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페 벨에포크> 포스터

영화 <카페 벨에포크> 포스터 ⓒ (주)이수C&E

 
누구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평생을 걸쳐 한 사람의 기억 어딘가에 저장되어 수없이 그때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 일이 벌어질 때, 옆에 누가 함께 했고, 같이 무엇을 먹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사소한 하나하나가 머리 속에서 영화처럼 반복된다. 그 마음 속의 아름다운 영화는 몇 십년이 지나도 그 당시의 느낌이나 생각으로 남아 일생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한 장면인 그 영화를 누구나 하나씩 마음에 담고 살아간다.

나이가 들고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자신이 해오던 행위나 일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이 들 때, 많은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웠던 그 찬란했던 과거로 회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힘든 시기에는 젊은 시절에 즐겁게 놀았던 여행지를 다시 가보거나, 예전에 들었던 노래를 다시 찾아 듣기도 한다. 그렇게 과거에 했던 무언가를 쫒아 갔을 때, 그 당시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느끼며 자기 자신을 위로한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첫사랑이라는 달콤한 사랑이야기가 그런 아름다운 순간 중의 하나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인생의 아름다운 순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순간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면서 그 순간들을 같이 음미하기도 한다.

인생의 황금기에 대한 영화 <카페 벨에포크>
 
 영화 <카페 벨에포크> 장면

영화 <카페 벨에포크> 장면 ⓒ (주)이수C&E

 
영화 <카페 벨에포크>는 그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영화다. 이제 나이가 들어 은퇴 시기에 접어든 빅토르(다니엘 오떼유)는 우울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내 마리안(화니 아르당)은 최신 기술에 익숙하지 않고 현 시대에 맞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남편 빅토르에게 많은 실망감을 느낀다. 아날로그 스타일의 일을 선호하는 빅토르는 과거 일간지에 정치 비평 만화를 그려온 인물이다. 그는 최신 기술과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신 기술을 이용하면 자신의 일을 계속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배워야하는 일들에 소극적이다.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집 밖으로 내쫓긴 그는 앙투안(기욤 까네)의 초대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초대 받는다.

앙투안은 빅토르 아들(마카엘 꼬엔)의 친구로 사람들에게 의뢰를 받아 그 사람들이 가고자 하는 과거의 특정 시대나 장면으로 돌아가는 것을 돕는다. 진짜 타임머신이 아니라 세트와 연기자들로 세밀히 재연한 당시의 장면 속으로 의뢰자들을 초대하여 그 당시의 느낌을 살려주는 방식이다. 어쩌면 사람이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그 아날로그적인 시간여행의 방식은 아날로그형 인간인 빅토르에게 가장 맞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빅토르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바로 카페 벨에포크에서 첫사랑을 만난 그 순간이다. 그는 자신이 마음에 담고 있는 그 순간의 장면장면을 자신의 방식으로 스케치하여 앙투안 작업팀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그의 마음 속의 가장 찬란했던 그 순간이 매우 아름답고 세세하게 재현된다.

빅토르의 아내인 마리안은 자신의 커리어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인물이고 빠르게 디지털화하는 현 시대의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배워나가는 인물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빅토르와 마리안은 전혀 맞지 않는 부부로 그려진다. 둘의 결혼 생활은 30년이 넘게 지속되었고, 서로에 대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리안은 변화하지 않는 빅토르를 보며 짜증을 쏟아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즐긴다. 결국 이혼이라는 단어를 빅토르에게 쏟아내고는 시원한 감정을 느낀다. 마리안이 빅토르를 집에서 내보내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빅토르가 그 집 앞 문앞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모습에서는 이 부부의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진다. 

초라한 현재의 빅토르와 그를 밀어내는 아내 마리안 
 
 영화 <카페 벨에포크> 장면

영화 <카페 벨에포크> 장면 ⓒ (주)이수C&E

 
그 이후 벌어지는 빅토르의 시간여행이 흥미로운 건 그 아름다운 순간에 만난 첫사랑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빅토르의 과거 모습과 그 때 만났던 첫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거대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현된 카페 벨에포크에는 그 당시의 요리사와 종업원이 있고, 첫사랑의 전 남자친구도 있다. 그 장면 속에 다시 들어간 빅토르는 그가 기억하고 있는 그 장면장면들을 하나하나 관찰한다. 

그는 젊은 자신을 연기하듯이 그 당시에 했던 말들을 말하고 연기하는 상대방과 그 당시의 감정을 나누기도 한다. 최대한 그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영화 초반에 비해 더 젊어보이고, 생동감있어 보인다. 여느 노인들이 과거를 회상할 때, 생기가 느껴지는 것처럼 과거로 돌아간 빅토르의 모습도 보다 긍정적인 감정이 얼굴을 가득 채운다. 

빅토르에게 가장 찬란했던 순간은 바로 아내 마리안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다. 재연배우 마르고(도리아 틸리어)가 연기하는 마리안과 그때 했던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빅토르는 점점 그 상황 속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마치 우리들이 좋은 기억을 회상 할 때 기억이 조금씩 틀어지는 것처럼 앙투안 팀이 만든 과거에는 작은 실수들이 있다. 그건 기억의 오류일수도 있고, 우리가 그 당시를 기억할 때 좀 더 미화된 정보를 입력한 것일수도 있다. <카페 벨에포크>는 그런 작은 기억의 오류들을 통해 영화의 유쾌함과 긴장감을 살리는 용도로 적절히 활용한다. 그리고 그 작은 소동극 속에서 빅토르가 다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아날로그 시간여행으로 다시 찾는 자신의 빛나는 순간
 
 영화 <카페 벨에포크> 장면

영화 <카페 벨에포크> 장면 ⓒ (주)이수C&E

 
영화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인물은 당연히 빅토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내 마리안도 중요하다. 마리안의 영화 속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빅토르와 완전히 반대로 보이는 현재 마리안의 모습은 과거에 이들이 무슨 이유로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계속 궁금하게 만든다. 마리안이 빅토르에 대한 한심함과 짜증을 내뱉을 때, 그 뒤에서 험한 말 한마디 못하는 빅토르의 뒷모습은 그가 처한 심리적인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 자신은 방어적으로 한심하게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항하려 하지만 그 자신조차 현재의 자신이 못마땅하다. 현재의 자신이 초라하게 생각되기 때문에 그는 더욱 더 재현된 과거의 상황에 더욱 몰입한다. 

어쩌면 나이듦이란 서서히 초라해지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빅토르가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하듯, 아내 마리안도 자신이 초라해져서 신경쓰인다는 것을 드러낸다. 결국 각자가 보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은 그렇게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부부의 관계를 소원해지게 만든다. 그들에게 다시 희망의 기운을 넣어주는 건, 바로 과거의 가장 찬란했던 그 순간이다. 

프랑스 영화인 <카페 벨에포크>는 빅토르의 아날로그 시간여행을 따라가면서 그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한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을 연기하는 마르고와 예전의 감정을 나누지만 결국 그 감정이 자신의 아내인 마리안을 위한 것임을 안다. 그는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인 아날로그적인 접근으로 자신의 아내를 감정적으로 설득해 내고 만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찬란한 순간을 계속 돌아보는 건, 그 당시의 빛나는 나 자신을 기억하려는 계속된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 순간을 통해 나 자신을 잊지 말라고 영화 내내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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