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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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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를 보내면서

'대한민국 대통령 이야기' 박정희편은 당초 8~10회로 끝내려 했다. 이어 최규하편을 이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최규하 대통령 생가를 옮겨다 놓은 원주시립박물관이 열리지 않는 데다가 최 대통령의 모교인 원주봉산초등학교도 외부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나는 가능한 현장답사를 마친 뒤 기사를 쓴다. 그래야 이야기도 술술 잘 풀어진다. 또한 이 연재를 열독해 주시는 독자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독자가 박정희 ⑤편의 기사를 읽은 뒤 문자를 보내 왔다.

"박정희 장녀는 박근혜인데, 왜 박재옥씨인가요? 대부분 국민들은 그렇게 알고 있는데, 기자가 잘못 쓴 것 아닙니까? 수정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회부터 12회까지 3회는 '박정희를 보내면서'라는 소주제로 풀어보고자 한다. 고향 출신 문사가 그를 보내는 마음과 한 독자의 질문 답을 겸해 박정희의 '아픈 손가락' 이야기를 하면서 박정희편을 마무리하겠다. - 기자 말

금오산

2019년 6월 28일, 구미시 삼일문고가 나를 초대했다. 동네서점 활성화를 위한,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한 북콘서트 행사였다. 내가 서울에서 살 때는 열차를 타고 귀향했다. 하지만 2004년, 강원도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는 원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에 간다. 시간도, 차비도 절약되기 때문이다.

원주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남짓 중앙고속도로를 달리자 가산 나들목이 나왔다. 그곳을 빠져나가자 차창 밖으로 금오산이 문득 나타났다. 순간 내 입에서는 "창공에 우뚝 솟은 금오산 아래 야은 선생 끼치신 덕화 갸륵타"라는 구미중학교 재학 시절 자주 불렀던 교가가 흥얼거려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1961년 5.16 쿠데타를 한 달 앞둔 박정희는 그해 4월 18일 군용비행기로 금오산 상공을 지나면서 시 한 수를 읊었다고 한다.
 
영남에 솟은 영봉 금오산아 잘 있거라
삼차 걸쳐 성공 못한 흥국일념(興國一念) 박정희는
일편단심 굳은 결의 소원성취 못 하오면
쾌도할복(快刀割腹) 맹세하고 일거귀향 못하리라.
-정재경 편저 <박정희실기> 32쪽
 
이 시로 볼 때 박정희는 5.16 이전 오래 전부터 쿠데타를 구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가 조선경비사관학교 2기생으로 막 졸업한 초임 장교 시절이었다. 어느 날, 박정희와 만주군관학교 동기였던 이한림은 중앙청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남산 길을 산책했다. 박정희가 불쑥 말했다.
 
"이봐 한림이, 이곳에서 포를 설치하고 저 경무대(현 청와대로 당시 미군정사령관 하지 관저) 쪽을 포격하면 나폴레옹이 소요 진압사령관으로서 파리를 제압했던 것과 같이 경무대 장악은 문제 없겠지?"
"정희야, 그런 농담하지 마. 너는 농담이 지나칠 때가 있어."

이한림은 박정희의 농담 반 진담을 막았다. - 조갑제 지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2권 193쪽
 
부산 정치파동 때도 박정희는 이승만 정권을 뒤집는 쿠데타를 기획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때 추앙했던 이용문 장군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해 뜻을 접었단다. 1961년 4.19 혁명 1주년 때도 장면 정권 전복 쿠데타를 기획했다고 한다.

어쩌면 박정희는 소년시절부터 군인이 된 다음 군사반란으로 국권을 잡는 '역모의 꿈'을 지니고 살아온 듯하다. 그래서인지 대구사범 졸업 후 문경보통학교 교사로는 도저히 만족치 못했다. 그래서 긴 칼을 차고자 교사직을 차 버리고, 장차 천하를 호령하려고 만주군관학교로 갔다.
 
 10월 유신을 발표하는 김성진 문공부 장관(1972. 10. 17.)
 10월 유신을 발표하는 김성진 문공부 장관(1972.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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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다시 시계추를 되돌려 2019년 6월 28일, 나는 원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구미로 가면서 '역사란 무엇인가' '권불십년(權不十年)' '사람의 평가는 사후 백년이 지나야 한다'는 말들을 곱씹었다. 아울러 국내외 근현대사 답사 길에 만난 인물들의 공적비와 그 동상들이 파괴된 모습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구미행 버스가 인동 간이 정류장을 지나자 곧 어린 시절 벌거벗고 멱을 감았던 낙동강이 나왔다. 해마다 늦은 봄이면 낙동강 갯밭에는 밀과 보리들이 누렇게 익어갔다.

우리 악동들은 낙동강 둑에다 먹이던 소를 팽개친 채 남의 밭 밀을 뽑거나 감자를 몰래 캐왔다. 그것을 불에 그슬러 입술이 새까맣도록 군것질했다. 그런 뒤 강에다 소를 집어넣은 뒤 소꼬리를 잡고 수상 스키를 하듯이 멱 감았다. 그렇게 해가 저물도록 신나게 논 다음, 소등을 타고 돌아오곤 했다.

그 갯밭이 지금은 구미산업단지로, 그새 공장들이 꽉 들어찼다. '뽕나무 밭이 바다로 됐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사처럼, 지난날 논밭들이 공장지대가 된 것이다. 일찍이 박정희는 "가난은 나의 스승"이라고 말한 바, 재임 중 이 땅의 가난을 몰아내고자 전력투구했다. 그리하여 그는 농촌 근대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민주헌정을 총칼로 중단케 해 이 나라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 이 역시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장교로 일왕에 충성한 자인 것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모내기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모내기를 하는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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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두 번 죽느냐'

어느 해 가을 지방순시 도중, 농사꾼들이 논바닥에 베어놓은 볏단을 보고 박정희는 차를 세웠다. 그런 뒤 수행원에게 그 볏단을 거꾸로 말리면 낟알이 더 충실해진다고 지시했다. 농사꾼의 자식이 아니고서는 즉석에서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박정희는 농사꾼들의 사랑을 듬뿍 받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이란 아편과 같다. 그는 권좌에 오른 뒤부터 불나방이 됐다. 불나방은 불에 뛰어들다 타 죽는 제 무리의 시체를 보고도 자기는 예외라고 뛰어들다가 마침내 제 명을 단축시킨다.

3선개헌을 하지 말고, 아니 유신만 하지 말았어도 그의 말년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드 골처럼, 미국의 카터처럼 한 시민으로 돌아가 금오산 기슭으로 낙향해 조용히 여생을 보냈더라면 비록 출발은 나빴지만 가난을 물리친 대통령으로 전비(前非, 이전의 잘못)를 덮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분 곁에는 '각하!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는 물러나실 때입니다. 그래야 이 나라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고 직언했던 측근이나 보좌진이 없었나 보다. 아니, 그가 그런 충직한 이를 멀리했기에 빚은 결과였을 것이다. 그는 '사나이 두 번 죽느냐'고, 불꽃처럼 살다가 불꽃처럼 사라지고 싶었나 보다.
 
운명적 만남의 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 날로부터 꼭 40년 전인 69년 8월 18일 국회에서 삼선개헌에 반대하는 대정부질의를 하는 정일형 박사.
 1969년 8월 18일 국회에서 삼선개헌에 반대하는 대정부질의를 하는 정일형 의원.
ⓒ 정일형-이태영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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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2월, 당시 최다선 국회의원이었던 정일형 의원(정대철 전 의원의 아버지)은 10월 유신을 "정치적 변란"이라고 규정하면서 대정부 질문을 통해 박 대통령의 하야를 권유했다.

"우리 젊은이들도 저 경북 선산 땅에서 쟁기질하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그는 모든 젊은이의 사표가 될 것이요 진정한 애국자로서 이 사람도 더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박정희씨가 국민의 뜨거운 박수 속에서 떠나는 날 바로 저에게 있어서는 의정생활에서 물러나는 역사적 순간이 된다면 참으로 더 없는 축복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당시 유정회 의원들이 단상으로 뛰어올라 정일형 의원에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정일형 의원은 이후에도 유신체제를 지속적으로 반대해오다가 1977년 3월 의원직을 발탈 당하기에 이른다. 정 의원의 충언을 듣지 않은 결과, 박정희 대통령은 반려자도, 자신도 비명에 갔다. 

내가 버스 차창 너머로 금오산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일들을 묵상하는 사이, 어느덧 구미종합터미널에 도착했다.

(*다음 회 계속) 

태그:#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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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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