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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거리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송파구청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2월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문정동 로데오거리에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송파구청에서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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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세랑이 2018년 발표한 짧은 작품 '7교시'(2020년 발행된 <목소리를 드릴게요>에 수록)는 200년쯤 뒤 청소년의 '현대사' 수업 내용을 소개하는 공상과학소설(SF)이다. 이 '현대사' 수업에 나오는 20~21세기의 인류는 '가죽이나 깃털보다 나은 소재가 많은데도 동물을 죽여 입다가 한두 해 후에 버리고', 수온 상승과 이로 인한 생태계 변화를 막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고,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둔감하게 버티다가 2098년쯤 엄청난 위기를 겪게 된다.

그전까지도 인류를 소소하게 괴롭히던 바이러스의 변종 때문에, 120억이나 되던 인류의 3분의 1이 사망한다. 그 뒤 살아남은 80억은 전쟁을 시작했다. 여기서의 전쟁은 이전까지 없던 전쟁이었다. '무기 없는 시민들이 정부와, 무엇보다 기업과 싸우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이 소설에서 2100년경의 지구 시민들은 인류의 1/3이 사라진 사태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성장만을 향해 폭주하는 체제를 끌어온 기업, 자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환경주의와 페미니즘을 내걸고 파업과 시민혁명을 일으킨다. 끝내는 인류의 생활공간을 좁히고, 인구수를 억제하는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나간다.

소설에 등장하는 바이러스 질병은 항공 허브였던 도시에서 처음 발생하고,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아시아 국가가 세계보건기구(WHO)에 발병을 숨겼던 것 등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사례에서 가져온 것 같다. 코로나19로 세계가 흉흉한 지금, 하지만 SF 속 세계와 달리, 사스는 세계시민보다는 기업과 자본에 또 다른 기회를 열어주었을 뿐인 것 같다.

사스에 감염되었다가 살아남은 생존자 30여 명을 만난 한 연구자의 기록에 따르면 사스 감염자들은 '새로운 감염병에 본인이 다시 걸린다면 차라리 진단받지 않고 조용한 곳에서 숨지고 싶다'고까지 말했다. 낙인 때문이었다. 의료진은 감염병 이후 발생한 후유증상에 귀 기울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은 만남을 꺼려했다. 일터에서는 은근히 따돌림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중국의 일부 기업과 자본에는 사스가 큰 기회가 되었다. 중국에서 온라인 상거래가 급속히 성장한 것이 2003년 사스 유행 직후라고 한다. 알리바바, 징둥 같은 정보통신 기술(IT) 업체들이 모두 이때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기 전까지 국내 언론에서도 "메르스 땐 쿠팡이 떴는데... 이번엔 어디가"라는 다소 천박한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코로나19 활용하는 기업들

위기를 기회로. 멋진 말이다. 그런데 누구의 위기가 누구의 기회가 되고 있는지, 이것이 정말 우리 모두의 기회가 맞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한국의 기업과 자본도 이 시기를 알뜰하게 활용하려는 것 같다. 모바일쇼핑으로 생필품을 구매하고, 바깥출입을 자제하는 대신 온라인동영상 서비스로 영화를 즐기며, 어린이 청소년들의 학원 수업마저 화상 솔루션으로 해결하라는 보도인지 광고인지 모를 기사들이 나오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이번 '물리적 거리두기' 기간을 통해 재택근무가 기업들에 매우 쓸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얘기도 있다. IT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노동자의 성과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사무실 관리, 유지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택근무가 업무와 관련된 온갖 재생산 노력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물론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고, 비교적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노동자들 편의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각자 집에서 일하면서 생기는 고립감과 연대 의식의 상실, 나아가 이런 과정에서 기업이 사무실 유지 이외의 다양한 책임으로부터 점점 더 자유로워질 가능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에 참석해 법인세 인하와 특별근로시간 확대 등을 요청했다. '기업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스스로의 발언이 드러내는 것처럼, 사회의 위기를 특정 이해관계자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야심이 엿보인다.

지난 20일에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들이 경영 위기라며, 현대차 원청에서 특별연장근로를 꼭 시행해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이미 현대차는 노조에 한시적으로 주 60시간 근무제를 도입하자는 실무협의를 제안한 상황이었다. 경영 악화라는 위기를, 감염 위험과 물리적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과로'하는 것으로 돌파하며, 나아가 특별연장근로 사유를 확장하는 '기회'로도 삼겠다는 노골적인 요청이다.
 
 지난 18일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가 열렸다.
 지난 18일 청와대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한 "주요 경제주체 초청 원탁회의"가 열렸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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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이후, 어디로 갈 것인가

지난 주말, 새로운 확진자 증가 추세가 다소 둔화됐다고 마음 놓지 말고, 다음 2주간 감염 확산의 변곡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정부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재난 이후 세상이 어떻게 나아갈지 지금 조금씩 길과 방향이 정해지고 있는지 모른다.

벌써 몇몇 논자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매우 암울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 뒤의 세상은 아직 오지 않았고, 그 전망을 그대로 두고 볼 이유는 없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당사자이자 참여자다.

이미 여러 언론과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대안만 해도 여러 가지다. 유럽 나라들에서 실시하고 있다는 당분간 모든 해고 금지, 교육공무직 노동자 등 휴업으로 당장 생계 곤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 보전, 택배 노동자나 콜센터 노동자 등 오히려 노동강도가 높아진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 마련, 일정 기간 임대료 제한, 장애인과 노인, 저소득층 어린이 등 현재 상황에서 필수적인 권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보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시급한 현금 지급 등.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조치들이 빠르게 현장에 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행정 조치들. 더 많이 요구하고, 더 잘 싸우자. 2200년 즈음의 역사 시간에 2020년을 어떻게 배우게 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덧붙이는 글 |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의 운영진들이 2주마다 정기적으로 노동자 시민들과 만나는 글을 씁니다. 글쓴이 최민 김용균재단 이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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