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FC'를 추억하는 팬들에게 이른바 '헤비급 빅3'는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지금이야 미국철장단체 UFC 등을 중심으로 서양브랜드가 MMA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프라이드가 한창 기세를 떨칠 때는 단연 동양 링 단체가 흐름을 이끌어갔다. 프라이드를 대표하는 에너지로는 여러 가지가 꼽힐 수 있었겠으나 그중에서도 쟁쟁한 헤비급 파이터들의 존재는 무엇보다도 컸다.

한때 '인류 최강의 사나이', '60억분의 1'등으로 명성을 떨쳤던 '얼음황제' 에밀리아넨코 표도르를 필두로, 열정의 주짓떼로 '미노타우르스'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전쟁을 경험한 최강 타격가 '불꽃 하이킥' 미르코 크로캅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국적, 캐릭터, 파이팅 스타일까지 가지각색이었던지라, 이들의 경쟁구도는 끊임없는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캐치 레스링'의 대가 '워 마스터(WarMaster)' 조쉬 바넷이 가세하며 잠깐이지만 '빅4'로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바넷은 크로캅, 표도르는 커녕 노게이라보다도 타격이 떨어졌다. 몸놀림도 느릿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듬직한 체구를 바탕으로 시종일관 상대를 압박하며 좋은 승률을 이어나갔다.

서브미션 능력 하나 만큼은 노게이라 못지않았던지라 근거리에서 무서운 위력을 자랑했다. 상대가 누구든 그립을 잡히면 긴장해야했다. 거기에 일본만화 북두신권의 열혈 마니아 임을 자칭하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유의 오타쿠 캐릭터는 신선한 느낌으로 팬들에게 다가왔다.

이러한 선수들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다크호스가 있다. 상당수 팬들 사이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4인방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한 파이터다. 다름 아닌 '러시아군 최강병사'로 불리던 세르게이 하리토노프(39·러시아)가 그 주인공이다. 
 
 '러시아군 최강병사'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러시아군 최강병사'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 K-1

 
링위는 또 다른 전장, 프라이드 뜨겁게 달군 다크호스
 
통산 29승 7패 2무효의 성적을 기록 중인 하리토노프는 화끈한 파이터다. 29승 중 판정승이 단 2번밖에 없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경기를 마무리 짓는 스타일이다. 인파이터 유형답게 주로 타격(66%)으로 상대를 때려눕히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서브미션승(28%)도 적지 않게 기록했다. 경기운영에 능숙한 편은 아닌지라 판정패도 단 한 번밖에 없다. 질 때는 장렬하게 산화(?)해버린다.

국내 팬들에게는 K-1 절대강자 세미 슐트를 파운딩 폭격으로 피투성이로 만들어 버리고, '부산 중전차' 최무배를 무참히 때려눕힌 파이터로도 유명하다. 헤비급 빅3, 바넷, '텍사스 광마(狂馬)' 히스 헤링, 황제 유전자를 이어받은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등이 그러했듯 하리토노프 역시 본인만의 개성이 뚜렷했다.

러시아 공수부대 출신인 그는 코만도 삼보를 베이스로 한다. 캐릭터 만들기에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던 프라이드 주최측이 이를 놓칠리 없었다. 선수 소개 영상에서 러시아 공수부대 훈련 장면을 틀어놓고, 군복과 베레모를 착용한 채 입장하게 하는 등 제대로 색깔을 살렸다.

링에 입장했을 때도 남다른 색깔이 빛났다. 금발에 하얀 피부 거기에 빨간 팬츠(혹은 트렁크)를 입은 채 살기어린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거나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모습은 흡사 전쟁터의 귀신같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일단 어지간해서는 기세 싸움에서 상대에게 밀리지 않았다.

프라이드 활동 초창기 하리토노프는 표도르의 저격수, 자객으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리토노프와 표도르는 러시안탑팀에서 함께 훈련했던 사이다. 표도르가 이후 매니저와의 갈등으로 타팀으로 떠나자 분개하며 "배신자를 처단 하겠다"며 이빨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라이드 시절은 물론 이후에도 둘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붙지 않았다.

때문에 표도르를 노리는 자객 이미지는 진즉에 사라진 지 오래다. 표도르는 물론 크로캅과도 붙지 않았다. 팬들 사이에서 프라이드에서 한창 기세를 떨치던 시절 하리토노프가 표도로, 크로캅과 붙었다면 어떤 그림이 나왔을까 지금까지도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셋다 모두 아직까지 현역인지라 붙지 말란 법은 없지만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지금과 한창 전성기 때는 느낌부터 다른 것이 사실이다.
 
둔탁하지만 파워 넘치는 우직한 슬러거
 
하리토노프의 파이팅 스타일은 프라이드에서 뛰던 당시까지와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프라이드 시절에는 스탠딩, 그라운드를 두루 갖춘 토탈파이터에 가까웠다. 알리스타 오브레임과의 1차전 당시 테이크다운을 허용한 이후 전혀 힘을 쓰지 못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인이 하위에 깔렸을 때는 다소 약점을 드러냈으나 그라운드가 아예 없는 반쪽짜리 취급은 받지 않았다.

비록 판정패로 패배의 쓴잔을 마시기는 했지만 노게이라의 그래플링 압박도 견디어냈다. 경험 많은 거인 타격가 슐트를 그라운드로 끌고가 파운딩으로 피범벅을 만들어버리는 등 본인이 유리한 포지션을 잡았을 때는 강력한 화력을 뽐내기도 했다.

마이크 루소와의 대결에서는 상대의 레슬링에 시종일관 고전하면서도 암바를 성공시켜 역전승을 거두기도 했다. 때문에 당시 팬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타격은 물론 맷집, 체력, 완력 등에서 검증된 만큼 그래플링만 좀 더 발전한다면 더 좋은 선수로 성장도 가능할 것으로 평가받았다.

익히 잘 알려진 대로 프라이드 이후의 하리토노프는 전형적인 타격가 그것도 펀치 위주의 스타일로 고정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아쉬운 것은 발전은 커녕 퇴화되어버렸다는 혹평을 받고 있는 그라운드다. 표도르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활동 단체의 전체적 그라운드 수준이 올라가거나, 나이를 먹고 그래플링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파이팅 스타일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하리토노프는 그런 정도를 넘어 아예 반쪽짜리 타격가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다. 프라이드 시절에는 노게이라의 압박도 어느 정도 견디어낼 정도로 최소한의 밸런스는 갖추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후에는 그 정도의 그라운드조차 보여주지 못했다.

크로캅, 마크 헌트 등 자신보다 그래플링이 좋지 못한 타격가들도 경험치가 쌓이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아쉽기 그지없다. 일정 수준의 디펜스라도 보여주었다면 프라이드 이후의 커리어 자체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높다. 하리토노프와 근거리에서 타격전을 벌이는 것은 누구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체구에 비해 믿을 수 없는 핸드스피드를 보여줬던 알렉산더가 빠르지만 테크닉과 타이밍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을 남겼다면, 하리토노프는 스피드를 뺀 모든 것을 갖춘 돌주먹으로 평가받았다. 빠르지도 타격 테크닉이 다양하지도 않지만 특유의 맷집을 앞세워 압박한 후 근거리에서 상대를 파괴하는 전형적인 슬러거 타입이다.

어지간한 잔타격은 대주면서 들어갈 정도로 내구성이 좋아 오히려 상대가 정타를 맞추고 당황할 정도다. 그렇다고 무조건 맷집으로 때우지는 않는다. 머리 움직임이 좋아 큰 공격은 흘리거나 가드로 막아내면서 압박한다. 그리고 거리가 좁혀졌다싶은 순간 짧고 간결한 펀치로 넉아웃을 이끌어낸다.

궤적은 크지 않지만 워낙 펀치가 무겁고 타점을 정확하게 때리는지라 상대가 받는 충격의 강도는 크다. 주로 피니시를 이끌어내는 것은 안면타격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디블로우를 꾸준히 노려주며 데미지를 축적시키고 스탭을 묶는다.

화력은 좋지만 맷집이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핏불'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KO로 잡아낸 경기가 대표적이다. 발전이 없다는 혹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하리토노프는 2016년부터 치른 10경기(6승 2패 2무효)에서 2패밖에 기록하고 있지 않다. 고정된 패턴으로 싸우는 스타일상 이름값보다는 상성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로이 넬슨, 맷 미트리온을 넉 아웃으로 잡아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헤비급에서 경쟁력 있는 하드펀처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러시아군 최강병사의 현역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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