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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이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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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코로나19 이후 경제 대책으로 추진할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구체적인 추진 방안은 6월 중 발표될 예정이지만 원격의료와 원격교육 등 비대면 서비스 확대가 포함된 한국판 뉴딜을 두고 '재난 자본주의'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한국형 뉴딜 추진 방향을 확정해 발표했다. 초점은 '비대면화'와 '디지털화'로 모아졌다. 

정부는 향후 2~3년간 데이터·5세대 이동통신(5G)·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 원격의료 등 비대면 산업 집중 육성, 사회기반시설(SOC)의 디지털화 등 3대 영역 프로젝트를 중점 추진하기로 했다. 

3대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10개 중점과제도 선정했다.  ▲데이터 전(全)주기 인프라 강화 ▲국민체감 핵심 6대 분야 데이터 수집·활용 확대 ▲5G 인프라 조기 구축 ▲5G+ 융복합 사업 촉진 ▲AI 데이터·인프라 확충 ▲전산업으로 AI 융합 확산 ▲비대면 서비스 확산 기반 조성 ▲클라우드 및 사이버안전망 강화 ▲노후 국가기반시설 디지털화 ▲디지털 물류서비스 체계 구축 등이다. 

홍 부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한국판 뉴딜은 우리 경제의 디지털화 가속 및 비대면화 촉진 등에 중점을 둔 디지털 기반 일자리 창출 및 경제혁신 가속화 프로젝트의 집중 추진으로 요약된다"라며 "과거의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부양성 뉴딜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뉴딜과는 확실히 구별" 자화자찬했지만...

하지만 정부가 비대면 서비스 확산 기반을 조성해 원격의료나 원격교육을 추진하기로 한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재난 상황을 이용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규제 완화 등을 손쉽게 추진하려는 한국형 '재난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재난 자본주의는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국가와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재난 상황을 이용해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관철하는 행태를 말한다. 나오미 클라인은 미국의 9·11 테러, 카트리나 등 재난 이후 상황을 분석해 실제로 국가가 재난 극복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본의 요구대로 공공부문 민영화나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행태를 고발했다. 

특히 재난 극복을 위해 일시적으로 취해진 조치는 재난이 끝난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영구적인 사회 제도로 남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 외환위기 이후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직 양산이 재난 극복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됐고 제도화됐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뉴딜'도 재난 자본주의의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원격의료 분야 규제 완화 움직임이다. 원격의료 허용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병원 등 대형병원들의 숙원 사업 중 하나다. 현행 의료법상 국내에서 환자와 의사가 직접 만나지 않고 진료와 처방을 하는 원격의료는 금지돼 있다. 2000년부터 20년간 일부 분야에서 '시범사업' 형태로만 이루어져왔다.  

정부와 대기업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실시된 전화 진료와 처방이 효과적이었다며 비상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원격의료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24일부터 2개월여 동안 전화 진료를 통한 처방을 허용한 결과 13만건 이상의 비대면 진료가 이뤄졌지만 오진 등 부작용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9일 원격의료를 예로 들면서 "비대면 산업의 추가 규제 혁파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가 21대 국회에서 원격진료 허용을 위해 의료법 개정안을 재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원격의료 추진이 반발에 부딪힌 것은 그만큼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원격의료가 시작되면 환자들의 대형병원으로 쏠림이 일어나 동네 병·의원의 폐업 등으로 인해 지역 의료망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 원격 의료 장비에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대형병원만 생존이 가능해지는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원격의료 허용은 병원의 영리화로 가는 첫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2월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부터)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지난 2월 1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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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원격의료 한 발 물러 섰지만 문제는 여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정부는 원격의료 허용에는 선을 그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날 한국판 뉴딜 내용을 설명하면서 비대면 서비스 기반 조성이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느냐라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라며 "기존에 하던 의료 취약지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과 상담 중심으로 시범사업 대상을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인프라를 보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정부가 언제든 다시 원격의료 허용을 본격 추진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정부가 보건소 등 공공의료를 중심으로 비대면 의료서비스의 기반을 확대하겠다고 한 것은 대기업 운영 병원 특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우선 1단계 사업 정도로 추진하려는 것 같다"라며 "원격의료는 삼성이 역점을 기울이는 사업인 만큼 정부가 다시 기회가 오면 적용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큰 힘을 발휘한 국공립병원 등 공공의료 확대는 외면한 채 의료의 산업적 측면만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는 비판도 여전하다. 제대로 된 코로나19 뉴딜이라면 의료취약지역에 비대면 진료를 강화하는 게 아니라 공공의료체계를 확충하고 공공의료 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석균 대표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코로나19의 2차 확산에 대비하기 위한 공중의료 시설 및 의료 인력 확충"이라며 "중환자 병상의 경우 현재 8000개에서 두 배 수준으로 늘리고 여기에 필수 의료장비의 재고 확보와 국가 관리까지 필요한데 이 부분이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세계적 추세인 그린 뉴딜은 없고 회색 뉴딜만 
 
6일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 뉴딜' 토론회.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에 그린 뉴딜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6일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 뉴딜" 토론회.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국판 뉴딜에 그린 뉴딜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에너지전환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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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사회기반시설 디지털화도 문제다. 정부는 도로·철도 등 노후 시설물에 스마트 관리체계를 도입해 안전성을 높이고, 국가기반시설 관련 데이터의 수집·가공·공유를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는 외피가 더해졌을 뿐 사실상 '회색 뉴딜'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그린 뉴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회색 뉴딜만 언급하는 것은 그쪽이 많은 고민이 필요 없고 과거에 하던대로 하면 돼서 기재부 공무원들에게 편하기 때문"이라며 "기재부는 그린 뉴딜을 환경부가 해야 할 일로 볼 뿐 유럽처럼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경제성장 전략으로 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 박사의 지적대로 한국판 뉴딜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대책으로 본격 추진을 준비하고 있는 그린 뉴딜 투자가 빠져있다. 전문가들은 세계적 추세에 맞춰 한국판 뉴딜에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대 등 과감한 '그린 뉴딜' 정책이 보강돼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은 6일 국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뉴딜' 토론회에서 "정부가 성장과 일자리 창출 및 분배와 형평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그린 뉴딜을 코로나19 이후 경제 재건의 주축으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판 뉴딜도 그린 뉴딜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이원영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은 "지금까지는 탈성장만이 기후위기를 막는다고 했지만, 우리가 어디에 투자하고 법‧제도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성장산업이 지구를 살릴 수도 있다"라며 "에너지 전환 산업 투자‧육성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기후위기를 막으면서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그:#한국판 뉴딜, #그린 뉴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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