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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온라인클래스 화면 캡처
▲ 여고생에게 온라인 개학이 미치는 영향 EBS 온라인클래스 화면 캡처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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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고 벌써 네 달 남짓 지났다. 처음엔 그저 방학이 조금 연장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 결국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온라인 개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나는 아직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새로 산 동복(겨울 교복)은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여름이 와 버렸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이 혼란 덕분에 모두들 고통을 겪고 있다. 상황이 나아지려 하면 다시 악화되는 것으로 무한반복. 우리는 언제쯤 코로나19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온라인 개학에 대응하는 10대의 아주 솔직한 일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내 기준으로!

온라인 개학을 하고 초반에는 정말 나태해졌다. 하루종일 '이불밖은 위험해!'를 외치며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날들이 다반수였다. 하지만 학원을 다시 정상적으로 다니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도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는 모습을 보며 서서히 나도 정상적인 패턴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낮과 밤이 바뀌지 않고 학교 출석 체크 시간에 맞추어 아침 8시 10분에 일어나는 것이 일상화 되었다. 몸이 점점 온라인 개학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갑갑함은 그대로였다. 나는 무언가 해소할 것이 필요해졌다. 결국 나는... 앞머리를 잘랐다.

이것은 굉장히 큰 결정이다. 앞머리를 내릴지 말지는 이제껏 계속 되는 꽤 큰 고민이었다. 잘랐을 때 망하면 노답(답이 없음)이기 때문이다. 앞머리를 자른 동기는 간단하다. 충동적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앞머리를 잘랐다
 
출처: 픽사베이
▲ 본능과 불안의 갈등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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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충동의 시작은 유튜브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어느덧 '거지존' 앞머리 스타일링 영상까지 가게 되었다. 그걸 보니 내 앞머리가 바로 거지존이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딱 중간 정도의 길이로 어떤 스타일링을 해도 애매한 길이. 나무위키에도 나온다. 

거지존(Awkward Zone) : 헤어스타일이 장발과 단발 사이의 과도기를 일컫는 단어.

나는 중학교 때 앞머리를 혼자 자른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참담하게 망했고 지금까지 다시 기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항상 거울을 볼 때 지난번에 짧게 자른 앞머리가 쉽게 자라지 않아 속상했다.

헤어스타일링기(일명 고데기)로 학교에 갈 때마다 열심히 머리를 지지며 어떻게든 헤어 스타일을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귀차니즘의 끝판왕인 나는 곧 매일 매일 머리 손질하는 것이 힘들어서 결국 이 거지존을 달고, 말 그대로 거지 같은 몇 달을 살아왔다.

이런 나에게 유튜브가 '거지존 극복 꿀팁'이라는 영상을 추천해줌으로써 꾸미고 싶은 나의 본능을 되살려 낸 거다. 온라인 수업을 침대에서 끝내고 꾸물꾸물 기어 내려와 유튜브 영상과 거울에 비친 나의 망작(망한 머리)을 바라보며, 한 손에는 고데기를 한 손에는 내 머리카락을 쥐고 열심히 영상을 따라해 보았다.

고데기를 다시 들게 된 것은 실로 몇 달만이어서 나름 재미있었다. 열심히 영상을 따라하다 보니 꽤나 괜찮은 머리가 탄생했다. 머리에 만족하며 앞으로는 이렇게 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눈을 확 끄는 추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내 작은 스마트폰 안의 거지존 극복 영상 밑에 뜬 또 다른 영상을. 그것은 바로 '혼자서 앞머리 잘 자르는 꿀팁'이었다.

그렇다. 나는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마의 유튜브 알고리즘 구간에 빠져버린 것이다.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나는 이미 앞머리 자르기 영상을 정독하고, 머리를 묶고, 앞머리를 자르기 위해 삼각형 모양으로 가르마를 타고, 손에는 가위를 들고 있었다. 내면에 숨어 있던 불안이 나에게 속삭였다.

'안돼. 절대 안 돼. 어떻게 기른 머리인데 또 자르려고 하니. 정신 차려. 겨우 몇 달 지났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 여기서 멈춰!'   

하지만 나의 본능은 반박했다.

'그래. 니 말대로 몇 달이나 길렀는데 아직도 거지존이야. 이젠 더 이상 이 헤어 스타일로는 못 살겠어. 나도 예쁜 머리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본능이 불안을 눌러 버렸다. 나는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앞머리 자르는 방법 영상과 내 머리를 수십 번 번갈아 보며 몇 달 전 내가 했던 그 짓을 똑같이 했다. 이번엔 잘 될 거라는 이상한 도박 심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나는 결국 손에 가위를 쥐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눈 앞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었다.

싹. 둑
아. 결국 잘랐다.

망할 것 같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자르기 시작했으니 무조건 끝을 봐야 한다는 심리가 발동했다. 두근두근 긴장이 되었다. 나는 저번처럼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서걱서걱 머리를 자르기 시작했다. 마무리가 다 되었다고 생각할 때쯤 거울을 보고 꼬리빗으로 머리를 쓱쓱 빗어 주었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이번엔 안 망한 것 같아!'

기쁨이 온몸에 감돌았다. 이미 입꼬리는 씰룩 올라가고 마지막 단계인 고데기로 가볍게 머리를 쓸어주었다. 옆의 애교머리까지 모두 자른 나는 다시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었다.

굉장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저번과 다르게 망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머리를 했다는 설렘과 이젠 거지존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 헤어 스타일은 주변인의 반응에 따라 또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지만 오늘만큼은 너무나 행복하다.

오늘은 또 뭘 도전해볼까
 
도전할 거리를 찾아 오늘도 난 유튜브를 서칭한다.
▲ 오늘은 무엇을 도전해 볼까나? 도전할 거리를 찾아 오늘도 난 유튜브를 서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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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개학으로 집에 있으면서 솔직히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확 늘어났다. 유튜브 안에는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 추천 영상은 알고리즘을 타고 끊임없이 나를 유튜브 안에 붙잡아 둔다. 어느 순간 마법처럼 나도 저 영상에 나오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침대에 붙어 있던 몸을 일으켜 색다른 요리를 해 보고, 프랑스어도 배워 보고, 가구를 옮겨 방을 꾸며보고, 중고 거래를 시도해보고, 머리를 자르고, 새로운 화장법을 시도해 본다.

온라인 개학은 학생들에게 뭔가 스스로 시도해 보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또한 어른들의 잔소리 없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 볼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해 볼 수 없는 것들과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것들을 해 보기 위해 오늘도 나는 눈빛을 반짝이며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걸 도전해 볼까나?

태그:#온라인개학, #고등학생, #코로나 19, #집콕, #머리 자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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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좋아하고, 그림도 사진찍는것도 좋아하는 평범한 여고생입니다. 항상 도전하는 자세로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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