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진 디슨·왼쪽)를 만난 주인공은 자신을 미카엘(조 허란)이라고 소개한다.

리사(진 디슨·왼쪽)를 만난 주인공은 자신을 미카엘(조 허란)이라고 소개한다. ⓒ (주)영화특별시SMC

 
아이들이 놀고 있는 장면을 보던 한 아이는 어울리고 싶은 마음에 집 밖으로 나간다. 그때 처음 만난 긴 머리의 여자아이가 말을 건다.

"새로 이사 왔니?"
"응, 어제 왔어."
"난 리사야."
"난 미카엘이야."


오는 14일 개봉하는 영화 <톰보이>(감독 셀린 시아마)는 우리 모두의 유년기 기억의 한 조각을 꺼내 놓은 것 같다. 때가 덜 묻기도 했지만 어딘가 마음속 불안함에 끙끙 앓았던 어렸을 적 그 시절 말이다. 찬란했지만 어떤 순간에는 머뭇거렸던 한 아이의 여름날을 영화는 수채화처럼 펼쳐낸다.
 
미카엘(조 허란)은 짧은 머리에 축구 실력이 좋은 10살 아이다. 가족과 새 동네로 이사를 온 그는 새로 만난 아이들과 숲속에서 게임을 한다. 그는 자연스럽게 남자아이들 틈에 섞인다.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던 그는 친구들이 웃통을 벗고 땅바닥에 침을 뱉는 장면을 목격한다. 집에서 고민하던 미카엘은 다음 번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 자신도 웃통을 벗고 침을 뱉기 시작한다. 미카엘에게 좋은 감정이 있었던 리사는 그를 집으로 초대한다. 리사는 미카엘에게 화장을 해주지만 미카엘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잔(말론 레바나·왼쪽)은 미카엘의 비밀을 알고도 그를 응원한다.

잔(말론 레바나·왼쪽)은 미카엘의 비밀을 알고도 그를 응원한다. ⓒ (주)영화특별시SMC

  
영화 제목에서 주인공에 대한 예상이 가능한 이야기. 미카엘은 소녀다. 그는 주로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하려고 한다. 미카엘이라는 이름도 그의 본명이 아니다. 남자처럼 보이기 위한 거짓말이다. 그의 본명은 로레. 그가 남자처럼 보이고 싶은지, 남자가 되고 싶은 건지 정확한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로레는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이가 아니다.

시아마 감독은 어떤 명확한 답도 내리지 않는다. 경쾌하지만 때로는 불안한 아이의 표정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밀도 있게 그려낸다. 미카엘 혹은 로엘의 정체를 궁금해하던 관객도 시간이 흐르면서 성별이 아닌 오롯이 한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이 영화가 한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기처럼 느껴지다가도 퀴어영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유다.
 
배경음악이 거의 없는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것은 로레를 연기한 조 허란이다. 그의 입체적 표정에 관객의 마음에서는 감정의 파도가 친다. 그가 자신의 거짓말이 들킬까 눈치를 볼 때면 관객의 마음은 쪼그라들고 그가 친구들 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 안심한다. 로레가 거짓말을 한 사실을 알고도 그를 응원하는 로레의 동생 잔(말론 레바나)의 맑은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는 "언니보다 오빠가 좋다"고 주변에 말한다. 로레와 잔 둘 다 여성이지만 사뭇 다른 옷차림은 중성적인 로레의 색깔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영화 <톰보이>의 한 장면.

영화 <톰보이>의 한 장면. ⓒ (주)영화특별시SMC

  
이 영화의 시작은 짧은 머리카락을 한 로레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햇빛 아래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스크린에 펼쳐지는 나무와 구름에서 따뜻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너의 뜻대로,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차분하게 보여주는 광경이다.

올해 초 두 여성의 사랑을 그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통해 국내 많은 여성 팬을 탄생시킨 시아마 감독의 2011년 작품. 국내에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기획전 등에서 소개됐으나 정식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테디상(퀴어영화)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12세 이상 관람가. 82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톰보이 셀린 시아마 조 허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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