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사진.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사진. ⓒ 엔케이 컨텐츠

 
서로가 수십 년간 쌓아온 추억이 사라지는 건 분명 비극이다. 내 앞에 존재하지만 마치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우받는 경험은 겪어본 사람이라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상처일 수 있다. 치매라는 병이 가족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그럴 것이다.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치매를 앓기 시작한 아버지(야마자키 츠토무)를 두고 각자 이별을 준비한 어떤 가족 이야기다. 시작은 갑작스러운 어머니(마츠바라 치에코)의 전화다. 작은 레스토랑 오픈을 꿈꾸며 식당일을 하는 후미(아오이 유우)와 결혼 후 미국에서 남편과 아들과 살고있는 마리(다케우치 유코)는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충격적 소식을 듣는다.
 
교육자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있다. 기억을 잃어 가는 그를 두고 세 사람은 저마다 할 수 있는 도리를 하며 그간 몰랐던 자신들의 사연을 나누게 된다. 대부분의 극적 구성이라면 상처와 어떤 갈등이 등장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리고 그 전개가 매우 느리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은 함께 한 시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함을 알리려는 듯 말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족 역할의 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결국 사람은 연결되어 살아야 하고 가족이라면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해 볼 일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몰랐던 인생의 깊이 혹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사진.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사진. ⓒ 엔케이 컨텐츠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사진.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사진. ⓒ 엔케이 컨텐츠

 
영화는 아버지의 치매 발병 후 2년 간격으로 이 가족의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서 겨울, 혹은 간절기를 배경으로 아버지와 가족이 기억할 만한 몇 가지 일들을 제시하는 식이다. 그 사이엔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포함돼 있다. 한창 아버지의 치매가 심해질 무렵 발생한 재난은 이 가족에게도 나름 영향을 미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 그 어느 것 하나 자극적이진 않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마치 벌어졌던 그 당시엔 현실과 억장이 무너질 것 같겠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꼭 그렇게 아파할 일도 아니었다는 듯 담담한 톤이 특징이다. 해체된 듯하지만 실상은 연결돼 있었던 가족 구성원이 각자 할 수 있는 걸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 더욱 위로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잇는 감독이라 평가받는 나카노 료타 감독은 <캡쳐링 대디> <행복 목욕탕>에 이어 이 영화를 통해 가족의 화합 내지는 화해 가능성을 꾸준히 말하고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족의 해체를 전제로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해왔다면 나카노 료타 감독은 기존 가족 내에서 혹은 가족 구성원의 각성을 통해 최소한의 이해와 공감을 제시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와 가치관은 다를지언정 두 감독 모두 가족이라는 화두를 진정성 있게 품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아오이 유우, 다케우치 유코 등 그간 일본 현대 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여배우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팬이라면 흔히 품고 있을 두 배우에 대한 이미지가 이번 작품에선 다소 희석될 것이다. 그만큼 생활형 연기를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매로 출연한 두 사람의 호흡이 꽤 좋다.
 
한줄평: 가족의 본령은 무엇인가 이 영화가 또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평점: ★★★★(4/5)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관련 정보

감독: 나카노 료타
원작: 나카지마 교코 <조금씩, 천천히 안녕>
출연: 아오이 유우, 다케우치 유코, 마츠바라 치에코, 야마자키 츠토무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러닝타임: 128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0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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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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