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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동성애에 반대합니다. 고민정 후보는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

서울 광진(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고민정 후보는 '동성애 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두 후보가 초접전의 대결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오세훈 후보의 의도는 매우 투명하다. 동성애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보수 유권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치의 소수자 짓밟기
 
 21대 총선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와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
 21대 총선 서울 광진구을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와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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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단골 격 질문이다. 한국 보수 정당의 소수자 혐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다. 독실한 개신교인으로 알려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지난 2019년 5월, '동성애는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반대한다'라고 발언했다. 동시에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가치가 있지 않나. 그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와 보수 기독교 이념으로 무장한 이들의 논리는, 소수자를 '없어도 되는 것' 정도로 묵살한다. 이들의 존재는 '표의 셈법'에도, '가족'의 울타리에도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고민정 후보가 미온적인 답변을 내놓은 것 역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고민정 후보가 '저는 동성혼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대답했다면 어땠을까. 다음날 오세훈 후보의 선거 유세 내용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고민정 후보는 '국민적 합의' 대신 '찬반의 영역이 아니라, 개인의 지향일 뿐이다'라는 대답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한 대답이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다.

군형법 92조 6항 폐지에 동의한 진선미·박주민 의원,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한 금태섭 의원 등의 예도 있지만, 여전히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합의'라는 말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있다. '합의'라는 단어는 매우 중립적이고 민주적인 뉘앙스를 풍기지만, 동시에 소수자들의 설 자리를 좁게 한다. '나의 사랑에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라며 자신을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성소수자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동성혼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그리고 동성혼을 합법화한 미국과 뉴질랜드 등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렇다면, 현 집권 세력은 이 국가들처럼 정권 차원에서 '사회적 합의'의 장을 마련하고, 설득과 수렴을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 부호를 던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장벽 앞에서도 '합의'의 판 만들어야 한다.
  
 29일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자긍심의 퍼레이드를 벌이자 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어올리고 걷고 있다.
 2019년 6월 29일 대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자긍심의 퍼레이드를 벌이자 한 참가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어올리고 걷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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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실 정치의 제약은 존재한다. 하루아침에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11월, 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에 대한 조항을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이 40여 명 정도 있었다. 이들은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보장하는 조항을 두고 '동성애가 옹호 조장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표현의 자유에 기반한 건전한 비판과 반대가 차별로 간주된다"는 입장을 펼쳤다. 제도권의 국회 의원들이 앞장서 '혐오할 자유'를 주장한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존재했다면 모두 처벌 대상 아니었을까. 이들의 굳센 주장 뒤에는 정치권과 강력하게 결탁한 보수 개신교 세력이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보수 개신교 이데올로기와 호모포비아 정서가 여전히 유효한 환경에서도, 국가는 '할 수 있는 일'을 점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면, 합의를 위한 실천적 조치를 하면 된다. 지난 2015년 6월 26일, 대법원에서 동성혼을 허용 결정한 미국은 'In God We Trust'라는 글귀를 지폐에 새긴 국가가 아니었는가. (미국 퓨 리서치 센터가 2014년 미국 성인 3만 5천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70.6%가 자신을 개신교. 가톨릭 등을 포함한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했다.)

사랑은 자유 의지를 기반으로 한,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다. 따라서 찬반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국가가 공인한 사랑'과 '공인하지 않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시민들은 더 진보적이며 구체적인 논의를 접할 자격이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초보적인 수준의 '찬반' 문답을 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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