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예능드라마 <어쩌다 가족>이 29일 첫 방송을 선보였다. 공항 근처에서 운영되는 하숙집을 중심으로 주인 부부와 항공사에 근무하는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색다른 구성의 가족 드라마를 표방했다. 첫 회에서는 성동일-진희경 부부를 비롯하여 오현경, 김광규, 권은빈, 서지석, 이본, 김민교, 길은혜 등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관계도를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방송사인 TV조선은 <미스트롯>,<미스터트롯> 등 이른바 트로트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한때 중장년층의 올드한 음악으로만 여겨지던 트로트를 일약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부활시킨바 있다. 반면 드라마 분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공작을 내지 못한 가운데 <어쩌다 가족>을 통해 이번에는 예능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던졌다.

예능드라마는 한때 시트콤(Sitcom. 시추에이션 코미디)로 불리우며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순풍 산부인과>, <세친구>, <논스톱>, <하이킥> 시리즈 같은 시트콤은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큰 화제를 모았다.

침체의 길 걷고 있는 한국 시트콤

하지만 한국 시트콤은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 이후로 서서히 침체의 길을 걸었다. 일일드라마처럼 주 5일 방송이 일반적이었던 가족-청춘시트콤의 경우, 제작비용과 촬영시간 등 일반 드라마들을 상회하는 제작부담에 비하여 정작 시청률과 광고 수입 등 실제 수익성은 기대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트콤이라는 장르의 위상이 국내 방송가에서 유독 저평가되었다는 부분도 무시할수 없다. 시트콤은 웃음을 강조하는 특성상 드라마라기보다는 코미디에 가깝다는 인식이 강하다. 연말 시상식 등에서도 드라마가 아닌 예능 장르로 분류된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정체성은 국내에서 시트콤 장르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제작 인력이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연속성 단절로 이어졌다. 

열악한 제작환경이나 정극 이미지 손상 등을 우려하여 신인급 배우가 아니면 시트콤 장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캐스팅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유머에 집중하는 해외의 시트콤에 비하여 감동과 신파 등 여러 가지 코드를 모두 집어넣어한다는 강박 때문에 시트콤으로서의 재미가 사라지고 갈수록 일반드라마와 차별화가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에는 시트콤이라는 표현 대신 예능 드라마라는 표현이 더 자주 쓰인다. 시트콤이 코미디가 중심이라면, 예능드라마는 드라마로서의 정체성에 예능적인 요소가 일부 가미되었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구성에서도 주 5회 방송대신 주 1,2회 편성이 늘었고 한정된 공간 세트 위주 대신 야외 촬영의 비중이 높아진 것이나 편성시간대-회당 방송분량 등에 있어서도 이제는 일반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어졌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방송됐던 대부분의 시트콤형 예능 드라마들은 2015년 방송된 <프로듀사> 정도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시청률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모두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과거와 같이 거침없이 망가지며 웃고 즐길 수 있는 시트콤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는 확실한 웃음포인트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엉성한 구성과 연출, 몰입도가 떨어지는 연기력 등에서 외면을 받았다. 이러다 보니 한동안 방송가에서 정통 시트콤에 가까운 예능 드라마들은 자취를 감췄다.

오랜만에 등장한 가족시트콤형 예능드라마인 <어쩌다 가족>도 여전히 같은 고민에 직면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동일, 김광규 등 코믹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중견배우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하숙집과 항공사라는 배경을 활용하여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파편화되어 각자 개인플레이를 하는 듯한 출연자들의 만담이나 코믹연기는 다소 부자연스러웠고, 이야기 전개의 전반적인 개연성도 떨어졌다. 배우들간의 연기 내공이나 집중력 편차도 크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예능드라마라는 생소한 장르가 오늘날의 시청자들에게 먹히려면 변화하는 매체 환경과 시청층에 대한 이해도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대는 달라졌어도 시트콤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한다.

<순풍산부인과>나 <하이킥> 시리즈 등 예전 인기작들은 최근 젊은 세대에 불고있는 '복고' 열풍을 바탕으로 5-10분 하이라이트 위주의 짧은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 유튜브와 모바일 등을 주로 선호하는 젊은 시청자들은 장황한 캐릭터와 이야기보다 짧은 시간안에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을 함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숏폼' 형식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주목할 만하다. 20-30분 내의 방송시간 안에 단순하고 직설적인 웃음포인트에 충실했던 옛날 시트콤들의 구성은 오히려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문법이다. 그에 비하여 주 1회 1시간씩 방송되는 <어쩌다 가족>은 구성의 단조로움이나 스토리의 몰입도 면에서 기존 실패한 예능드라마의 문제점을 답습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가족시트콤일수록 공략해야 할 주시청층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가족드라마라고 해서 웃음과 감동 등 여러 가지 코드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다가는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다. 

예능드라마가 일반드라마와 달라야 하는 부분은 정극의 패턴이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창의적인 상상력에 있다. 과거의 인기 가족시트콤들만 해도 삐딱하고 개성넘치는 캐릭터들을 통하여 전통적인 가부장제 하에서의 낡은 가족주의가 어떻게 붕괴하고 변화되어가는지 반영하는 풍자적 작품들이 많았다. 

기존의 시트콤이나 일반드라마에서도 이미 봤음직 한 에피소드-캐릭터를 재탕하는 것은 오히려 식상함을 안겨줄 뿐이다. 또한 이야기 구성의 탄탄함보다 몇몇 배우들의 개인기나 소재주의에 의존하는 작품은 오래갈 수 없다. <어쩌다 가족>의 고민은 멸종과 부활의 경계선에 놓여있는 한국 시트콤 장르의 과도기적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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