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발병이 대구 지역에서 급격히 확산할 때의 일이다. 아는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식도 못 치르고 화장한 뒤 바로 묻었다고 했다. 상주인 큰아들은 상복 대신 방호복을 입은 채 장례를 치렀다고 하니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싶다.
이때 본 책이 베르나르의 소설 <죽음>이다. 1994년에 나오자마자 읽었던 그의 초기 소설 <타나토노트>와 같은 출판사에서 똑같은 양장 제본으로 나왔다.
베르베르 자신과 닮은 천부적인 이야기꾼 '가브리엘 웰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죽음>은 갑작스레 죽은 주인공이 자기가 왜 죽어야 했는지 의문을 품고 그 사연을 파헤치는 소설이다. 피해자와 수사관이 동일인물이다 보니 얼마나 수사를 열심히 하겠는가. 재미있는 설정이다.
이야기는 저승과 이승을 오가며 사망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추리물이 그렇듯이 장면 하나하나가 숨 가쁘다. 가장 먼저 헤어진 여자친구가 떠올랐다. 매혹적인 여배우인 사브리나는 속된 말로 가브리엘이 '차버렸었다'.
두 번째 용의자로 쌍둥이 형인 토마가 걸려들었다. 가난한 과학자인 토마는 돈과 인기를 누리는 동생 가브리엘을 늘 질투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용의자가 나타났다. 출판인 알렉상드르와 문학평론가 장 무아지다.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에서 독자의 질문에 대답하듯이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물질세계와 비물질 세계는 물론 산 자와 죽은 자들 사이에 오가는 기이한 대화들이 그것이다.
"말도 안 돼! 난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니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웰즈씨. 당신은 말이죠... 일체의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것, 당신의 정신만 간직하게 됐어요." (33쪽)
이렇게 분노, 부정, 수용, 체념, 슬픔, 타협, 충격 등 일곱 단계의 죽음으로 가는 고개들이 나오는데 고개마다 죽음이라기보다 생생한 삶의 재생이다. <타나토노트>가 산 채로 죽음의 세계로 넘어 가 보기 위한 시도였다면, 이 책은 이승과 저승을 자유로이 오간다는 면에서 그때의 숙원을 푼 셈이다. (258~262쪽)
추리소설가의 근성일까?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영매 뤼시가 가브리엘 웰즈에게 환생을 권하면서 죽음의 원인을 찾기보다 환생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주인공은 그 권유를 거절한다. 죽음을 통해 삶의 이치를 알아가는 긴 여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농어민신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