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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피처>와 <템테이션>을 읽었기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글솜씨를 알고 있다. 흡인력 강한 문장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가인데 이번엔 어린이책을 썼다 하니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 '오로르'는 열 한 살짜리 여자 아이다. 그런데 말을 할 줄 모른다. 태블릿에 글을 써서 소통한다. 자폐성 장애, 그러니까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아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정도 많고, 속도 깊으며 정의롭다.
 
 책 앞표지
 책 앞표지
ⓒ 김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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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겉표지를 벗긴 표지
 겉표지를 벗긴 표지
ⓒ 김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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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이중으로 되어 있는 것은, 오로르가 두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오로르가 '힘든 세상'이라 말하는 현실과 친한 친구와 밝음이 존재하는 '참깨 세상'이 그것이다. '참깨 세상'에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오브라는 친구가 있어 오로르가 원할 때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오로르의 상상 속 세상으로 보인다.

오로르는 이혼 가정의 자녀이지만 부모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장애아가 있는 집에서 흔히 그렇듯 오로르가 부모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어, 오로르의 언니 에밀리는 그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게다가 학교에서 괴롭힘도 당한다.

이 책은 대부분 한쪽엔 글, 다른 한쪽에 그림을 싣고 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자신의 글에 생명을 불어넣을 그림을 그릴 일러스트레이터로 조안 스파르를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프랑스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시사 만화가이며 애니메이션 제작이기도 하단다. 그는 오로르 일러스트레이션을 받고 쓰러질 정도였단다. 더글러스는 조안 스파르에게 '마법 같은 일을 해냈다'는 메일을 보냈다.

오로르는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대처하고, 불의에 물러서지 않는 당당하고 의연한 아이로 나온다. 더글라스는, '자신의 자폐증을 멋지게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을 만들고 싶었다'면서 일상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판타지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오로르는 경찰도 해내기 어려운 일을 멋지게 해낸다. 하지만 그걸 전혀 뽐내지 않는 오로르의 의젓함이 사랑스럽다. 언젠가는 말을 할 때가 올 거라고 믿고 기다리는 오로르의 부모는 오로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오로르 언니 에밀리의 친구 루시도 몸집이 크고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놀림과 괴롭힘을 받는다. 큰 사건 이후로 서로 화해하게 되는데 루시를 괴롭힌 도로테가 전교생 앞에서 말한 내용이 인상 깊다.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은 자신도 그만큼 겁먹고 있으며 자신의 두려움을 숨기려고 다른 사람을 괴롭힐 때가 많다고 한 말이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에서는, '폭력은 고통을 다루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괴롭히는 아이들도 괴롭힘 당하는 아이 만큼이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우리 어른들이 알아야 한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를 벌하기에 앞서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보살피는 것은 우리 어른들이니 불안을 키운 것도 결국 어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참깨 세상에 있는 오브가 오로르에게, "나는 힘든 세상에서 절대 못 살아. 거기는 잿빛일 때가 너무 많아"라고 말할 때 영리한 오로르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
 
"그렇지만 잿빛인 데에는 좋은 점도 있어. 잿빛인 날이 많기 때문에 푸르른 날을 더 아름답게 느낄 수 있어. 밝고 행복한 날만 계속될 수는 없어. 잿빛도 삶의 일부야." (223쪽)
  
이 처럼 지혜로운 생각으로 긍정성을 높이 끌어올릴 줄 아는 오로르는 전혀 장애아라는 생각이 안 든다. 말을 하고 싶을 때면 거침없이 패블릿에 글을 써서 보여주는 오로르는 언니가 도로테와 잔혹당들에게 괴롭힘 당할 때도 그들의 허를 찌르며 대항한다.

더글라스의 아들도 자폐증 스펙트럼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다섯 살 이후에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26살이 된 아들은 런던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외부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며 공연 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했단다. 그래서 이런 아름다운 글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전문가의 말이 늘 맞는 것은 아니며 장애를 만드는 것은 편견이나 낙인이 아닐까?

더글라스는 몹시 불화가 심한 부모 밑에서 자랐고, 두 아이를 두고 힘든 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일찍부터 어른 세계의 문제들을 보아왔고, 이 책을 구상할 때 주인공을 이렇게 설정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다 들여다볼 수 있는 아이, 그러면서 자신은 슬픔이나 아픔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게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는 아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생각했는데 그것은 꼭 맞는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귀여운 친구 오로르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꼭 필요한 때 나서서 일을 해결해주는 정의의 사도가 된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각자가 가진 재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것이다.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더글라스 케네디 (지은이),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긴이), 밝은세상(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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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무늬의 세상 읽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과 동네 책방과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과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를 지어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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