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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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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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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코로나를 잘 대처한 이유? 세월호 참사 이후 굳어진 '각자도생' 때문이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지난 4일 <오마이뉴스>를 만나 "우리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잘한 건 사실이지만 위기상황에서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국민들의 자기 판단이 주요하게 작동해 위기를 벗어났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 부분 역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면서 "'(코로나19에) 감염되면 큰일 난다'는 생각이 국민들 사이에 주요하게 자리 잡았고, 이런 인식이 결과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잘 따르게 만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정부보다 사업주가 더 무섭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긴 각자도생과 타인의 시선도 통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이었다. 

이 대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는 정부보다 사업주가 더 무서운 존재였다는 거다"라면서 "사업주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해고를 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코로나19로 인한 각자도생의 형국이 아무리 강해도 소용없다"라고 밝혔다.

"사회보장이 약한 한국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는다는 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서 아무리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강조해도 소용없다. 당장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에겐 죽을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권리가 없다. 각자도생이라는 한국사회의 철칙이 작동되지 않는 공간이 존재하는 거다."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에 있는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0명이 다쳤다. 불이 난 곳은 전체면적 1만 1000㎡ 규모의 지하 2층·지상 4층짜리 물류창고 공사현장으로, 사고 발생 당시 9개 업체 78명이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다. 소방당국은 공사현장 내 우레탄폼 작업 중 발생한 유증기(기름 증기)와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중 튄 불꽃이 결합해 순식간에 폭발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앞서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8년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 역시 당시 창고 지하에서 57명의 노동자가 전기배선 설치와 냉매 주입 등의 작업을 진행하던 중 전기용접을 위해 불을 붙이는 순간 공기 중에 차 있던 유증기가 폭발해 사고로 이어졌다.

중대 재해 왜 반복되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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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2008년에도 이천에서 큰 사고가 있었는데 12년이 지나 다시 큰 사고가 발생했다"면서 "당시에는 용접을 해서는 안 되는 공간에서 용접을 한 노동자 부주의로 사건을 봤다, 개인책임으로 간 것인데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선 개개별의 책임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원인을 파악해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원청회사인 코리아2000은 산업안전보건법위반죄로 최종심에서 2천만원의 벌금만 물었다. 40명이 죽었으니 한 사람당 50만 원씩 목숨값을 낸 셈이다.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사건으로 6명의 하청노동자가 사망했을 당시에도 원청인 삼성중공업은 300만 원의 벌금만 냈다.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수리 하청업체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도 원청인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같은 해 한화케미칼 울산공장에서 폭발사고로 하청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원청은 벌금 1500만 원만 물었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재발방지대책을 어떻게 세우느냐가 정부의 변화를 판단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면서 "현장에서 노동자의 발언권이나 참여권이 얼마나 세지느냐에 따라 노동자의 산재사고 사망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이천 물류센터 신축공사 화재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사고 현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정밀 점검하기 위해 원청 시공사에 대한 특별감독을 7일부터 2주간 실시한다고 밝혔다. 특별감독은 사고현장은 물론 원청 본사와 원청이 시공하고 있는 전국의 물류·냉동창고 건설현장에 대하여 시행할 예정이다.

또 고용노동부는 유사한 화재 및 폭발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전국의 물류·냉동창고 건설현장 340여 개소에 대해서도 7일부터 5주간 긴급감독을 병행 실시한다고 밝혔다.

무엇을 바꿔야 하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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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대표는 "우울한 전망이긴 하지만 정부가 몇 개의 정책을 바꾼다고 산재사망이나 노동자의 삶과 질이 당장 개선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인식 등 기본적으로 정서가 바뀌지 않으면 자본의 이익과 노동자의 안전을 묻는 질문 앞에 언제나 노동산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라고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균열이 보인다"면서 "청년노동자들부터 '내가 왜 회사에서 죽어야 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라고 강조했다.

"삼성에서 한때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말을 강조했듯, 50대만 해도 기업과 자신을 일체감 있게 봤다. 자연스레 주류적인 사고방식과 내 생각을 일치시키려고 했다. 열심히 일하면 회사가 나와 가족을 책임져 줄 거라 생각한 거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열심히 일해도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철옹성 같이 강고해 보이던 개념이 변화하기 시작한 거다."

이 대표는 "노동자들이 집단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 편하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노동자의 개개별 생각이 아무리 변화했다 할지라도 회사 내에서 개인은 여전히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집단화가 가능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게 하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한국사회 변화를 느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변화의 포인트"라고 밝혔다.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 이 대표는 "어느 나라든 아무리 집단화 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 사회라도 집단화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존재한다"면서 "조직활동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필요하고, 그것이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인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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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가 속한 노동건강연대는 지난달 28일 '세계산재사망노동자추모'의 날을 맞아 "2019년 최악의 살인기업 1위는 하청노동자 7명이 사망한 대우건설"이라고 발표했다. 2006년이래 매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노동건강연대는 매달 '이달의 기업살인'도 정리해 발표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운동을 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살인이다'라는 인식을 전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기업들은 처벌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인식이다."

이를 위해 이 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n번방 사건과 같이 봤으면 좋겠다"면서 "이전에는 범죄라고 생각이 안 됐거나 범죄라도 사소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굉장히 중대한 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난 것이니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역시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2007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한 영국은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매출 규모에 따라 벌금 양형을 정하도록 만들었다.

매출 규모가 5천만 파운드(약 755억 원) 이상 기업은 벌금 상한액이 최대 2천만 파운드에 이른다. 우리돈으로 3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OECD 2015년 통계를 살펴도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는 영국이 0.4명으로 최저이고, 한국은 영국보다 20배 이상 많은 10.1명이었다.

이날 이 대표는 정부가 추진 중인 '기본소득'과 '재난소득'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노동자들은 임금을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지닌 사업주만 주는 줄만 알았는데 이제는 정부가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이러한 경험들이 사회보장 강화에 대한 인식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답게 인터뷰를 마무리 하며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는 열악한 노동현장에서부터 다음을 대비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프면 쉬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개인보호 장구를 갖출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정부가 강조하는 뉴노멀 시대의 표준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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