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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멋진 찻집도 도서관도 된다. 사계절 빵빵한 냉난방과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되니 한두 시간쯤 자도 인터넷 서핑을 해도 좋다. 1250원으로 시간만 잘 맞춰 옮겨 타면 반나절 이상도 이용 가능하다. 시내버스의 장점이다. 떠나고 싶기도 안 떠나고 싶기도 하다면, 여행을 가고 싶지만 돈과 시간, 그 밖의 일상 여러 가지 것들이 발목을 잡는다면, 그럼에도 새로운 풍경과 영감, 또어떤 여행의 묘미를 즐기고 싶다면 그냥 훌쩍 내 옆에 와 서는 시내버스에 올라보시길.[기자말]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단계적 완화로 전환된 첫날(20일), 딱 이날까지가 기한인 그래서 더는 미룰 수 없는 업무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한달여 만에 버스를 타러 가는 길, 파란 하늘과 초록 나무들,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 이 모든 것이 감동스러웠다. 
 
 한 달여 만의 버스 이용
 한 달여 만의 버스 이용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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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목적지는 '범어사 입구'. 시내버스 131번을 타고 약 1시간30분을 가야 하는. 기왕지사 길을 나섰으니 모처럼 여행 기분을 내보기로. 여행이 별 건가. 어디든 설렘과 호기심을 품고 찾아가 새롭게 보고 느끼면 그 또한 여행이지.   
 
 5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 양정
 5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 양정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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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때까지 살았던 동네 '양정'. 차에서 내려 골목골목 샅샅이 찾아보면 내가 다닌 유아원, 한 살 많았던 절친 수진이와 늘 손잡고 오가던 길, 그 길 어디쯤에 은은한 향기를 풍기던(인공향이 첨가된 지우개나 샤푸심 냄새가 그렇게 좋았다) 문구점, 그리고 우리 가족이 세들어 살았던 초록색 대문집이 여전히 있을까.    
 
 버스 안에서 공부도 하고
 버스 안에서 공부도 하고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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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버스 안에서만도 할 수 있는 일들은 여러 가지. 차창 밖 구경을 실컷 하고 나서 버스 내 무료 와이파이에 접속, 인터넷 뉴스와 웹툰을 보고 가방에 넣어온 중국어 단어장을 꺼내 공부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자 조용한 실내에 있을 때보다 뭐든 집중이 잘 되고 더 재밌다.  
 
 할아버지와 개
 할아버지와 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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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좀 지나서 목적지인 '범어사 입구'에 도착했다. 봐야 할 업무를 위해 인근 관공서로 가는 길. 어느 집 마당에 집 지키는 일 따위 제 일 아닌 듯 봄볕 가운데 세상 편히 잠든 개도 보고 담벼락을 살금살금 걷는 귀여운 길고양이와 눈인사도 하고 함께 산책 나온 다정한 할아버지와 그의 늠름한 반려견도 만났다.   

여행이란 내가 속한 일상이 아닌 다른 낯선 곳에도 나와 같은 삶이 존재함을 확인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와 내게 소중한 존재들이 늘 안녕하길 바라듯 그들도 그러하길 바라게 되는. 여행이 끝나서도, 다시는 못 볼지라도 함께 존재함을 아니까.  
 
 가족 사진이 붙어 있는 여전히 아름다운 폐가
 가족 사진이 붙어 있는 여전히 아름다운 폐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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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폐가도 발견했는데 벽에는 초록 넝쿨이 곱게 번져 있고 도로를 향해 난 커다란 창에는 하얀 바탕에 분홍 꽃무늬 커튼이 매달려 여전히 화사한 느낌을 주었다. 콘크리트 벽돌을 쌓아 만든 전혀 위화감 없는 낮은 담장도 세월의 옷을 덧입어 중후한 멋이 났다. 

담장 너머로는 집 안이 훤히 보였는데 돌과 흙으로 지은 옛집 처마 아래엔 빛바랜 어느 가족의 사진이 그대로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아직 건재한 두 그루 커다란 나무가 수북히 자란 작은 풀꽃들의 보호자인냥 아님 집 전체의 수호신인 듯 서 있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게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범어사 입구
 범어사 입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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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업무는 채 30분도 안 돼서 마쳤고 여기까지 왔으니 인근에 천년고찰 범어사를 가보기로 했다. 131번 버스 내린 곳에서 3분쯤 떨어진 또다른 정류장에서 90번 버스를 타면 금세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계곡의 물 소리, 새 소리, 바람에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청량한 음료처럼 몸과 마음도 시원하게 해주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휑한 절 마당
 휑한 절 마당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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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서부터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내가 본 사람은 예닐곱 명 정도. 그마저도 모두 앞뒤로 멀찌기 걷고 있었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인부 서넛이 전혀 바쁜 기색 없이 '부처님 오신 날' 등달기 행사를 위한 구조물 작업 중이었다.  
 
 소원등 그림자
 소원등 그림자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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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먼저 달아둔 알록달록 소원등 아래 섰다. 처음엔 고개를 들어 형형색색 어여쁜 등을 바라봤지만 이내 바닥의 등 그림자에 눈이 갔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익숙했던 일상의 이면을 다시 보게 됐기 때문일까. 사람만이 있는 게 당연해 보였던 거대 도시에 사람이 자리를 비우자 각종 야생동물들이 나타난 것처럼.    

사람들이 모든 걸 차지하고 있을 때 그들은 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또 하나 실감한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마치 신과 같이 무서울 것도 불가능한 것도 없는 듯 기고만장하다가도 지금 같은 상황이 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몸을 숨기는 것뿐.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피고 진다. 어느 때고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런지.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피고 진다. 어느 때고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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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자연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얼마나 의연한지. 최상의 환경이든 최악의 환경이든 늘 제 자리에서 묵묵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피고 지는. 어느 때고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시금 일상의 안정을 되찾더라도 자연 또한 완벽히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를 계속 유지하면 좋겠다.

모처럼의 해방감과 여전한 우려가 교차했던 반나절 동안의 외출이었다. 이동 내내 마스크는 한 번도 벗지 않았으며 따로 챙겨간 손소독젤을 버스 타고 내릴 때를 포함 수시로 발라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북적이는 버스 안에서 옆사람과 거리를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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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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