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플 때, 건강이 염려될 때 우리는 병원을 찾는다. 아픈 곳을 치료하고, 몰랐던 병을 알게 되기도 하는 곳이 병원이다. 병원은 감기처럼 작은 병이든 암처럼 큰 병이든 가리지 않고 치료한다. 병의 경중에 상관없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은 단순하고도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아플 때 갈 곳을 정하는 것은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일 방송된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안타깝고 가슴 아픈 에피소들들은 '건강한 몸'이 건강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운다.

석형의 따뜻한 위로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포스터 ⓒ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의 이야기는 율제종합병원 5인방 중 한 사람인 산부인과의 양석형(김대명 분)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석형은 출생 후 수시간 내에 죽을 무뇌아를 임신한 산모의 자연분만을 맡게 된다. 이후 산모가 겪을 정신적 고통을 고려한 석형은 레지던트 추민하(안은진 분)에게 신생아의 입을 막을 것을 지시한다. 민하는 석형을 이해할 수 없는 차가운 사람이라 오해하지만 곧 본심을 알게 된다.

혹여 산모가 아이 울음 소리를 들을까 분만실을 큰 음악 소리로 채운 석형은 산모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산모의 마음과 그녀가 느낄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의 다독임이었다. 석형이 무엇보다 걱정한 것은 산모를 평생 쫓아다니며 괴롭힐 정신적 고통이었다. 자신이 존재했음을 강력하게 알리는 아이의 울음 소리는 산모의 남은 생을 지배할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었다.

석형은 친구 간췌담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에게 '마마보이'라 놀림까지 당할 정도로 엄마에게 다정하지만,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무뚝뚝했던 석형이 변하게 된 배경에는 고통스런 가정사가 존재한다. 여동생이 실족사하고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던 석형은 젊은 여자와 함께 있는 아버지를 목격한다. 이를 이미 알고 있던 엄마는 절대로 이혼은 해주지 않겠다며 자신은 괜찮다며 오히려 석형을 걱정한다.

그러나, 석형은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엄마를 목격한다. 이혼하지 않는 방법으로 남편에게 복수를 하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엄마는 죽음을 간절히 바랄 정도로 통렬한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전부가 아니더라도, 그 고통은 석형에게 전달된다. 산모를 위로하던 석형의 다정한 목소리에는 엄마의 고통을 목격한 아들의 슬픔이 녹아 있다.

배우자의 외도는 '영혼의 살인'이라 불릴 정도로 정신·심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유발한다. 석형 엄마의 뇌출혈은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회복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엄마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마음의 통증은 몸의 병처럼 어디가 문제라고 정확하게 진단해 치료와 처방을 할 수가 없다. 아픈 마음의 정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경우도 많고 석형 엄마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앞으로 그려질 익준의 행보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 한 장면 ⓒ tvN

 
부모의 이혼과 학대 역시 평생을 괴롭힐 마음의 병을 만들 수 있다. 이혼한 익준은 아들 우주(김준 분)와 엄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빠를 좋아하고 아직 어린 우주이지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마냥 편하게 하지는 못한다. 자상하고 재미있는 아빠 익준이 충분한 애정으로 우주를 보살필 것이라 예상되지만, 부모의 이혼이 우주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자주 싸우는 불행한 부모가 있는 가정보다 평화로운 이혼 가정이 자녀에게 나을 수 있다 해도, 부모의 이혼은 자녀에게 그 자체로 상처이다. 해야 한다면 할 수밖에 없겠지만, 자녀가 있다면 자녀를 위한 최대한의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앞으로 그려질 익준의 행보는 이러한 배려와 연결될 것이라 예상된다.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은 응급실에 연달아 실려온 쌍둥이를 살피며 아이의 아빠가 학대를 하고 있음을 알아채고 분노한다. 아동 학대는 부모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최악의 범죄 중 하나이다. 아이의 몸에 남은 멍은 사라지지만 마음에 남은 멍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러한 여러 에피소드는 깊은 마음의 병이 가정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시사한다. 가장 안락해야 할 가정은 마음을 공격하는 가장 무섭고 잔인한 흉기를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된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이상적인 배우자와 부모가 될 수는 없겠지만, 해서는 안될 짓을 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마음 수양만은 꼭 필요하다.

율제종합병원 5인방 밴드는 4회에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연주한다. 이 선곡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마음의 병이 지닌 가장 특징적인 병적 증상을 대변한다. 캐논은 '대포'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며, 돌림노래처럼 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음악 기법이다. 변주곡은 설정된 주제의 멜로디, 화성, 리듬 등을 변화시켜 반복하는 것이다.

아픈 가정에서 생성된 마음의 고통은 대포가 터지듯 크고 강하며 대를 이어 반복·지속적으로 출현해 또다른 상처를 만들어낸다. 물론 가정이 아닌 곳에서 만들어진 잊히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나 심리적인 고통도 그러하겠지만, 가정 내에서 만들어진 고통은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

가정을 저버리고 자신의 욕구에 충실했던 남편으로 인한 엄마의 고통의 일부는 석현에게도 자리한다. 부부의 결별로 인한 상처는 아빠 익준에게 뿐만 아니라 아빠의 역할로 최소화될지 언정 우주와 분리되지 못한다. 아동 학대의 가해자 역시 과거 피해자였을 것임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례들이 증명한다. 가장 큰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는 수회에 걸쳐 변주되는 돌림노래처럼 반복된다.

이러한 아픔은 시간도 치료해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으로 남기 마련이다. 고통을 남긴 당사자가 충분히 사죄하고 용서를 구할 경우 치료가 시작되겠지만 그러한 경우는 흔치 않다. 많은 경우 가정 내에서 만들어진 마음의 병은 방치된다. 사라지지 못하고 억눌린 고통은 훗날 더큰 대포알로 돌아올 수도 있다.

때문에 산모와 엄마에 대한 석형의 다정한 배려나 우주에 대한 익준의 세심한 애정이 주는 감동은 그 울림이 작지 않다. 두 사람에게도 역시 상처가 있다. 그러나 더 큰 상처를 가진 대상과 보호 받아 마땅한 대상에게 전해지는 사랑은 마음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따뜻한 사랑은 네 사람 모두의 아픔을 감싸는 힘이 있다. 그 사랑에는 브라운관을 넘어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보듬는 힘이 있다.

몸의 건강만큼이나 돌봐야 할 것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 한 장면

▲ tvN 목요스페셜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 한 장면 ⓒ tvN

 
익준이 처음 장면에서 진료한 아흔에 가까운 할아버지는 간 이식 후 몸에 나타난 여러 증상들을 이야기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노화에 따라 몸의 기능이 쇠퇴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의 건강을 두고 담당의사와 농담을 주고받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마음의 건강은 결코 늙지 않을 수도 있음을 잘 보여준다. 몸의 건강만큼이나 돌봐야 할 것은 마음의 건강이다.

크건 작건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내상은 존재한다. 우리의 몸에는 해독 작용을 하는 간이 존재한다. 그러나, 마음의 독을 해독해 줄 장기는 어디에도 없으며 다른 마음을 새롭게 이식할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장기 이식과 비슷한 행위가 되겠지만, 병원의 실제 현실처럼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종교를 가지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도 하지만 늘 충분한 해답을 주지는 않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4회는 보다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산모의 아픔에 공감하는 석형의 낮은 속삭임, 엄마를 걱정하며 화장실 앞을 지키는 석형의 간절한 사랑, 아들 우주를 향한 익준의 세심한 배려, 폭행의 흔적을 발견한 정원의 분노 등은 마음을 잠식한 독을 희석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상처와 고통을 최소화할 본인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의 관심과 사랑은 큰 힘이 된다.

나아가, 가까운 누군가와 낯선 타인에게 건네는 작고 사소한 언어와 몸짓들은 아픈 마음을 치료할 약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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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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