 같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해져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던 게 지금까지 별 탈 없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힘이 아닌가 문득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랜만에 돌아온 반가운 녹색 봉사활동을 보며, 한참 위축된 학교와 지역의 여러 활동이 조만간 코로나의 종식과 함께 예전처럼 왕성하게 진행되길 바라본다. 

태그:#녹색어머니회, #봉사활동,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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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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