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굵은 빗줄기가 안필드 잔디와 선수들을 적셨다. 연장전에 그친 비는 도저히 믿기 힘든 기적의 게임을 더 도드라지게 빛내고 있었다. 피르미누가 깔끔하게 넣은 연장 전반의 그 골이 홈 팀 리버풀을 8강으로 끌어올리는 결승골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거기서 끝날 축구가 아니었다. 골키퍼의 패스 미스 하나가 불러온 파장은 너무도 컸던 것이다.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에게 3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3월의 첫 날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의 꿈이 끝나버렸고 트레블 조건을 맞추기 위해 야심차게 달려들었던 잉글리시 FA(축구협회)컵에서도 미끄러졌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별들의 잔치에서까지 밀려난 것이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이끌고 있는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스페인)가 한국 시각으로 12일 오전 5시 리버풀에 있는 안필드에서 벌어진 2019-2020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리버풀 FC(잉글랜드)와의 16강 2차전 어웨이 게임에서 연장전에 믿기 힘든 3골을 몰아넣으며 3-2 대역전승을 거두고 당당히 8강 무대에 올랐다.

피르미누의 연장전 골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지난달 19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어웨이 게임을 뛰며 유효 슛 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돌아온 리버풀 FC는 1차전 0-1 패배 기록을 지우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빠른 템포의 공격을 계속했다. 아무리 두 줄 겹수비를 자랑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라도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의 빠른 공격을 견뎌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그들이 자랑하는 골키퍼 얀 오블락 덕분에 잘 버티고 있었다. 게임 시작 후 14분 만에 리버풀의 빠른 미드필더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골문을 위협했을 때 얀 오블락은 자기 오른쪽으로 몸을 날리며 그 슛을 기막히게 쳐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골키퍼 얀 오블락은 36분에도 놀라운 반사 신경을 자랑하며 리버풀 골잡이 호베르투 피르미누의 왼발 발리슛을 기막히게 쳐냈다. 오른쪽 측면에서 날아온 알렉산더-아놀드의 크로스 타이밍과 피르미누의 발리슛이 딱 맞아 떨어졌지만 골키퍼 얀 오블락의 세이브 능력은 그야말로 한 수 위였다.

축구이기 때문에 얀 오블락의 방어 능력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43분에 리버풀 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골이 나왔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 오른쪽 끝줄 바로 앞으로 빠져들어가며 올린 크로스를 동료 미드필더 조르지뇨 베이날둠이 기다렸다가 완벽한 헤더 골을 왼쪽 구석에 꽂아넣은 것이다. 골키퍼 얀 오블락이 자기 오른쪽으로 날아올랐지만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헤더 슛까지 쳐낼 수는 없었다.

그 때까지 두 게임 합산 점수 1-1이 되었으니 진짜 축구 게임은 후반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1차전 승리 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마냥 수비만 할 수는 없었기에 시메오네 감독은 56분에 골잡이 디에고 코스타를 빼고 마르코스 요렌테를 들여보냈다. 그로부터 5분 뒤에 주앙 펠릭스의 중거리슛과 앙헬 코리아의 오른발 밀어넣기 시도가 연거푸 이어졌지만 리버풀 골키퍼 아드리안도 얀 오블락 못지 않게 슈퍼 세이브 실력을 자랑했다.

8강에 오르기 위해 1골이 더 필요했던 리버풀은 66분에 왼쪽 풀백 로버트슨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골문 바로 앞에서 결정적인 헤더 슛을 날렸지만 크로스바를 때리는 불운을 겪어야 했고 결국 게임은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연장전 시작 후 4분만에 리버풀은 멋진 추가골을 만들어내며 8강행 티켓을 손에 쥔 듯 기뻐했다. 조르지뇨 베이날둠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받아 골잡이 호베르투 피르미누가 방향을 살짝 바꾸는 헤더 슛을 날렸고 그 공은 왼쪽 기둥에 맞고 나왔다. 이 순간 호베르투 피르미누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오른발을 내밀어 인사이드 킥을 정확하게 성공시켰다. 이로써 리버풀의 대역전승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다.

연장전, 교체 선수 둘이 만든 기적의 드라마

연장전 4분 만에 터진 피르미누의 골은 디펜딩 챔피언이 당연히 8강에 오르는 시나리오의 마침표로 보였다. 하지만 축구의 생명력은 거기서 대충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97분, 리버풀 팬들이 도무지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오른쪽 풀백 알렉산더-아놀드의 백 패스가 골키퍼 아드리안에게 굴러왔고 아드리안은 이 공을 멀리 걷어내지 못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필드 플레이어의 심각한 압박이 닥친 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아드리안의 패스가 어이없게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공격수 주앙 펠릭스 앞에 굴러온 것이다. 여기서 주앙 펠릭스는 슛 욕심을 부리지 않고 동료 마르코스 요렌테를 빛내는 결정적인 전진 패스를 밀어주었다. 오프 사이드 함정까지 멋지게 허물어버리는 패스였기 때문에 더 말할 필요 없었고 마르코스 요렌테는 오른발 인사이드 슛을 정확하게 굴려넣었다. 

연장전 전반 시간이 흘러가면서 3분 사이에 이렇게 대반전 흐름이 만들어질 줄은 정말로 몰랐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교체 선수 마르코스 요렌테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연장전 전반 추가 시간에도 반짝반짝 빛났다. 또 다른 교체 선수 알바로 모라타의 침착한 역습 패스를 받아 오른발 인사이드 슛을 하나 더 정확하게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차 넣은 것이다.

약 10분 전까지 8강행 티켓을 손에 쥔 것처럼 기뻐했던 리버풀 선수들은 마르코스 요렌테의 연속골에 다리가 풀릴 수밖에 없었다. 연장전 후반 추가 시간에도 쐐기골을 하나 더 얻어맞으며 완전히 주저앉은 것이다. 이번에는 마르코스 요렌테의 역습 전진 패스 타이밍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고 이 공을 받은 알바로 모라타가 왼발 인사이드 슛으로 리버풀 골문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로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두 게임 합산 점수 4-2로 디펜딩 챔피언 리버풀의 발목을 잡아 넘어뜨리며 8강에 올랐다. 주심의 공식적인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누구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축구장의 진리와 특유의 짜릿한 생명력이 또 한 번 입증된 빅 게임이 그렇게 끝났다.

2019-2020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결과(12일 오전 5시, 안필드)

리버풀 FC 2-3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득점 : 조르지뇨 베이날둠(43분,도움-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호베르투 피르미누(94분) / 마르코스 요렌테(97분,도움-주앙 펠릭스), 마르코스 요렌테(105+1분,도움-알바로 모라타), 알바로 모라타(120+1분,도움-마르코스 요렌테)]
- 1, 2차전 합산 점수 4-2로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8강 진출!

O 리버풀 선수들
FW : 사디오 마네, 호베르투 피르미누(113분↔미나미노 다쿠미), 모하메드 살라
MF :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81분↔제임스 밀너), 조르지뇨 베이날둠(106분↔디보크 오리기), 조던 헨더슨(106분↔파비뉴)
DF : 앤디 로버트슨, 페어질 판 다이크, 조 고메스,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GK : 아드리안

O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선수들
FW : 주앙 펠릭스(103분↔알바로 모라타), 디에고 코스타(56분↔마르코스 요렌테)
MF : 앙헬 코레아(106분↔호세 마리아 히메네스), 토마스, 사울 니게스, 코케
DF : 헤난 로디, 펠리페, 스테판 사비치, 키어런 트리피어(91분↔시메 브르살리코)
GK : 얀 오블락

O 8강 진출 4팀 목록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스페인), 파리 생 제르망(프랑스)
아탈란타 BC(이탈리아), RB 라이프치히(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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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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