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이 기사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이미 영화화된 고전 작품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원작, 전작과 비교 당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러나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자신이 <작은 아씨들>을 보여줄 적임자라며 다시 고전을 세상에 내보였다.

소설 <작은 아씨들>은 '마치 가' 네 자매의 성장과 사랑을 담은 이야기다. 소설과 영화화된 전작들은 이웃집 소년 로리와 조의 사랑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시간 순서대로 이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레타 거윅 감독은 자매들의 유년 시절과 7년 뒤의 시간을 넘나드는 방식을 선택한다. 그 덕분에 2020년 버전 <작은 아씨들>에서는 이미 초반부에 조의 막내 동생 에이미와 로리의 대화를 통해 조가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조와 로리의 사랑 이야기를 이 작품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로 인해 이번 <작은 아씨들>은 그동안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던 문제들에 집중한다. 조가 작가를 지속하기 위한 고민, 다른 자매들의 꿈, 그리고 결혼 혹은 사회적 장벽으로 인해 꿈을 포기하게 되는 과정이 그것이다.

그레타 감독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전 원작에 충실하되 그 안에서 원작자 루이자 메이 올컷이 짚었던 당대의 여성 억압과 관련된 대사들을 재조명한다.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졌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 여성에게 결혼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 대고모의 대사 등은 현대에도 여전히 일정 부분 유효하다. 이러한 부분들을 그레타 거윅 감독은 예리하게 포착하며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원작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결혼하지 않을 거라 부르짖던 조는 갑작스럽게 결혼한다. 이는 원작의 한계라고 오래 전부터 지적받았던 부분이다. 이러한 결말에 대해 감독은 이를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조는 자신의 소설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인세와 저작권을 챙기는 대신 당대가 원하는 결말로 내용을 수정했다. 이를 통해 그레타 거윅 감독은 조의 선택이 사랑을 이루는 결론을 좋아했던 시대적인 타협일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극 중에서 조가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때, 나는 한국의 여성 임금이 떠올랐다. 2019년 한국 기준 여성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남성 노동자의 68.8% 수준이었다. 여전히 같은 직장, 동일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여성은 남성보다 급여가 훨씬 적다. 조가 당당히 자신의 인세를 요구하는 모습을 볼 때, 여성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끼는 이유는 여전히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방증한다.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에 차 있던 조는 로리의 청혼을 거절했던 것을 후회하며 "나도 사랑을 원해. 여자에게도 마음이, 야망과 재능이 있는데 사람들이 여성에게 사랑만이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질린다, 너무 외롭다"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극장 안 몇몇 관객들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2020년에도 여성 조의 고민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19세기를 살아가는 조가 던졌던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조에 대해 관객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것을 보며, 왜 19세기의 질문이 여전히 21세기의 우리 사회에서도 유효한가 돌아보게 된다.

현대의 비혼 여성이 가지고 있는 깊은 외로움을 조는 그대로 읊었다.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을 거라며 청혼을 거절한 조에게 로리는 "너 역시 누군가를 찾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살고 죽을 거야. 그게 너의 길이고 너는 그럴 거야. 그리고 나는 그걸 지켜볼 거야"라고 말한다. 2020년에도 역시 여성들의 비혼 선택은 "그런 애들이 제일 빨리 결혼하더라"같은 말들로 쉽게 비웃음 당한다. 또한 이러한 말들로 여성들의 비혼은 의심을 받는다.

이는 비혼(非婚)주의라는 단어가 가진 빈약한 상상력 때문이다. 비혼이라는 한자어 자체가 결국 '결혼을 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결혼이 전제인 사회를 인정하고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거부일 뿐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혼의 결심이 흔들릴 때 여성들은 쉽게 결혼을 떠올린다. 비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혼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혼하지 않은 삶에 대한 예시와 상상력을 가질 여지가 사회에 없기 때문이다. 나의 자매들과 어떻게 결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상상이 멈추는 순간이다. 우리는 결혼을 넘어서, 비혼이라는 언어를 넘어서 질문해야 한다. 왜 우리는 결혼을 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해서 뒤따르는 불편함을 어떤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가. 그 장벽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과연 결혼을 해야만 그 불편함과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가.

조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 했지 세상과의 단절과 외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결심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꿈을 좇고 열정적으로 사는 여성들과 이야기하는 행복 역시 여성의 행복이다. 이러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결혼을 거부한 것이지, 모두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목표로 삼은 건 아니었다.

언니 메그가 결혼할 때 조는 메그의 손을 잡고 "2년이면 결혼 생활이 지겨울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메그는 "너의 꿈이 나의 꿈과 다르다고 해서 나의 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냐"라고 답한다. 그러나 조는 이야기 한다.

"바로 떠나자. 내가 이야기를 써서,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자. 요리하고 청소는 내가 할게. 우리를 위한 삶을 만들 수 있어. 언니는 연기자가 되어야지. 무대 위의 삶을 살아야지."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영화 <작은 아씨들> 스틸 컷 ⓒ 소니픽처스코리아

 
조의 꿈, 결혼하지 않고,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꿈에는 메그가 함께 있어야 했다. 메그와 조가 함께 인생을 살고, 서로를 돌보고, 돈을 버는 것이 조의 꿈이었다. 유년시절 함께 미래를 꿈꾸고, 하루를 같이 일구어가던 자유로운 삶,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되던 삶의 충만함을 알고 있기에 그 빈자리는 대체될 수 없었을 것이다. 조는 결혼하지 않음으로써 같이 살 방법을 모색했고, 그리하여 함께 살아가고자 했으나 그것은 조와 그녀의 자매가 함께 꿈꿔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이었다. 현 시대 비혼 여성들이 느끼는 외로움이 이와 같다. 특히 한국사회 비혼자들은 그런 외로움 혹은 차별을 더욱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다. 

현행 민법 제 779조는 가족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로 규정해 동거인은 오랜 기간 함께 했어도 수술 동의에 대한 보호자 신분을 가질 수 없고, 가족 면회를 할 수 없다. 임대주택 신청, 전세 자금 대출에서도 비혼은 뒷순위로 밀린다. 소득공제도 동거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혈연, 성별 관계 없이 동거인에게 가족의 법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의 통과 없이는 여성 홀로 비혼 가구를 꿈꾸는 것은 제도권 밖에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세금 감면 정책과 주거 정책, 의료 보험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온전히 자신의 노후를 감내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0년의 관람객들은 여전히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에 눈물을 흘리고, 감독이 내놓은 해석에 감탄했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어떻게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질문했다. 2030년에는 또 다른 조에게 펼쳐진 새로운 길에 대한 응답이 영화관에 걸려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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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장애, 동물, 환경 등 교차성 운동에 서서 가치로운 일들을 퍼트리는 아티비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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