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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8일부터 2월 25일까지 페루 도자기 여행을 다녀왔다. 2월 첫 주 페루의 쿠스코주, 피삭에서 열린 제1회 라틴도예가들의 축제 '잉카 길의 흙(Barro del Qhapaq nan)' 참여를 시작으로 그곳에서 인연이 된 도예가들과 남미 지인들의 소개를 통해 연이 닿은 '흙'을 재료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은 짧게나마 '잉카의 길'을 걸어보는 시간과 같았다. 그 만남의 이야기를 담았다. 

Qhapaq nan이란, 페루 원주민 언어 케추아어로 '잉카의 길'을 뜻한다. 'qhapaq'는 '부'를 의미하고 'nan'은 길을 의미하여 '부의 길'로 해석되기도 한다. 잉카 제국시절 새로이 만들어진 길이 아닌 이미 존재했던 길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4만 킬로미터가 넘는 길로 알려져 있다.[기자말]
페루 아야쿠초 주 시내에서 콜렉티보(12인승 봉고 형태의 이동수단으로 12자리가 다 차면 출발한다)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면 '끼누아(Quinua)'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끼누아는 페루 독립의 결정적 전투였던 1824년 아야쿠초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그 후 100년을 기념하며 1924년에 마을의 꼭대기에 세워진 기념비를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모이기도 한다. 게다가 '끼누아' 단어 자체는 페루의 대표 곡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로 정의되기는 어려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마을 끼누아, 하지만 나에게 이 마을은 '지붕 위에 흙성당'이 있는 마을, 페루의 대표 도자기 마을로 정의되는 곳이었다.

일요일의 텅빈 도자기 마을
  
도예마을 끼누아
 도예마을 끼누아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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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누아에 방문한 날은 일요일이었다. 보통 이름 있는 도예 마을의 경우 여행객이 많이 방문하는 주말이 더 붐비는 법이라 당연히 평일보다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나의 예측은 정확히 빗나갔다.

여행 성수기였다면 좀 달랐을지 모르겠지만 여행 비수기의 일요일, 게다가 내가 도착한 일요일은 아야쿠초의 큰 축제인 카니발이 시작되는 전 주말이라 시내에서 중요한 축제 사전 행사가 있었다. 축제를 사랑하는 이 작은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시내로 축제 구경을 간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어리석은 여행자만이 텅텅 빈 마을에 덩그러니 도착해 있는 꼴이었다.

그나마 마을 일요 시장에 사람들이 조금 모여있어 급한 대로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거리는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었고 그나마 몇 열려 있지 않은 도예공방들도 손님이 거의 없다보니 불쑥 나타난 구경꾼 분위기 가득한 뜨내기 손님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끼누아, 지붕위의 성당
 끼누아, 지붕위의 성당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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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누아, 지붕위의 성당
 끼누아, 지붕위의 성당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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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공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이 마을에 내가 온 이유인 지붕 위의 성당은 외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천천히 돌며 다양한 지붕 위의 성당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긴 했지만 뭔가 겉핥기 하는 듯한 여정이 아쉬워서 마을에서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끼누아의 도예가, 플로렌시오

마을에 오기 전날까지 페루 지인분에게 연락처를 받은 이 마을의 도예가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되지 않아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연락을 시도해보았다. 그리고 정말 거의 극적으로 연락이 되었다. 마침 작업실에 계시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공방이 있다는 곳은 마을의 끝이라 마을의 오토바이 택시 툭툭을 타고 올라갔다. 작업실 문 앞에는 이미 도예가 부부가 이방인의 갑작스러운 방문을 반갑게 환영하고 있었다. 두어 시간 마을을 돌면서도 뭔가 낯설었던 시간은 그 환대에 성큼 친밀함으로 다가왔다.

도예가 플로렌시오 우아우아(Florencio Huahua, 아래 플로렌시오)는 3대 째 도자기를 이어오고 있는 아야쿠초 출신의 도예가다. 어깨 너머로 배운 도자기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일이 된 것은 페루 분쟁으로 고향을 떠나 페루의 수도 리마에 살며 만나게 된 수공예 에이전시를 통해서였다.

페루 수공예를 해외에 판매하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지역의 특성있는 도자기가 필요했고, 그가 아야쿠초 출신 도예가라는 것을 알고 연락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작업해야 한다는 제안이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도예가 플로렌시오
 도예가 플로렌시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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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에서는 다른 도예가의 공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내 작업을 할 수 있고, 내가 나의 할머니, 아버지로부터 보아온 우리 마을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죠."

그때만 해도 고향에 다시 터를 잡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시 리마로 가서 살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끼누아에서 아내를 만나고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자신의 작업이 여러 곳에서 인정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다.

플로렌시오의 작업은 대부분 키누아 전통도자기 작업을 기반으로 한다. 당연히 끼누아 대표적인 도자기인 지붕 위의 성당들이 공방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도자기는 오래 전부터 페루의 몇 지역에서 이루어지던 사파까사(Zafacasa)라는 의식 때 쓰는 것들이다. 집을 지을 때 지붕을 올리며 가정의 평화와 안녕을 기리던 의식이, 스페인 점령 이후 카톨릭 포교를 하며 신자의 집 지붕 위에 성당을 올려 평안과 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당시 지붕 위로 올라가던 성당은 끼누아 마을 내의 33개의 성당을 기본으로 디자인되었지만 이후는 각 도예가가 본인의 스타일대로 디자인하고 장식을 한다. 물론 쓰임도 실제로 지붕 위에 올리는 것이라기보다는 건물 내외의 장식품으로 기능을 한다.
 
끼누아 도자기, 성당
 끼누아 도자기, 성당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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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끼누아에서 보는 도자기는 기존의 전통도자기와 스페인 식민지시대의 이야기가 결합된 형태에요. 성당처럼 전통이 식민지 이후의 다른 아이템으로 변형된 것도 있고 반대로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지던 것들이 이후 지역의 모티브를 담아 발전한 것들도 있죠."

그 중 하나가 예수 탄생과 관련된 종교적 오브제인데 기존 성서 속 동물들 대신 페루 전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들의 형상들이 대체되기도 하고 아기 예수도 인디오 아이의 형상으로 빚어지기도 한다.
  
끼누아 대표 도자기, 뚱뚱한 음악가들
 끼누아 대표 도자기, 뚱뚱한 음악가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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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렌시오의 공방 한 켠에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도자기는 뚱뚱한 음악가들이다. 역시 끼누아의 대표 도자기이다. 지역 축제에 참여하는 전통 악사를 표현했는데 '왜 뚱뚱한가' 물었더니 보통 악사들이 축제 때 연주를 하기 때문에 술과 고기로 살이 찐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각 축제마다 악기가 다르고 의상도 달라 지역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구별이 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모두 다 익살스럽고 귀여운 악사들일 뿐이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의 공방에서 문득 꾸어본 꿈

끼누아의 도자기는 2019년 느지막이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끼누아 도자기가 가진 예술성 뿐 아니라 도자기를 통해 역사를 기록하고 구전되어 오는 그들의 전통과 사회문화를 표현하는 것의 가치를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매번 같은 작업을 하는 것 같지만 모든 과정의 시작은 첫 마음과 같아요. 시작과 완성까지 항상 새로울 수 있는 것이 도예 작업이죠. 그리고 이런 제 작업을 통해 지역의 도자기가 사라지지 않고 좀 더 긴 시간 살아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지역 도예가로서 제가 가지는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새롭게 창작되기보다는 마을의 요구와 전통에 의해 부여된 작업을 하는 것이 한 도예가의 작업으로 다소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나의 어리석은 질문에 플로렌시오는 답했다.
  
도예가 플로렌시오 가족
 도예가 플로렌시오 가족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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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맞으라는 아빠, 엄마의 성화 때문인지 일요일 단잠에서 깬 얼굴로 나온 두 아들은 너무 익숙하게 작업실 한 켠을 차지하고 앉아 자신의 일을 했다. 제법 전문적으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기도 했다. 가장 어린 셋째 막내는 잠시 흙을 가지고 아빠 옆에서 장난을 치더니 이방인에게 집중하느라 자신을 봐주지 않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는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플로렌시오는 작업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성당의 기본틀에 세부적인 장식을 붙이는 것을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밋밋하던 성당에는 그의 손을 통해 꽃이 피고 사람이 거닐며 무늬들이 그려졌다.
 
도예가 플로렌시오의 다정한 공방풍경
 도예가 플로렌시오의 다정한 공방풍경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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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일요일 오후, 다정한 한 도예가의 작업실에서 나는 뜬금없이 언젠가 지붕있는 집을 하나 짓게 된다면 꼭 그 위에 성당은 아니더라도 예쁜 나의 꿈의 집 하나를 만들어 올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플로렌시오의 노하우를 들으러 다시 끼누아에 와야할지도 모르겠다.

태그:#페루도에가들, #페루여행, #페루도예마을끼누아, #페루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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