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TV 드라마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던 SBS 금토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가 베일을 벗었다. 입헌군주제의 대한제국과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이 각각 다른 차원에 공존한다는 '평행세계'를 내세운 독특한 소재와 설정, 국내 최고의 시청률 보증수표로 꼽히는 김은숙 작가와 한류스타 이민호-김고은이 뭉친 '드림팀'이라는 점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더 킹> 1, 2회는 주인공인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가 큰아버지 이림(이정진)의 역모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어린 나이에 황제에 오르는 모습에서부터, 평행세계의 문을 여는 '만파식적'을 통해 차원의 문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여형사 정태을(김고은)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되는 장면 등을 담아냈다.

평행세계와 입헌군주제 등 판타지적 요소들이 가미한 설정과 화려한 영상미는 역시 흥미로웠다.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비주얼이나 김은숙 작가 특유의 귀를 간지럽히는 달달한 대사들도 여전했다. 높은 화제성을 증명하듯 지난 17일 처음 방송된 <더 킹>은 첫 회부터 시청률 11.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동시간대 1위를 거머쥐었다.
 
 SBS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 스틸 컷

SBS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 스틸 컷 ⓒ SBS

 
어떤 면에서 <더 킹>은 철저히 '예상 가능한 매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은숙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과 낭만적인 캐릭터, 톡톡튀는 대사를 바탕으로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 수많은 작품을 성공시키며 국내 최고의 '판타지 로맨스' 장인으로 꼽힌다. 작품마다 주연 배우들이 바뀌었던 그동안의 김은숙 드라마와 달리, 이민호는 <상속자들>, 김고은은 <도깨비>에서 이미 김은숙 작가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나 캐릭터에서 전작의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민호는 소집 해제 이후 <더 킹>이 3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이다. 이민호는 <꽃보다 남자>부터 <시티헌터> <상속자들> <신의> <푸른 바다의 전설> 등 수많은 전작에서 능력있고 까칠하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단호하고 헌신적인 '츤데레 직진남' 캐릭터를 단골로 연기한 바 있다. 이민호는 복귀작의 부담을 의식한 듯, 급격한 이미지 변신보다는 자신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

<더 킹>의 이곤은 철저히 이민호를 위한 맞춤형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배우가 전작에서 연기한 캐릭터들의 특징과 매력을 팬서비스처럼 집대성 해놓은 인물에 가깝다. 이곤은 대놓고 '백마탄 황제'라는 우월적인 지위에 있는 능력자이지만, 내면에는 외로움과 상처를 간직하고 있어서 누구보다 진실한 사랑을 갈구한다는 점에서 여심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남주인공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주인공에 금세 빠져서 사랑을 고백하며 "내가 자네를 내 황후로 맞이하겠다. 방금 자네가 그 이유가 됐어. 이 세계에 내가 발이 묶일 이유" 같이 엄격-근엄-진지한 표정으로 달달한 대사들을 날린다. 이곤이라는 캐릭터가 지향하는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평행세계로 건너온 대한민국에서 자네, 하오같은 '사극체' 대사를 쓰는 주인공이 주는 이질감은 묘하게 <도깨비>나 <미스터 선샤인>의 남주인공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김고은이 맡은 정태을 캐릭터 역시 전작인 <도깨비>를 연상시키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물론 평범한 고3 수험생이던 지은탁과 <더 킹>의 여형사 정태을은, 나이도 직업도 배경도 전혀 인물이지만 정작 드라마에서 차이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도깨비>의 '저승사자'나 <더킹>의 '평형 세계를 건너온 황제'같은 비현실적인 상황에 직면하여 당황한 모습이나, 남주인공과 티격태격하며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설정만 바뀐 동일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오히려 초반에는 오랜만에 정통 악역을 연기하는 이정진의 변신을 비롯해 우도환, 정은채, 김경남, 김영옥 등 조연들의 캐릭터가 더 눈에 띌 정도다.
 
 JTBC 드라마 <부부의 세계> 스틸 컷

SBS 드라마 <더킹 : 영원의 군주> 스틸 컷 ⓒ SBS

 
집필하는 작가, 연기하는 배우, 표현하는 장르까지 모두 동일하다 보니 내용상 일정 수준의 유사성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은숙 작가의 전작들 역시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포장만 바꾼 똑같은 이야기-캐릭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익숙한 공식'이 바로 김은숙표 드라마 특유의 매력이기도 했고, 작품마다 배우들의 매력을 극대화한 '맞춤형 캐릭터'가 대중을 사로잡으며 식상하다는 비판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르적 변주를 위한 실험이나 신선한 시도보다는 작가-배우들의 스타성과 소재주의에 의존한 '자기 복제'의 기운이 전작보다 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게 불안요소다. <더 킹> 초반부는 김은숙 드라마 특유의 판타지적 스케일과 비주얼은 더 화려해졌지만, 스토리 자체의 매력이나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을만한 확실한 몰입 포인트는 다소 떨어졌다.

분명 다른 작품인데 포장만 바꾼 똑같은 드라마를 다시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최근 판타지 로맨스 장르물의 인기가 예전보다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공감대가 부족한' 설정과 빈약한 서사를 가지고 계속 지금의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더킹 김은숙작가 이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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