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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술값 3300만 원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논란이 벌어지던 지난 11일, 나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시민단체 '겨레하나'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잘 알고 있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겨레하나는) 회계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느냐"라는 질문 역시 매일같이 받고 있다. 

'하룻밤 3300만원 사용... 정의연의 수상한 술값'이라는 악의적 보도
 
정의연의 회계문제를 '술값' 급기야 이용수 할머니와 술, 돈 사진까지 만들어 보도한 언론들.
 정의연의 회계문제를 "술값" 급기야 이용수 할머니와 술, 돈 사진까지 만들어 보도한 언론들.
ⓒ 한국경제 등 언론보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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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 하루 3300만원 기부처리... 정의연의 '수상한 기부'>. <한국경제>가 지난 11일 인터넷판에 낸 기사의 제목이다. 이 신문의 기사 제목을 보고 오해하거나 의혹을 가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물며 <한국경제>는 정의연이 술집에 '기부'했다고 썼었다. 시민단체 활동을 오래 해온 나조차도 금액을 보는 순간 후원주점이라고 짐작하면서도 '기부는 이상한데?'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다.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해봐야 했다. 

결국 해당 가게 주인이 나타났고, 정의연은 악의적 허위보도라면서 반박 자료를 냈다. 정의연은 "국세청 기준에 따라 지출항목별 대표지급처를 기재하며 2018년 모금사업비 총액의 대표지급처를 '디OO루잉'으로 기재했다"라며 "2018년 모금사업비의 지급처는 140여 곳에 이르며, 3300만 원은 140여 곳에 지급된 지출총액"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업체에) 지출된 비용은 2018년 정의연 후원의 날 행사로 지출된 비용으로 '기부'가 아니라 '모금사업비 지출'이다"라고 반박했다(5월 11일 정의연 보도자료 :
한국경제신문은 악의적 허위보도/왜곡보도를 중단하라!).

무슨 이유인지 다음날(12일) <한국경제>는 기사 제목을 <하룻밤 3300만원 사용... 정의연의 수상한 '술값'>으로 바꿨다. 그럼에도 왜곡보도 혹은 오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기사다. 다음날(12일) <조선일보>도 종이신문 1면에 같은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2020년 5월 12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맥주값 3339만원 썼다던 정의연, 430만원 결제' 기사(빨간색 네모).
 2020년 5월 12일 "조선일보" 1면에 실린 "맥주값 3339만원 썼다던 정의연, 430만원 결제" 기사(빨간색 네모).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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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었던 패턴

겨레하나도 왜곡보도로 인해 몸살을 앓은 적이 있다(관련 기사 : 당사자가 밝힌 조선일보 '통일엽서' 사건의 전말). <조선일보> 보도로 시작돼 다른 언론사의 받아쓰기로 번져나갔다. '친북선동 마수' '세뇌교육' 같은 단어가 우리를 지칭하기 시작했다. TV조선은 카메라를 들고 사무실에 무작정 들어오려 했으며, 사무실에는 욕설이 담긴 항의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이후 겨레하나는 대표적으로 보도한 언론 다섯 군데(조선일보, TV조선, 문화일보, 매일신문, 뉴스타운)에 대해서 언론중재위에 제소를 했고, 모두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조정이 이뤄졌다(정정·반론보도 모음 : https://www.krhana.org/blog/story/post/127).
 
왜곡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를 거쳐 받아낸 반론, 정정보도
 왜곡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를 거쳐 받아낸 반론, 정정보도
ⓒ 겨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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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가 이 사실을 기억하겠는가? 언론중재위 제소부터 정정·반론보도를 받아내기까지 3개월이나 걸렸다. 하지만 그동안 실추된 명예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대응하지 못한 다른 기사들은 그대로, 유튜브 세상에 떠돌고 있다. 수십, 수백 개의 언론 보도를 다 제소하려면 그동안 시민단체의 활동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아니 십수 년간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양상은 늘 똑같았다. 언론이 자극적 의혹을 제기한다. 당사자가 그에 대해 가까스로 해명하거나 미처 해명하기도 전에 다른 의혹이 제기된다. 제기된 의혹을 해소할 시간도 없이 모든 언론이 의혹을 받아쓰기 시작한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439차 정기 수요시위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중계로 진행됐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439차 정기 수요시위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라인중계로 진행됐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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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과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은 분명한 거짓이고 왜곡이다. 어떤 것은 해명이나 입증이 필요하고, 어떤 것은 반성이나 사과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한 언론은 그 의혹이 말끔히 해명되더라도 절대 다뤄주지 않는다. 그동안 겹겹이 쌓일 단어들, '불투명' '논란' '의혹' 속에서 시민들은 시민단체에 실망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운동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설 것이다.

언론은 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가

시민단체의 흠이나 부족한 점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단체는 후원해준 시민들이 시민운동의 주체이자 당사자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회계는 물론, 단체 활동과 목적에 대해서도 회원 및 시민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반영되기 위해 회계 감사, 회원 총회 등 민주적 절차와 원칙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

시민들의 신뢰가 부족하다면 더 노력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의혹과 의구심 자체에 실망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신뢰를 받는 것도 시민단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언론들은 오보와 왜곡을 서슴지 않으며 직접 흠집을 낼 수 있고, 또 흠집을 죄라고 덮어씌울 수 있는 존재다. 시간이 흘러 그제야 투명해지고 명백해지더라도, 상처입은 피해자 그리고 시민들을 현혹시킨 '죄'가 분명해져도, 언론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언론의 죄는 누가 물을 것인가

굴욕적 합의가 윤미향 때문이라고?

정말 안타까운 것은 지금 이 논란을 만든 언론이, 이 논란을 틈타 역사왜곡은 물론 한국 과거사 운동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운동가로서의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받기 위해 노력해온 사람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면 토론과 논쟁, 갈등을 거쳐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 과정이 지난하거나 어렵더라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니 다신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 '2015 위안부 합의'다. 이 굴욕적인 합의가 윤미향의 잘못일까? '위안부 합의'를 추진했던 당사자가, 마치 윤미향이 시키는 대로 합의 초안을 만든 것처럼 증언하고 나서는 것을 우리가 참아줘야 하는가?

'위안부 문제'를 부끄러운 문제라고, 매춘이라고, 수요시위 중단하라는 사람들이 등장해 정의연을 꾸짖는 게 마땅한 일인가? 몇몇 언론들은 이를 여과없이 중계하며, 급기야 이를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싸움인 것처럼 만들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이번 싸움의 본질
  
문제의 본질은 분명하다. 일본 정부는 제대로 사죄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몇십 년간 운동한 당사자와 시민단체가 있고 그와 함께한 시민들이 있다. 시민들은 이 운동을 응원해온 마음 그대로, 이 갈등과 논란이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이용수와 윤미향의 싸움이 아니고, 정의연과 시민들의 싸움도 아니다.

'대결'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만들어 정의연의 활동을 비웃는 언론권력과 시민들간의 싸움이다. 어떻게든 수요시위를 중단시키고, 소녀상을 없애고 싶은 자들과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싶은 시민들간의 싸움이다. 어떻게든 이 운동을 무너뜨리려는 사람들과 일본 아베 정부에게 기필코 사죄를 받아내려는 사람들과의 싸움이다.

일본 정부가 스스로 사죄할 일이 없는 것처럼, 언론도 스스로 자정하거나 반성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와의 싸움도, 무소불위 언론권력과의 싸움도 결국 정의로운 시민들의 힘으로 계속돼야 한다.
 
지난 1월 8일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포옹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 1월 8일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421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포옹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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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하나씨는 시민단체 '겨레하나' 활동가입니다.


태그:#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왜곡보도, #언론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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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전문단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시민단체 겨레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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