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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급자족이라면 농경사회를 떠올렸다. 옷을 지으려면 누에를 키우거나 목화를 심는 것부터고 요리라면 식물의 씨를 뿌리고 닭을 키우는 것부터라고. 자급자족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을 때부터 그렇게 막연히 생각해 왔을 것이다. 마치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주인공이 짜장면을 만들기 위해 새의 분비물을 긁어 씨앗을 심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그만큼 자급자족이라는 말은 내 생활과 거리가 먼 일이었다.

그런데 요즘 코로나 사태로 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여기저기서 자급자족 라이프라는 말이 들려온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의미가 있는지 찾아보아도 여전히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생산하여 충당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생활 속에도 다양한 자급자족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수세미 만들기
 
내 맘대로 수세미
 내 맘대로 수세미
ⓒ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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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년 전, 수세미를 뜨려고 사둔 실이 있었다. 알려진 도안과 상관없이 생각나는 대로 만들기를 즐기던 나는 야심차게 고양이 얼굴 모양을 만들어 보겠다고 다양한 색깔의 실을 샀다. 

우리 집 냥이처럼 삼색 얼룩이 있는 모양을 만든다고 산 회색, 청색, 금색, 은색, 흰색 등등의 실이었다. 얼룩은 어떻게 하겠는데 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라 떴다 풀었다를 반복하다가 생각만큼 잘 안 되어 미루고는 잊어버렸다. 

최근에 집 정리를 하면서 구석에 넣어둔 수세미 실 박스를 찾아냈다. 마침 집에 머무는 시간을 뭘로 채울지 아쉽던 차에 잘됐다 싶어 실을 꺼내어 무작정 뜨기 시작했다. 처음엔 만들다 만 하트 모양 수세미를 모두 완성했다. 아직도 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 내가 시장에서 실 사는 걸 본 지인이 실 한 타래면 몇 개 정도 나오느냐고 물었다. 어떤 모양의 수세미인지 모르는데 몇 개가 나올지 어떻게 안단 말인지. 아무튼 그 물음이 떠올라 다 뜨면 총 몇 개인지 답할 수 있겠네 싶었다.

며칠 동안 도안도 없는 내 맘대로 수세미를 뜨고 또 떴다. 갖고 있던 수세미 실을 모두 소진하니 한 바구니의 수세미가 완성. 혼자 쓰려면 십 년을 써야 할 것 같아 줄 사람을 떠올려 본다. 아직 모임도 하지 않고 있으니 잘 갖고 있다가 이런저런 모임을 하게 되면 그때 들고나갈 생각으로 차곡차곡 넣어 두었다. 

홈 베이킹
 
미니 오븐에 구운 초코칩 쿠키
 미니 오븐에 구운 초코칩 쿠키
ⓒ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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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부지런히 쿠키를 구워 간식으로 보냈다. 미니 오븐으로 간식을 보낼 만큼을 구우려면 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그렇게 힘들어도 내가 좋아서 하던 베이킹이었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자 뜸해졌다. 미니 오븐을 좁은 주방에 놓을 곳이 없어 치웠다가 버리긴 아쉬워 다시 내놓았다가만 반복했다.

그러다 냉동 생지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냉동된 채 배송되는 상품이었다. 받아서 오븐에 굽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다니! 냉동생지로 빵을 굽는 것도 홈베이킹이라고 할 수 있나 싶긴 하지만 그렇게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카페에서 먹는 사이드 메뉴도 냉동 생지로 구입할 수 있었다! 처음엔 쿠키 믹스만 사서 초코칩 쿠키를 구워 보려 했는데 다양한 냉동 생지에 마음이 동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크로와상과 허니버터 브레드 생지를 샀다. 

쿠키 믹스는 반죽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고, 틈틈이 꺼내어 굽는다. 허니 버터 브레드는 냉동실에서 꺼내어 바로 오븐에 구웠다. 생크림까지 얹으면 더 좋겠지만 카페에서나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서 먹다니 그걸로도 좋다. 

물론 카페에서 먹는 맛과는 다를 수 있다. 장소와 분위기도 다분히 맛에 영향을 줄 테니. 하지만 외출도 못하고 집에만 있는 동안 아이들과 함께 구워 먹는 빵은 온종일 집 안에 감도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와 더불어 행복감을 전해 준다. 

딸기 라테 만들기
 
딸기청으로 만든 딸기라테
 딸기청으로 만든 딸기라테
ⓒ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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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만든 딸기청은 실패였다. 딸기청을 우유에 넣어 만드는 딸기 라테는 너무 달다며 아이들은 안 먹겠다고 했다. 게다가 한 병은 곰팡이가 났다.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고 맘먹었지만 다시 딸기의 계절이 왔고 과일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나를 유혹했다. 다시 딸기청을 만들어 직접 구운 쿠키와 함께 먹고 싶어졌다. 

나는 요리에 별 취미가 없다. 더구나 손이 많이 가는 과일청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레몬과 자몽으로 몇 번의 청을 담근 뒤 과일청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게다가 삼시 세 끼를 집에서 해 먹어야 하는 요즘에는 더더욱. 

하지만 아이들 핑계로 다시 한번 담가 보고 싶었다. 사실 나는 우유를 먹으면 배가 아파 잘 안 먹는다. 그래도 딸기청을 넣은 딸기 라테의 맛을 좋아한다. 아이들을 위해, 또 가끔은 나를 위해 다시 딸기청을 만들기로 했다. 

딸기를 사다가 소금으로 깨끗이 닦았다. 다시 곰팡이가 나는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 무른 듯한 딸기들은 골라냈다. 물기를 말리고 하나하나 칼로 잘게 썰었다. 수저로 으깨서 만들기도 한다지만 나는 과육이 씹히는 것이 좋아서 칼로 정성스레 다졌다.

한 시간 칼질을 한 후 설탕을 뿌려 소독해 놓은 병에 담았다. 이번엔 너무 달다고 하지 않을 만큼 양을 재면서. 한 시간 동안의 칼질이 무색하게 준비해둔 병이 많이 남았다. 딸기가 적었나? 병이 많았나? 집에 있는 병이란 병은 다 꺼내어 소독했는데, 아까웠다.

오이 피클 담그기
 
처음 만든 오이 피클
 처음 만든 오이 피클
ⓒ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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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이 피클 담그는 글을 읽었다. 애써 꺼내 소독한 병을 어쩔까 하던 차에 용기 내어 오이 피클을 담가 보기로 했다. 생전 처음으로 피클을 담그겠다는 용기는 갑자기 어디서 솟았을까. 오로지 병을 쓰기 위해서였다. 

우선 레시피를 검색했다. 중요한 건 단촛물의 비율이었다. 사람마다 취향마다 다르다고 하지만 너무 단 것은 좋아하지 않으니 좀 약한 레시피를 골랐다. 거기에 중요한 건 피클링 스파이스! 

향신료의 세계에는 절대 문외한인 내게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파는 피클 맛이 나게 해 준다고 하니 우선 사야겠다. 이런 향신료도 온라인 쇼핑으로 살 수 있다니, 집콕 생활을 하며 애용하게 된 온라인 몰에서 바로 구입했다. 

오이 다섯 개를 사다가 굵은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닦았다. 물기를 말리고 오이를 두껍게 썰었다. 물, 설탕을 비율대로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식초와 피클링 스파이스와 소금을 넣고 한 번 더 끓인다. 소독한 병에 오이를 넣고 끓인 단촛물을 부으면 끝! 피클이 이렇게나 간단한 것이었구나. 귀찮고 어려울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않던 피클 담그기를 하고 나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작은 것 한 병은 어머님 댁에 드리고 큰 것 한 병은 우리가 먹었다. 처음 담근 피클이지만 예상 밖으로 너무 맛있었다. 며칠 만에 다 먹어 버리고 다시 오이를 더 많이 사다가 피클을 담갔다. 당분간 피클을 자꾸 담그고 싶어질 것 같다.  

상추 기르기
 
딸기 상자에 상추 모종 심기
 딸기 상자에 상추 모종 심기
ⓒ 조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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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를 자주 사다 먹다 보니 딸기를 담았던 일회용 용기가 자꾸만 버려지는 것이 마음 쓰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나 붉은색 플라스틱 바구니는 그대로 버리지만 두꺼운 스티로폼 상자는 그냥 버리기 아까웠다. 

베란다에 상추를 심기로 했다. 작은 상자라서 모종은 두세 개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으리라. 상추 모종은 다섯 개에 천 원이라고 했다. 세 개만 달라고 하긴 그래서 상추 네 개와 겨자 하나를 샀다. 분갈이용 흙도 사 와서 작은 딸기 상자에 세 개, 두 개로 나누어 심었다. 

흙이 얕고 밭이 너무 작다는 남편 말에 매일매일 상추를 들여다 보았다. 처음엔 뿌리는 내렸나, 자라기는 하는 건가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잘 자라고 있었다. 처음 사진과 일주일 후 사진을 찍어 비교하니 많이 자랐다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과 함께 직접 기른 상추를 뜯어 고기쌈을 싸 먹을 날을 기대하며 바라보는 마음이 흐뭇하다. 흙이 얕아 쑥쑥 크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지만 버려지는 스티로폼 상자를 사용해서 상추를 길러 먹을 수 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거기에 자라나는 땅의 작물을 보는 기쁨은 덤이다. 상추 모종도 사고 흙도 사느라 상추를 사 먹는 가격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더 큰 보람을 얻는다. 

자급자족 라이프의 나비 효과

코로나 시대의 자급자족, 처음엔 시간을 보내려 시작했다. 하려고만 하면 왜 할 일이 없을까만 좁은 집 안에서 쳇바퀴 돌며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새로운 어떤 것이 필요하다. 다른 이들은 집콕을 견디기 위해 네 시간 걸린다는 달고나 커피도 해 먹는다는데. 내가 생활 속에서 찾은 자급자족을 나열하고 보니 '재미있는 만들기 생활' 정도로 표현 되겠다.

자급자족 생활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에 하다 남은 것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흥미가 떨어진 과거의 취미들도 시간이 흘러 새로운 재미로 연장되기도 한다. 나는 잊을 뻔했던 수세미 실을 꺼내어 필요한 물건으로 탄생시켰다. 그렇게 다시 찾은 '만들기'와 '만들어 쓰기'의 재미는 두뇌 회전뿐만 아니라 만들기 생활로 확장됐다.

수세미 실로 시작된 만들기는 도미노처럼 다음 만들기로 연결되었다. 직접 만드는 재미를 느끼자 마스크를 만들었다. 묵혔던 재봉틀을 돌리자 먼지 쌓인 오븐이 보였다. 오븐에 쿠키를 굽자 함께 먹을 딸기 라테를 만들고 싶어졌다. 딸기청을 만들고 남은 병을 활용하기 위해 오이 피클을 담갔다. 그리고 딸기가 담겨온 스티로폼 상자에는 상추를 심었다.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만들기의 재미를 찾은 자급자족 라이프의 나비 효과는 계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자급자족라이프, #수세미, #딸기청, #오이피클, #상추기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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